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인(天地人)의 원리를 벗어난 악마의 통치법

 

천지인(天地人) 그 한국인의 정체성

천지인(天地人)의 원리를 벗어난 악마의 통치법

배달민족의 삼대경전 중 삼신오제본기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유천일신명명재상내이삼대삼원삼일지위령부자(惟天一神冥冥在上乃以三大三圓三一之爲靈符者) 대강강우만만세지 만만민 일체 유삼신소조(大降降于萬萬世之 萬萬民 一切 惟三神所造) 명(冥)= 어두울 어둡다, 어둠, 깊숙하다 등. 세(世)= 인간(人間)-계(界) 등.

귀신은 남의 잘못을 보고 남을 탓하라 시킨다.

내용을 보자면, 온전한 하나의 영으로 인증받기 이전의 사람은 어둡고 어두운 곳에 있으며 삼신의 자리가 만들어져야 할 사람의 뇌에는 눈에 보이는 세상의 한계에 머무르고 있다고 한다. 성품(性)과 목숨(命)과 쓿음(精)이 하나가 되어 그 셋이 하나의 영(靈)이 되는 삼대삼원삼일(三大三圓三一)의 원칙을 모르고서~~!

그 셋이 하나가 되지 못하는 인간한계 그 안에서 어둡고 어두운 심연의 깊은 그곳에 머무는 사람의 상태를 삼일신고(三一神誥)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惟衆迷地 三妄着根 曰心氣身 心依性有善惡 善福惡禍

유중미지 삼망착근 왈심기신 심의성유선악 선복악화

氣依命有淸濁 淸壽濁妖 身依精有厚薄 厚貴薄賤

기의명유청탁 청수탁요 신의정유후박 후귀박천

간단히 풀어보자면 ~~!

내용의 목적은 자신 아닌 타인을 향해 마음을 곱게 쓰고, 언(言)과 행(行)이 다르게 내로남불 하지 말며, 행동은 무겁게 하라고 충고하는 것으로, 그것이 되지 않으면 천벌을 받는다고 저주하는 것이다. 마음이 성품을 통제하고, 기운이 걸어야 할 목숨의 목적을 바로 세우며, 자기가 하는 모든 행동에서 그 선한 성품을 위한 행동이나 마음을 바로 세우고 걸러내야 하는 지기 자신의 문제를 모르고~~!

인생의 목적이 자아(自我) 아닌 모두를 통해 당하는 괴롭힘이나 비난 조롱 등에서조차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진리의 신을 만나 신과 함께 그 자신을 고쳐 나가가는 것, 즉 타인(他人) 아닌 자신(自身)을 보는 삶이라 했다. 그것은 자신의 눈은 마음의 눈으로 자신의 마음에서 선(善)과 악(惡)을 보고 사는 것이다. 그러나 악마의 유혹은 마음의 눈을 가려놓고 육체의 눈으로 자신 아닌 타인을 바라보며 타인에게서 선(善)과 악(惡)을 찾아내어 타인을 정의하라고 가르친다. 그것이 자신을 가장 멋지게, 가장 존귀한 존재로, 가장 고상한 사람으로 만드는 것이라고 착각하게 하면서~~!

사람이란 잘못을 했어도 남들이 자신에게 잘못했다 말하면 자존심부터 상하고 말을 한 그 사람이 미워지고 타인보다 남들이 잘나 보이면 이기고 싶고 경쟁하고 싶다. 자신이 모자라보여도 안되고 타인의 시선을 타인이 받아도 시기한다. 불 화(火)자와 벼락 진(震)자에 있는 그 모습 그대로 살아가는 것, 그것이 사람이다. 마음에서 일어나는 겁박이라는 것은 이렇게 안하면 뭔가 바보가 되는 느낌, 또는 뭔가를 잃을 것 같은 느낌 등등 두려움 때문에 일어나는 반항심이다. 하나의 행동을 내기 내기까지 지식과 생각과 감정과 기분 등이 충돌하면서 고민하는 번뇌(煩惱)의 상태라는 말이다.

그것은 반드시 한 개인을 넘어 무리가 만들어지면서 집단적 행동으로 발전하게 된다. 그 중심이 남들 위에 군림하고 싶은 불(火)과 자기보다 잘난 것들을 꺾어내려 놓기 위한 주먹과 큰소리라는 벼락(震)을 앞세운다. 그 중심에 있는 무의식적 가치관이 자기만이 최고의 의로움으로 살아간다는 소(素)적 개념이다. 이는 사람이 타인과 다투고 싸우며 살아가는 근본이다. 그러하기에 자신의 기분과 감정을 거스르는 모두를 향해 감정(感)을 드러내고 숨소리(息)를 바꿔가면서 비난하고 주먹질 하며 욕하는 것(觸)으로 자신만이 최고의 가치관을 가지고 최고의 성자인 냥 행세하는 것이다. 자신의 모든 잘못은 못 보기도 안 보기도 하면서 자신의 모든 일에는 관용으로 정당성을 부여하는 자기합리화를 앞세우면서~~~!

