43년을 올곧이 이용업에 종사한 세계 최고 ‘가위손’, 밝은 사회공헌도 최고

 

정흥교 대한민국명장

43년을 올곧이 이용업에 종사한 세계 최고 ‘가위손’, 밝은 사회공헌도 최고

한 평생을 한 가지 직업으로 산다는 것이 결코 쉽지만은 않은 경우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사람은 칭송받아 마땅하고, 자신에게는 무한한 영광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우리는 그들은 ‘베테랑’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가장 뛰어난 실력의 소유자를 ‘대한민국명장’이라 부른다.

그 주인공은 바로 2014년 이용부문에서 대한민국명장의 반열에 오른 경기도 남양주에 위한 ‘정흥교헤어샾‘ 정흥교 대표. 정 명장은 왕성한 사회공헌활동으로도 정평이 나 있다. 지금부터 그의 삶을 조명해 본다. 다음은 정 명장과의 일문일답.

▲ 대한민국명장은 언제 되셨는지요. 당시 기분은 어땠습니까.

- 2014년에 대한민국 명장으로 선정됐습니다. 2012년과 2013년도에 도전을 했었는데 연거푸 탈락의 고배를 마시고 세 번째에 목표를 달성하게 되었습니다. 대한민국명장은 각 분야에 최고의 실력과 지위를 인정받는 위치를 말하는데 국가가 인정하는 증서와 명패를 받습니다.

명장은 개인은 물론 가문의 영광이라 생각할 때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의 기분이었으며 한편으로는 명장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만큼 일상생활이나 모든 면에서 조심스러워지는 부담을 많이 느낍니다. 한마디로 자부심과 책임감을 동시에 느꼈습니다.

▲ 어느 분야 명장이신지요. 또한 그 동안의 경력에 대해 말씀해 주십시오.

- 대한민국 명장 578호이며 이용직종입니다. 경력은 1971년(16세)에 이발소에 첫 입문을 하여 일을 하다가 생각이 바뀌어 양복점, 자전거 수리점, 목공 등을 전전하다가 1973년 이용을 다시 배우기로 결심을 하고 1974년도 이용기능사 면허를 취득했습니다.

그리고 1975년도 이용영업 허가를 받은 후 지금까지 43년 세월을 올곧이 이용업에 종사하고 있습니다. 이용을 시작하고 꾸준하게 실력을 연마한 결과 1994년부터 선수 생활을 하면서 경기도지방기능경기대회에서 2년 연속 금메달을 땄습니다. 이후 1996년 전국기능경기대회 동메달, 1996년도 전국기술경기대회 금메달을 목에 걸었습니다.

특히 자랑스러운 것은 1996년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세계헤어월드대회 한국대표선수로 참가했으며 1998년에는 일본 동경 이용중앙대학교에서 일본강사와 함께 합숙 훈련 후 98년 서울 세계헤어월드대회 한국 대표선수 트레이너를 역임하기도 했습니다.

이 밖에 경기도지방대회 심사장, 심사위원 전국기능대회 심사위원으로 많은 활동을 했으며 NCS(국가직무능력표준) 개발진 참여와 검도위원 학습모듈 집필진 기능사, 기능장 감독위원으로 활동했다. 1983년도부터 직원 3명과 함께 일하는 대형업소로 확장했으며 하여 현재 기능장인 아들과 미용사 자격증 취득한 딸, 그리고 직원 1명 등 4명이 한 팀을 이뤄 손님을 맞이하고 있다.

▲ 명장이 되고자하는 계기가 있었는지요.

- 명장은 각 분야에 최고의 기능을 인정받는 것입니다. 따라서 누구나 그 위치에 올라 실력을 인정받고 싶어 할 것입니다. 사실 명장이 되기 전까지 우리나라에 명장 제도가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명장에 대한 정보를 알고 나서는 국가로부터 내 실력을 인정받고 싶다는 의욕이 생겨 차근차근 실력을 향상시켰고 그 결과 명장의 영광을 안게 된 것입니다.

▲ 명장이 되기 전과 후의 차이점은 무엇인지요.

- 명장이 되기 전에도 사회봉사 활동이나 후배양성 활동을 했지만 명장이 된 후에는 더욱 적극적으로 후배 양성이나 봉사 활동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주위에서 ‘명장님의 참여로 자리가 더욱 빛난다’는 인사를 자주 듣게 되고 행사의 중심으로 자리하게 되다보니 대한민국 명장의 가치와 이름에 누가 되지 않도록 더욱 열심히 노력해야겠다는 각오를 새롭게 하기 되었습니다.

▲ 사회공헌 활동에 매우 적극적이신데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주요 활동에 대해 말씀해 주십시오.

- 어릴 때 부친이 뇌졸중으로 쓰러져 활동에 불편이 있어 집에만 계시다보니 아버지의 이발과 목욕을 도와드리면서 어려운 이웃이나 몸이 불편하신 사람들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보면 아버지 생각이 많이 나서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늘 어떻게 그들을 도와줄까 고민하고 있는데 1992년도 동네 이장 일을 하면서 가끔 면사무소에 회의하러 참석한 어느 날 생활보호대상자들이 쌀을 타 가는 모습이 눈에 들어 왔습니다.

