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득 득테크 대표
이해득 득테크 대표
  • 한세희 기자
  • 승인 2019.01.25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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득테크(DEUK Tech)는 FA(Factory Automation) 기업으로 자동화 기계의 자동 제어장치를 활용해 회로 설계부터 제작, 프로그램, 시운전까지 처리하는 전문회사로 2007년 1월 설립됐다.

 

이해득 득테크 대표

“A/S가 절대 없는 글로벌기업 되는 게 우리의 비전”

득테크(DEUK Tech)는 FA(Factory Automation) 기업으로 자동화 기계의 자동 제어장치를 활용해 회로 설계부터 제작, 프로그램, 시운전까지 처리하는 전문회사로 2007년 1월 설립됐다.

회사명 ‘득테크’의 ‘득’자는 이해득 대표의 이름에서 정해진 것으로 창업 당시 사명(社名)을 고민하다 자신의 이름을 걸고 책임경영을 하겠다는 의지를 반영한 것이라고 한다.

이 대표는 1988년 대한민국 최초로 전기명장으로 선정된 국가가 인정한 숙련기술자다. 그는 “대한민국 명장이 되면 정부에서 독일, 일본 등 기술선진국 산업시찰을 보내주는데 그때 방문했던 독일 가구회사 사장의 말에서 힌트를 얻었다”며 “상호에 자기이름을 넣으면 결국 제품이 곧 자기 얼굴이고 자기 이름을 걸고 제품을 만들게 되므로 최선을 다하게 된다”고 말했다.

이 대표의 경영방침은 명확하다. 바로 ‘애프터서비스(AS)를 하지 않는 회사가 되자’다. 얼핏 무책임한 게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지도 모르지만 결코 그런 의미로 받아들이면 안 된다. 오히려 AS가 절대 필요 없도록 확실한 제품을 만든다는 이 대표의 강한 결의를 엿볼 수 있는 문구다.

‘득테크’는 대표의 명예 걸겠다는 의지의 표현

이 대표의 실력은 나라에서 인정한 최고의 수준이다. 대한민국명장은 각 산업 분야에서 선발되는데 1년에 10명 내외로 선정되는 대단히 어려운 관문을 통과해야 가능하다.

현재 대한민국명장 선정은 서류심사 결과에 따라 현장실사 및 면접에 의해 선정되고 있다. 그러나 이 대표가 대한민국명장으로 선정될 당시에는 명장부(名匠部) 기능경기대회를 통해 이루어 졌다. 산업현장에서 최고수준의 숙련기술을 보유하고 동일분야에 10년 이상 종사하고 있는 기술자에 한해 명장부 기능경기대회 참가 자격이 주어 졌으며 지방기능경기대회를 거쳐 전국기능경기대회에서 1위를 하되 점수가 90점 이상이 되어야만 명장으로 인정받았다.

이 대표는 기능경기대회를 통해 명장으로 선정됐기 때문에 기능올림픽으로 다져진 그의 실력은 타의추종을 불허한다.

이 대표의 과거는 순탄하지 않았다. 중학교 시절 가정형편이 너무 어려워 고등학교 진학을 포기하려 할 때 독일의 마이스터학교를 본떠 설립한 국내유일의 국립한독직업학교(현 국립부산기계공업고)를 알게 되었다. 부산에 있는 그 학교는 일반고교의 1/3 밖에 안 되는 학비와 졸업과 동시에 취업이 보장되는 유리한 조건이었다.

이 대표는 “모든 게 부족한 상태였지만 고등학교를 꼭 다녀야겠다는 너무나 절실한 마음으로 담임선생님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도전을 하게 되었다”며 “1차 실기시험, 2차 이론시험, 3차 면접을 한 달 간에 걸쳐 보면서 많은 고통이 따랐지만 결과는 9대1의 경쟁률을 뚫고 당당히 합격했다”고 회상했다.

1988년 대한민국 전기 명장 제1호…좌절 극복한 인생승리

이때부터 이 대표는 기능올림픽과의 인연이 시작됐다. 기능인의 기초과정인 ABB과정을 힘들게 마치고 전기과로 전공을 정하고 학업에 정진하던 이 대표는 가을 어느 날 교문에 붙어있는 현수막에 쓰인 ‘정규홍 선수 국제기능올림픽 세계제패-금메달 획득’ 이라는 문구가 눈에 들어 왔다.

“전교생이 모인 조례에서 금메달과 훈장수여식이 거행되었는데 그 선배가 너무나 자랑스럽고 부러워서 나도 모르게 두 주먹을 불끈 쥐고 나도 한번 도전 해봐야겠다고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그로부터 며칠 후 담임교사는 이 대표의 실습작품을 보고 배선에 소질이 있음을 알고 기능훈련을 해 보라는 제의를 했고 그때부터 동력배선 직종의 기능훈련 특활이 시작됐다.

이 대표는 “2학년 때부터는 수업을 전폐 하다시피 하면서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고된 훈련을 했다. 선배들의 뒷바라지를 해가며 한 가지씩 기능을 배우고 익혔다. 그렇게 거듭된 훈련과 대회경험을 차곡차곡 쌓았다”며 “드디어 3학년이었던 1974년도 부산지방기능경기대회에 출전해 내 생애 처음으로 금메달을 목에 거는 영광을 안았으며 그해 가을 제9회 전국기능경기대회에 출전하여 모교에서는 최초로 동력배선 직종에서 금메달을 수상했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국가대표선수가 되기 위한 마지막 관문인 국가대표 선발 대회에 출전해 당당히 태극마크를 가슴에 달았다. 그의 꿈을 실현하기 위한 한 걸음 한 걸음 내딛고 있는 것이었다.