그 자기 합리화의 중심에 자기와 다른 생각 다른 행동 또는 자기와 다른 사상 이념을 가진 타인들의 모든 지식이나 행동들은 오히려 자기 자신을 비난하고 욕하는 것으로 인정되는 것으로 생각하게 된다. 마치 반찬 하기 싫은 시부모를 모시는 주부가 어느 날 친정 온 시누이가 친정부모 맛있는 반찬 해준다고 하면 “왜 아가씨는 나를 못 된 며느리로 만들어요? 이러는 것으로, 말로 성질 부려가며 방해하는 그 심정과 같은 것이다.

그런 것이 무(無)의 상태이다. 논리적인 것도 무시되고 오직 자기의 말만 최고라고하면서 남 잘난 것은 꼴을 못 보면서도 ~~~. 또한 그 상태가 병(病)적 상태이다. 병(病)이란 병, 질병이란 뜻이지만 그 병적 상태를 ‘흠, 하자, 근심, 굳어진 좋지 않은 버릇, 괴로워하다, 어려워하다, 피곤하다, 원망하다, 괴롭히다, 비방하다, 욕보이다, 책망하다’ 등으로 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또 미친 상태이다. 미칠 광(狂)은 미친 그 상태를 ‘사리 분별을 못하다, 상규(常規)를 벗어나다, 경솔하다, 거만하다’ 등으로 규정했기 때문이다.

그 병적(病的)이며 광적(狂的)인 무(無)의 상태는 자신의 흠이나 하자 발견이라는 열등감에서 시작되어 근심, 괴로움 등으로 발전하고 시기질투에 핑계와 원망 불평으로 그 본심을 표출하는 그 좋지 않은 버릇이 굳어져 매사의 발언이나 행동이 ‘짜증과 분노 억설과 몽니’ 등 타인을 괴롭게 하는 그것이 그 일상이 되는 것이다. 그것이 일상이 되면 그 다음은 자기를 지지하지 않는 그 모두는 적대적인 관계로 설정하게 된다. 그 적대적인 관계로의 설정이 완료되면 그 다음 수순은 ~~~! 무리를 지어 모함을 넘어 타아(他我)를 향해 뒷담화 하며 함께 나서서 지정된 사람을 비방하고 욕보이며 책망하면서 괴롭게 하는 것이다.

상식(相識)과 법(法)의 불통(不通)인 사회(社會)의 원인(原因)

그렇게 정신적 병적(病的)인 사람들이 모이면 그 사회는 혼란하게 되고 분열과 다툼과 고성과 주먹질이 난무하는 사회가 된다. 그런 병적(病的)인 상태에 빠진 사람들의 뇌(腦)의 수준을 나타낸 자료가 있다. 채널A ‘스쿨랜드’라는 프로그램에서 하루 100회 이상 욕을 하는 학생들과 10회 이하로 하는 학생들을 선별하여 ‘대한민국(大韓民國)’을 연상하고 그 다음을 말해보라고 시켰다. 그 물음에 하루 10회 이하로 욕을 하는 아이들은 “예의지국, 충, 효, 조선” 등등을 이야기 했다는데 그 욕을 100회 이상 하는 아이들은 “통일, 북한” 그것밖에 연상을 못했다고 했다. 사실 그것은 뇌를 푼 과학으로도 이미 증명된 것으로 자기를 살피면 전전두엽에 있는 자아성찰(自我省察)이라는 메타인지가 발달하게 되지만 자아성찰을 위한 생각이 없는 아이에게서는 메타인지 그 뇌 스스로 필요 없는 것으로 인식하여 사춘기에 뇌의 핵심에서 그 뇌를 잘라서 버린다는 것이다. 그런 상태가 종결 됐다고 생각해 보자. 그런 류의 사람에게 논술적 논리가 요구되는 상식(相識)이 통할까? 그런 상식도 안 통하는데 보편적 사리분별을 할 수 있을까? 그렇게 진행 완료된 상태를 ‘사리 분별을 못하다, 상규(常規)를 벗어나다, 경솔하다, 거만하다’ 등의 뜻을 가진 미친(狂, 개의 왕) 상태이다.

