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대운 대한장애인체육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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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욱재 기자
  • 승인 2019.07.09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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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평화와 번영의 길은 많은 사람들이 지지하고 또한 반드시 그렇게 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우리 겨레의 오랜 염원이다.

그래서 반드시 성사시켜야 할 과업이라고 생각하고 추진하고 있다. 더욱이 지난 2월 말 2차 북미 정상회담이 별 성과없이 마무리된 현시점에서 남북관계 개선에 도움이 되고, 북미관계 개선을 위한 돌파구를 마련할 수 있는 미래지향적이며 창조적인 비전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박대운 대한장애인체육회 대리

“북한 통과하는 유라시아 횡단은 한반도 통일의 지름길”

▲ ‘유라시아 20,000km 휠체어 횡단’을 계획하고 있는데 그 의미에 대해 말해 달라.

- 한반도 평화와 번영의 길은 많은 사람들이 지지하고 또한 반드시 그렇게 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우리 겨레의 오랜 염원이다.

그래서 반드시 성사시켜야 할 과업이라고 생각하고 추진하고 있다. 더욱이 지난 2월 말 2차 북미 정상회담이 별 성과없이 마무리된 현시점에서 남북관계 개선에 도움이 되고, 북미관계 개선을 위한 돌파구를 마련할 수 있는 미래지향적이며 창조적인 비전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유라시아 휠체어 횡단’은 유라시아 대륙의 동쪽 관문인 부산을 출발하여 판문점을 지나 북한을 종단하고, 러시아, 중국, 중앙아시아, 북유럽 등 20여 개국 20,000km를 무동력 휠체어와 자전거로 횡단하는 역사인식 전환 프로젝트로 반드시 완성되어야 한다.

이번 유라시아 대륙횡단 프로젝트는 남한과 북한의 주민,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유라시아 대륙에 흩어져 살고 있는 재외 동포들과 함께 한반도 평화와 번영을 기원하고, 2032년 남북 패럴림픽/올림픽 공동유치를 희망하고, 새로운 역사의 시작을 알리는 의미 있는 도전이 될 것이다.

까레이스키, 조선족, 고려인, 입양아, 파독 광부·간호사, 이민자 등은 지난 100년 동안 고국을 떠나 유라시아 전역에 흩어져 힘겨운 삶을 살아온 우리 동포들이다. 이 지역 동포들은3.1 운동 이후 100년의 아픈 기억을 고스란히 간직한 우리 시련의 역사이기도 하다.

100년 전 3.1운동은 19세기 제국주의에 맞서 싸운 최초의 반제국주의 시민혁명으로, 당시 식민 통치를 받은 나라의 국민들에게 큰 용기를 주었고, 중국, 베트남 등 아시아 국가들의 시민혁명과 독립운동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던 것으로 역사는 기억하고 있다.

프랑스는 혁명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에펠탑을 세웠고, 미국 독립 100주년을 축하하기 위해 자유의 여신상을 선물하기도 했다. 핀란드는 2017년 독립 100주년을 기념하는 거국적 행사를 개최하기도 했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인류사적 의미를 갖는 3.1운동 100주년을 상징하는 변변한 표지석 하나 갖고 있지 못하고, 아직도 우리의 역사를 왜곡하려는 국내외 반민족 세력들은 자랑스러운 우리의 역사를 폄훼하고, 새로운 미래로 가는 앞길을 가로막고 있다.

이럴 때 일수록 우리 미래를 위한 일을 우리 스스로가 개척하고 노력해야 한다. 역사를 잊지 않기 위한 노력, 평화와 번영을 위한 노력을 스스로 할 때 아시안, 유럽피언, 나아가서 세계인들로부터 한반도 평화와 번영으로 가는 담대한 여정은 동의 받고, 지지 받을 것이다.

한반도와 한민족이 겪었던 지난 100년 고난의 역사를 밑거름으로 한반도에 항구적인 평화와 지속적인 번영을 이룬다면, 다가오는 100년의 역사는 한반도의 평화· 번영 모델이 세계평화와 새로운 세계질서 확립의 중요한 이정표가 될 것이다. 한마디로 한반도의 평화·번영모델은 새로운 세계 질서를 만들어 나가는 나침반이 될 것이다.

또한, 3.1운동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2032년 남북 패럴림픽/올림픽을 공동으로 개최한다면, 3.1운동의 정신과 가치는 남북 패럴림픽/올림픽의 유산으로 후손들에게 영구히 전해질 것이다.