세계선수들과 겨룰 국가대표로 선발 된 이 대표는 자신의 최고 목표이자 꿈의 도전인 세계제패를 위해 그야말로 죽을힘을 다해 돌진했다. 국가대표선수의 훈련과정은 녹녹치를 않았으며 전국 전지훈련과 합숙훈련과정 중 체력적으로 너무 힘들어 쓰러져 병원에 입원한 적도 있었다.

약 10개월간의 고된 훈련과정을 마치고 1975년 9월 3일 국제기능올림픽대회에 출전하는 한국선수단 결단식과 출국신고를 마치고 대회가 개최되는 스페인 마드리드를 향해 장도에 올랐다.

“1975년 국제기능올림픽 금메달로 모진 꿈 실현”

드디어 대망의 경기 첫날 과제를 검토해본 결과 그렇게 어려운 과제는 아니었으나 단지 작품의 형태가 훈련 때 한 번도 해보지 않은 것이었다. 그런데 경기가 시작되고 얼마간의 시간이 지났을 때 다른 선수들의 작업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는데 그것은 작업시간에 큰 영향을 주는 공구였다.

이 대표는 “대부분의 선수가 최신 공구를 사용하고 있었으며 나만 옛날 방식의 공구로 훈련했던 것이다. 내 공구로는 도저히 시간 내에 작품을 완성 할 수 없다는 것을 판단하고 깊은 시름에 빠졌다”며 “그런데 용기를 내 공구를 빌려 볼 요량으로 통역을 통해 협조요청을 했고 너무나 고맙게도 옆자리 일본선수와 스페인 선수로부터 최신공구를 빌려 쓸 수 있는 행운을 얻게 됐다” 말했다.

그렇게 공구 문제를 해결한 이 대표는 3일간의 결전을 치른 이 대표는 동작체크를 철저히 한 후에 작품을 제출했다. 여러 가지 불리한 조건이 있었지만 최선을 다한 만큼 결과와 무관하게 후회는 없겠다고 생각한 이 대표는 드디어 국제기능올림픽대회 동력배선직종에서 대한민국 최초로 금메달을 수상한다.

이 대표는 “내 인생 최고의 목표이자 꿈의 도전이었던 세계제패를 이룬 순간이었다. 시상식에서 스페인 황태자로부터 내 이름이 새겨진 금메달을 받는 순간 감격의 눈물이 북받쳐 올랐다”며 뭉클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또 “귀국 후에는 청와대에 가서 대통령으로부터 국위선양에 대한 치하를 듣고 상금과 동탑산업훈장을 수여받는 영광도 얻게 되었으며 모교로 돌아와 예전에 나에게 세계재패의 꿈을 꾸게 해주었던 선배의 자리에 내가 서있게 되었을 때의 그 감격은 영원히 잊을 수가 없다”고 말했다.

“재능기부와 후진양성 통해 국가에 보답하는 게 행복”

이후 이 대표는 신기술 습득과 후진 양성을 위해 공부를 더 하기로 결정하고 야간전문대학에 입학해 학업에 정진한 결과 기사2급 자격증을 4개나 취득하여 전기과에서 최다 자격취득자로 등극했다.

그리고 1988년 대한민국명장으로 선정됨으로써 숙련기술인의 정점을 찍었다. 이 대표는 전기공사 직종으로는 최초로 선정돼 ‘대한민국 전기공사 명장 1호’가 된 것이다.

또 기능경기대회를 통해 연속 금메달 만 5개를 수상하는 한국 최초의 기록을 세웠으며 국제기능올림픽대회에서도 동력배선 직종에 대한민국 최초의 금메달을 수상했다.

그 동안 이 대표는 슬림형 브라운관, PDP, LCD 관련 제조장비의 개발 및 제작에 최선을 다해 일해 왔으며, LG전자 프로젝트 사업에 참여하여 수많은 종류의 디스플레이 제조용 장비를 제작하여 국내 및 미국, 영국, 중국, 인도네시아, 멕시코 등지를 수없이 다니며 장비설치와 시운전을 해주는 일을 했다. 또 기존 국내 및 해외공장의 노후장비를 최신형으로 교체 또는 개조를 하는 일을 장기간 했다.

그리고 못 다한 학업을 보충하기 위해 90년 3월에 경일대학교 야간부 전기공학과에 편입하여 학사 학위를 받았다.

이렇듯 늘 앞서가는 이 대표는 자신의 기업경영에 만전을 기하는 한편 사회공헌활동에도 적극적이다. 대한민국명장으로서 후진 양성을 위한 강의는 물론 각종 국내기능경기대회에서 다양한 역할을 소화하고 있다. 또한 자신의 기술을 통해 불우이웃을 돕는데 앞장서고 있다.

이 대표는 득테크의 비전에 대해 “그 동안 직장생활을 해오면서 얻은 경험과 익힌 기술을 바탕으로 자동화 설비 제어업체로 충실히 실행해 온 자산을 바탕으로 변함없는 도전 정신을 더욱 불태울 것”이라며 “신뢰성, 제품, 모든 면에서 모범이 되고 본보기가 되는 기업의 입지를 탄탄하게 다져 사회에 기여하는 기업으로의 모습을 보이겠다”고 말했다.

또한 “대한민국명장으로서 다양한 재능기부활동과 후배양성을 위한 기술전수 활동 등 국가로부터 받은 혜택을 조금이나마 보답할 수 있게 노력 할 것”이라며 연구개발에도 최선을 다해 ‘인생의 금메달’을 향해 계속 도전 할 것이라고 역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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