모든 분열(分列)의 원인(原因)

그렇게 병적(病的)이며 광적(狂的)인 개개인들이 모이면 결국 그 어떤 사회적 단위가 됐던 둘 그 이상으로 쪼개져 분열되어 서로 다투게 되고 사분오열(四分五裂)에 이합집산(離合集散)에 합종연횡(合從連橫)을 반복하여 자신들의 이익(利益)만을 따르는 소인배(小人輩)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들에게 신과 함께 하는 자아성찰(自我省察)을 이루어 반진일신(返眞一神)하여 광명이라는 일신의 성품으로 통하기를 시작하는 정신적 헤아림이라는 대인(大人)적 이해는 없다.

성경에도 그 무(無)의 상태는 마귀사탄에 종속된 상태

그런 의미에서 아무 것도 없다는 뜻으로의 무(無)란 소인배(小人輩)라는 의미로, 남들이 요구하는 보편적 인간으로서의 최상을 위한 정신력뿐만 아니라 자신을 위한 충고적인 가르침 등에서도 반발이나 불만을 가지고 살아가는, 말 그대로의 민중적 천민을 지칭하는 말이 된다.

그 천박한 민중의 이야기는 비단 한문이나 우리 대한의 경전에서만 있는 것이 아니다. 종말론의 기록이라는 성경의 계시록(啓示錄)에 반드시 극복해야만 하나님의 사람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마귀사탄이라는 악마적인 사람의 일곱 가지 영적(靈的) 상태를 아시아의 일곱 교회라는 그 일곱의 이름에 감추어 놓았다.

첫째인 에베소는 인내라는 뜻인데 신의 분신인 영으로서의 참사랑을 모르고 육체를 사랑하며 타인들의 잘못만 드러내어 분쟁을 만든다. 둘째인 서머나는 죽음의 향기라는 뜻인데 인간적 말싸움이나 비난 받으면 자신이 져준다며 자신이 예수와 같이 십자가에 죽는 자라고 자기 합리화로 자신을 미화한다. 셋째인 버가모는 굳세다로 영(靈)은 천국에 가자하며 기도(祈禱)는 육체(肉體)의 소욕(所慾)을 위해 구하는 모순을 가지고 있다. 넷째인 두아디라는 희생이라는 뜻으로 자기의 욕심을 위한 타인희생은 정당한 것이라고 가르친다. 다섯째인 사데는 남의 물건이란 뜻으로 악마의 성품인 인간 본성을 자기것으로 착각하고 버리기를 거부한다. 여섯째인 빌라델비아는 인간적인 사랑이라는 필레오 필로스에서 유래된 것으로 육체를 사랑함이 진정한 사랑이라며 상대의 요구를 채워주나 그들의 주체정신은 빼앗아버리는 것이다. 일곱째인 라오디게아는 ‘정의(正義) 공의(公義)’라는 뜻이지만 그 어근이 자기끼리 뭉친 민중(民衆)으로서의 백성들에 의한 복수(復讐) 처벌(處罰) 재판(裁判)에 있다.

그래서 아시아의 일곱 교회는 타인을 향한 시시비비를 시작으로 자기들끼리만의 정의를 앞세우는 인민재판으로 ‘자기와 다른 부류를 처단(處斷)하는 무리’가 설명 된다. 하나님이 그를 부수려는 천사들을 준비하고 계심을 모르는 채~~~!

지금까지 이어 온 대한의 천지인 정신 이야기를 연속으로 보신 분이라면 아니 지난호에서의 자유와 평화 이야기만이라도 보신 분이라면 이 자기만을 위한 인간중심의 보편적 성품이 자기 하나만이 아닌 자기중심으로 사람들을 모아놓고 선동하여 자기들만의 정의를 앞세워 타인을 정죄하는 재판대에 세워 벌하는 그것이 얼마나 야만적 행동인지를 보여준다.

자기 자신이 타인들에게 인정받는 지혜와 지식으로서의 하늘의 진리를 머리에 가진 하늘같은 사람으로 인정받기까지 자라는 십(十)이 되기 위한 그 시작이 하나인 하늘의 진리를 머리에 두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그것을 거부하고 힘으로 무력으로 타인을 제압하여 자신이 하늘 되기 위해 살아가는 사람들이 너무 많은 게 현실이다. 그런 부류의 사람들은 그 하늘의 진리를 따라 살며 타인들이 인정해주는 하늘 되기를 거부하는 그들은 그 하늘 천신의 진리를 자기를 해하는 것으로 인식하고 거부하며 인격적 발전을 위한 그 어떤 것도 하지 않고 자기들만의 욕심을 위해 사회분열을 조장한다. 불쌍하지만 그들은 스스로 소인배(小人輩)를 자처하며 천손(天孫)으로서의 천상의 국민(國民)됨을 거부하고 최악의 천민으로서의 민중으로 만족하며 무(無)라는 혼돈(混沌)과 공허(空虛) 그 안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천신(天神)이 정한 천벌(天伐)을 생각하지 못하면서~~

자신이거나 사회이거나 국가이거나 무(無)는 악마의 통치법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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