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 본질은 소통…특정의 용건에서 벗어나고 이해관계를 넘어선다”

조동일 작가
조동일 작가

 

조동일 작가

“예술의 본질은 소통…특정의 용건에서 벗어나고 이해관계를 넘어선다”

“미술이 자연을 무시하고, 자연과 결별한 것이 가장 큰 잘못”

평생의 대학교수 생활을 마무리하고 현재 대한민국학술원 회원이자 서울대학교 명예교수인 조동일(趙東一)작가가 드디어(?) 자연스럽게 ‘그림’ 속으로 들어왔다. 고교 시절 뛰어난 그림 실력을 인정받아 미대에 진학하려했던 조 작가의 계획은 주변의 만류로 방향을 틀게 됐다.

그리고 이제 마음속으로 그리던 그림을 실제로 그리는데 온 시간을 바치고 있다. 조 작가는 “연구보다는 창작이, 문학 창작보다는 미술 창작이 더 즐겁다는 것을 절실하게 깨닫는다”고 진솔한 감정을 토해냈다. 그 동안 국내외에서 수많은 그림을 보고 마음에 그려놓았다는 조 작가는 “국문학 공부에서 얻은 감흥과 식견을 그림에 옮기는 작업을 상상의 영역에서 계속했다”며 “그림을 다시 그리니, 문학에서 해온 작업이 화면에 나타났다. 동서양의 전통을 합치고, 한자 네 자로 화제(話題)를 써넣어 문학과 미술이 하나가 되게 한다”고 말했다.

조 작가는 ‘山水와의 소통’이라는 글에서 문학과 미술에 대한 다양한 접합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문학과 미술은 무엇을 나타내 감동을 주고 하는 점이 다르지 않아 서로 필요로 한다. 문학은 미술처럼 하고 미술은 문학처럼 하면, 문학도 살고 미술도 산다. 그러나 문학과 미술을 동시에 하지는 못한다. 어느 쪽에 시간을 더 바칠 것인가 하는 데서 경쟁이 시작된다.

정년퇴임을 하고 문학 창작을 할 것인가 그림을 그릴 것인가 하는 문제가 다시 제기되었으나, 그림을 택했다. 문학 창작은 ‘조동일 창작집’을 출간해 결별의 징표로 삼고, 있는 시간을 다 바쳐 그림을 그리기로 했다. 학문도 즐겁지만 그림은 더욱 즐겁다. 그림은 말이 아니고 논리를 넘어서는 형상으로 이룩하는 창조이기 때문이다. 그렇더라도 전문적인 화가가 되었으면 평가를 받고 생계를 해결해야 하는 두 가지 어려움을 겪어야 했겠는데, 지금 하고 있는 작업은 그런 부담이 없어 더욱 즐겁다.

그림을 그리지 못하고 지낸 오랜 기간 동안 나라 안팎에서 구경은 열심히 했다. 세계 여러 나라 미술관을 있는 대로 찾아 되도록 많은 시간을 보내면서 그림에 대한 동경과 소망을 키웠다. 문학 작품 특히 고전을 읽고 연구하면서 그림도 탐구하고 구상하는 데도 활용했다. 마음속에서 그려 깊이 간직하기만 하던 그림을 이제 밖에 내놓으니 황홀하다.

예술의 본질은 소통이다. 예술에서 하는 소통은 특정의 용건에서 벗어나고 이해관계를 넘어선다. 의식의 깊은 층위에까지 이르는 절실한 소통을 널리 확산해 즐거움을 누리도록 하니 예술이 소중하다. 그러면서 소통하는 방식은 예술 갈래에 따라 다르다. 미술은 언어의 장벽을 넘어서서 시각적인 조형물을 만들어낸다. 시간은 배제하고 공간만 사용한다. 그래서 미술에서의 소통은 다른 어느 예술보다 분명하고 직접적이다.

미술에서는 그리는 대상끼리의 소통, 그리는 대상과 그리는 사람의 소통, 그려놓은 작품과 보는 사람의 소통, 그린 사람과 보는 사람의 소통, 보는 사람들끼리의 소통이 시차를 두지 않고 한꺼번에 이루어진다. 이처럼 다면적인 소통에 즉시 동참하는 감격을 누리도록 한다. 언어의 장벽이나 문화의 차이를 넘어서서 소통을 함께 경험할 수 있게 한다.

그런데 오늘날의 미술 창작은 세계 어디서든지 소통에 차질이 생긴 것들이 많아 실망스럽고, 경향이 혼미해 어떻게 하면 잘 한다고 말하기 어렵다. 비전문가 창작은 장외의 특권이 있어 유행을 따르지 않는 자유를 누리면서 전환에 앞설 수 있다. 편벽되고 기이한 것들을 조작해 시선을 끌려고 하지 않고 소통을 정상화하는 큰 길을 여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

미술이 자연을 무시하고, 자연과 결별한 것이 가장 큰 잘못이다. 자연 파괴가 개발이고 발전이라는 낡은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자연을 존중하고 자연과의 소통을 회복해야 오늘날 인류가 겪고 있는 갖가지 불행을 치유할 수 있다. 자연을 그리는 대상으로 삼기만 하면 소통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자연의 경치가 흥취이고 이치임을 그림을 그려 나타내는 오랜 전통을 되살려야 한다. 경치를 눈으로 보는 데 그치지 않고, 흥취를 함께 누리고, 공통된 이치를 체현하는 경지에까지 이르러야 한다.

이렇게 설정한 목표를 내 나름대로 달성하려고 오래 누적된 갖가지 관습을 과감하게 깨는 그림을 그린다. 먹과 과슈 물감을 함께 사용해, 수묵화와 채색화, 동양화와 서양화의 구분을 넘어선다. 관념산수화와 진경산수화가 하나이게 한다. 고인의 그림을 오늘날 방식으로 다시 그리기도 한다. 수채화처럼 보이기도 하고 유화 같기도 한 중간물을 내놓는다. 그림과 글, 미술과 문학의 소통을 위한 지혜를 이어받으려고 화제(畵題)를 한문 사자성어로 써서 천하동문(天下同文)의 여러 나라 많은 벗에게 보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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