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명품양복의 살아있는 ‘歷史’…대학에서 후진 양성에 專念

 

문병지 국제대학교 평생교육원 명품양복제작반 책임교수

대한민국 명품양복의 살아있는 ‘歷史’…대학에서 후진 양성에 專念

경기도 평택에 위치한 국제대학교 평생교육원에는 명품양복제작반이라는 특수 과정이 개설돼 있다. 그야말로 맞춤양복의 명품화를 추구하는 학생들의 배움터다.

이 과정은 문병지(文炳智) 책임교수로 인해 탄생되었다. 문 교수는 1992년 복장 부문에서 대한민국 명장으로 선정된 우리나라 맞춤양복업계의 역사와 맥을 같이 하는 산증인이다. 문 교수는 자신이 50여년 동안 쌓아온 기술을 오롯이 학생들에게 쏟아 붓고 있다. 1대1 반(半)도제식 교육 시스템을 갖추고 있는 이 과정은 지금까지 4기 80여명의 학생을 배출했는데 100% 취업률을 기록하고 있다.

명품양복제작반 과정은 고대 기원의 교육역사(1575년 설립) 배경을 갖고 있는 이탈리아 국립 ‘테일러 아카데미’와 MOU를 체결했다. 이 대학은 세계 최고의 기술력을 자랑하며 수준이 맞지 않으면 절대 MOU를 맺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런데 국제대 평생교육원 명품양복제작반과 손을 잡은 것은 문 교수의 실력을 높이 평가했기 때문이다.

테일러링의 고귀한 예술을 토대로 하는 수습 및 전문직업인으로 양성되기를 희망하는 학생들을 위한 ‘테일러 아카데미’는 국제적인 명성을 가진 마스터 테일러들이 제공하는 수업을 현지에서 직접 받을 수 있다.

1575년 설립된 이탈리아 ‘테일러 아카데미’와 MOU

깔끔한 모습의 테일러에 반해 이 분야에 입문했다는 문 교수의 업적 중에 빼놓을 수 없는 건 서울과 지방간 양복기술 격차를 줄였다는 것이다. 60년대에는 지방의 양복기술은 그야말로 형편없었다고 한다. 이러한 현실을 가만히 보고만 있을 수 없었던 문 고문은 자비(自費)를 들여 지방을 순회하며 강의를 했다. 당시 지방에서 양복제작을 하던 사람들은 문 교수의 강의를 듣기 위해 수백 명이 몰렸을 정도로 인기가 많았다고 한다.

보통 ‘쟁이’들은 자신의 기술을 전수하기는커녕 감추기에 급급하던 시절임에도 불구하고 문 교수는 스스로 자신의 모든 실력을 나눠줬다. 이에 대해 문 교수는 “어느 분야든 후배에게 기술을 전수한 만큼 발전할 수 있는 것”이라며 “나는 기술전수는 물론 직업에 대한 철학과 자부심, 그리고 인성과 소양에 대해 더 많이 강조했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1999년 문 교수는 미국으로 날아간다. 그의 소문이 미국에까지 닿은 것이다. 세계적인 양복제작 명인인 ‘잭 테일러’의 러브콜이었다. 당시 문 교수는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 큼지막한 매장을 운영하고 있었기에 갈등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세계무대에서 실력을 겨루어 보고 싶은 갈망(渴望)에 한국 생활을 정리하고 미국으로 가게 된 것이다. 그 곳에서도 문 교수의 실력은 ‘베테랑’으로 인정받았다. 그리고 LA, 뉴욕, 워싱턴 등지에 자신만의 매장을 운영하며 입지를 굳혔다.

세계적 실력 인정받은 ‘베테랑’, 미국 양복업계도 휘어잡아

이러한 미국생활은 12년 동안 이어졌다. 그리고 2011년 3월 귀국해 경기도 이천시에 ‘코리아테일러아카데미’를 개설하게 되었고, 2013년부터 국제대에서 후학을 양성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문 교수가 후진양성에 열성을 보이는 이유는 세계무대에서 통할 수 있는 인재를 배출하기 위해서다.

문 교수는 자신의 모든 기술을 전수해 세계 최고의 테일러를 양성하는데 남은 인생을 걸겠다는 강한 의지를 피력했다. 문 교수는 “누가 뭐라 해도 대한민국의 양복기술은 세계 1위다. 1976년부터 국제기능올림픽 12연패를 했다는 것은 감히 그 어느 나라도 따라올 수 없는 엄청난 역사”라며 “이 역사가 계속 이어지도록 젊은 테일러들을 양성해 국내는 물론 세계무대를 제압하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1958년 대한복장학원에 입학해 수석으로 졸업한 문 교수는 서울 소재 대형 양복점에 스카우트된 것을 시작으로 승승장구하는 인생의 길을 걷기 시작한 것이다. 문 교수는 양복제작 관련 서적 집필에도 열정을 보였다. 치수 재기부터 보정까지 테일러 기술의 모든 걸 담은 ‘맨스 모드의 길잡이- 테일러 기술의 실제’라는 제목의 책을 내기도 했다.

이후 명동에서 자신의 매장을 갖게 된 문 교수는 세계적인 테일러가 되기 위해선 옷 만드는 기술뿐만 아니라 다양한 지식을 겸비해야 된다는 생각으로 경영학과 행정학을 공부하는 등 남보다 앞선 준비와 노력을 한 것이다.

“능력 뛰어난 후진 양성해 맞춤양복 전성기 부활 기대”

문 교수는 삼성 창업주 이병철 회장과 특별한 인연이 있다. 복장협회 회장으로 있을 당시 이병철 제일모직 회장이 거금(巨金) 10억 원을 지원해 서울 약수동에 5층 규모의 복장문화회관을 건립할 수 있었던 것이다.

1987년에는 88올림픽 행사의 일환으로 진행된 ‘88올림픽 옷 잔치’ 패션쇼를 주관해 3만5천여 명의 관람객을 유치, 우리나라 섬유 산업이 발전하는데 톡톡한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또한 수많은 패션쇼를 진행하고, 옷 바르게 입기 캠페인, 한국의 베스트 드레서 선정 등 다양한 활동을 했으며 ‘메이드인코리아’의 수준 높은 테일러 기술을 심어주고자 노력했다.

특히 현재 경복궁 민속박물관 ‘웨딩 100년사’ 전시관에는 문 교수의 작품인 모닝코트와 턱시도가 소장돼 있다. 이는 자신의 영광이기도 하지만 우리나라 양복 수준을 가늠할 수 있는 반증이 아닐 수 없다.

문 교수는 실력이 우수한 인재를 양성해 우리나라 맞춤양복 시장의 부활시켜 주기를 기대하고 있다. 그래서 학생들의 수업시간은 절대 빠지지 않는다. 그리고 그들을 꼼꼼하게 지도하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이러한 문 교수의 모습에서 우리나라 맞춤양복분야의 밝은 미래를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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