그런데 직업이 이용이라 그런지 그들의 머리 상태가 제일 먼저 보였는데 하나같이 머리카락이 길게 자라있는데도 이발을 못한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면사무소에 쌀 타러 오는 날에 맞춰 간이 의자를 놓고 이발을 해 주기 시작했습니다.

이때부터 매월 1회 이발 봉사를 시작한 것이 어느덧 26년 이란 세월이 흘렀습니다. 지금도 한 달에 한번씩 저희 업소에서 20명 정도 무료이발 봉사를 하고 있는데 내 아들도 동참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야간에는 자율방범위원과 시민경찰으로서 지역 치안과 범죄 예방활동을 하고 있으며 주민자치위원에 지원하여 독고노인 등 어려운 이웃에 분기별로 나누어 1회에 약 25명씩 생일상을 차려드리고 그날 하루만이라도 맘껏 즐겁고 행복하시라고 다양한 이벤트도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봉사활동이 쌓여 남양주시에서 적립해 주는 봉사실적이 7,800시간이란 것이 매우 자랑스럽습니다.

이러한 저의 활동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2013년3월5일에 KBS 아침마당 화요초대석에 출연해 봉사활동에 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으며, 2014년에는 전국민 추천 포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이 상은 전국에서 시민의 추천으로 봉사활동을 열심히 하는 사람과 의인을 10명 정도 선정해 수여하는 행정자치부 장관(당시 유정복)상입니다.

▲ 사회공헌 활동에 대한 마음과 자세는 어떠해야 한다고 생각하는지요.

- 봉사란 누가 시켜서하는 게 아니라 내 자신의 마음이 움직여야만 진정성 있는 활동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래야만 수혜자들이 진심으로 받아 주고 함께 즐거워하고 행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나의 가위질로 인해 깔끔해진 그들의 모습을 보면 그 기쁨은 무엇에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하늘을 찌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봉사활동을 마무리하고 올 때는 조금 더 도와주지 못한 아쉬움이 항상 남게 됩니다.

그런데 이 아쉬움은 그냥 아쉬움으로 남는 것이 아니라 또 다시 봉사활동으로 이어집니다. 그래서 그런지 봉사하는 날은 밀렸던 일들을 해결한 뿌듯함으로 하루가 즐겁고 상쾌한 기분이 종일 넘쳐 납니다.

봉사는 중독성이 강하다는 점을 깨달았습니다. 26년 동안 한결같이 봉사를 할 수 있는 것은 그 중독성 때문인 것 같습니다. 봉사는 내 삶의 원동력이기도 합니다.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말이 있듯이 어려운 환경에서 생활하는 분들을 내 가족이라 생각하고 마음을 나누고, 나의 작은 재능기부가 밝은 사회를 만드는데 일조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나를 봉사현장으로 이끌고 있습니다.

▲ 후진양성을 위해서 어떤 활동을 하고 있는지요.

-1994년부터 선수생활을 했으며 남양주시 이용지부 사무실을 운영하면서 휴일에는 이용 기술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에게 기술 지도를 해 주었습니다. 기술을 배우고자 하는 사람들은 남양주시 회원뿐만 아니고 경기북부는 물론 다른 시도에서도 찾아 왔습니다.

이렇게 내 지도를 받은 사람들은 지방대회나 전국기술경기대회에 출전시켜 전원이 입상하는 쾌거를 올리는 등 전국에 경기북부의 기술실력을 알리는 계기도 되었습니다.

이후 경기북부 연합회장을 하면서 연합회장기 기술대회를 개최하여 기술 발전을 도모하고 이용사들의 체력 강화를 위해 조기축구 등 운동하기를 권장하고 연합회장기 체육대회로 격상시켜 기술인들의 체력 향상과 화합의 자리를 마련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이용기술을 배우고자하는 기능인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은 마음에 이용 교본이라 말할 수 있는 4권의 책을 집필했습니다. 현재에도 후배들을 위하여 이용산업연구소에서 NCS 검토 및 개발 과정 등에 참여를 하는 등 후진 양성에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 항상 고민하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 명장으로서 향후 계획과 개인적 인생목표는 무엇인지요.

- 저는 대한민국에서 인정해준 명장입니다. 나 한사람으로 인하여 전체 명장들의 명예에 피해가 가지 않도록 도리를 다하고 덕목을 쌓아가며 살기 위해 항상 노력하고 있습니다.

특히 이용분야에 후배양성과 업종 발전을 위하여 선두에 서서 이끌 수 있는 역할이라면 마다하지 않고 참여를 하고 있으며, 개인적 목표라면 2남1녀의 가장으로서 다섯 식구가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특히 암 투병을 했던 아내가 완쾌돼 건강한 모습으로 함께 살고 있으니 이 보다 더한 기쁨은 없습니다. 그리고 아들과 딸이 나와 함께 같은 공간에서 같은 일을 한다는 것이 참으로 행복합니다. 주변 사람들은 가족이 대를 이어 운영하는 업소라며 부러워하고 찬사를 아끼지 않습니다.

이제는 모든 욕심과 사심을 다 내려놓고 내 가족들이 건강하고, 행복이 무엇인가를 느낄 수 있도록 지금까지 살아 온 것처럼 이웃과 함께 어울려 사는 것이 내 인생의 목표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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