▲ 현재 진행 정도는 어떠한가.

- 지난 해 6월 12일 북미정상회담 때까지만 해도 북한을 통과하는 유라시아대륙 20,000km 휠체어횡단은 이뤄질 수 있으리라 확신했다. 그래서 계획대로라면 3.1운동 100주년이 되는 올해 3월 1일, 부산을 시작으로 이베리아반도를 향해 출발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북한통과 계획은 예상보다 훨씬 어려웠고, 모든 것이 더디게 진행되고 있다.

그래서 지난 3월 1일에는 출발은 하지 못했고, 프로젝트 시작을 알리는 출범식을 올림픽공원 평화의 문 광장에서 프로젝트추진위원회 회원들과 진행했다. 또한 지난 4월 27일 남북정상회담 1주년 기념일에는 ‘DMZ 평화 인간띠’ 잇기 운동에 동참하여, 동서 평화의 인간띠가 남북 평화의 길로 이어지기를 기원하기도 했다.

조사에 의하면 한반도를 통과한 ‘유라시아 대륙횡단’은 지금까지 3번 정도 시도됐으나 북한 통과는 두 번 이루어 진 것으로 알고 있다. 이제 세 번째 북한을 통과하는 유라시아 횡단을 성사시킬 때가 된 것이다.

북한 당국의 승인을 받는 게 쉽지만은 않다. 그래서 국내 기관이나 단체와 더불어 UN 등 국제기구를 통한 북한통과 승인을 요청하기 위해 여러 방면으로 접촉하고 있다. 또한 개인적인 역량으로 대형 프로젝트를 추진하기 위한 재원 마련 및 국내·외 네트워크 구축 등에 한계를 절감하고, 프로젝트 추진과 향후의 지속적인 활동을 위해 비영리 단체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 어릴 때 사고를 당했다고 들었다. 어떻게 이겨 냈는가.

- 사고 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집 앞에 있는 재래시장을 간 적이 있었는데, 거기에서 나처럼 두 다리가 없는 장애인이 시장바닥을 기어 다니면서 물건을 파는 것을 봤다. 두 다리가 없는 장애인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어떻게 살 수 있는지’ 모를 때, 시장 바닥을 기어 다니면서 물건을 파는 장애인이 저의 미래가 될 수 있다는 두려움으로 괴로웠다.

그런데 얼마 후 우연히 TV에서 휠체어를 타고 구름 관중들 앞에서 당당하게 연설하는 사람을 보게 되었다. 미국의 32대 대통령 프랭클린 루즈벨트이었다.

시장에서 기어 다니며 물건 파는 장애인이 나의 미래가 될 수 있다는 두려움으로 절망하다가, 휠체어를 타고도 대통령이 될 수도 있다는 희망으로 다시 용기를 얻었다. 장애 때문에 절망하기보다 새로운 가능성을 보는 것이 인생에 이롭다는 생각을 그 때 처음하게 되었다.

▲ 장애를 극복하는데 어머니의 헌신이 대단했다고 들었다.

- 여섯 살 때 교통사고로 두 다리를 잃었고 휠체어 생활을 시작했다. 어릴 적 우리 집은 아버지 없는 한 부모 가정이었다. 어머니는 혼자서 생계를 책임지셔야 했기에 참 고단하게 사셨는데, 장애인 아들까지 키우는 수고를 감수하셨기에 그 어려움을 말로 다 할 수 없다.

그러나 어머니는 한 번도 나와 형에게 어려운 내색을 하신 적이 없었고, 항상 밝고 긍정적인 모습을 보여주셨다. 또한 집안 형편이 넉넉하지 않았지만, 어머니는 저희 형제의 뒷바라지를 넉넉하게 해 주었다. 먹을 거, 입을 거 부족함 없이 키우셨다. 친구들이 우리 집을 엄청 부자로 생각할 정도였으니, 어머니가 자식들에게 얼마나 헌신적이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어머니는 저를 자랑스럽게 생각하셨다. 집에 손님이 오면 항상 나를 먼저 소개했고, 소개할 때마다 장애보다는 장점을 먼저 말해 나 스스로도 자랑스럽게 생각하게 되었다.

나는 활달한 성격이었기에 장애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친구들과 노는 것을 무척 좋아했다. 또 운동하는 것을 좋아했기 때문에 하루가 멀다 하고 옷을 찢어 먹는 경우가 많았다. 초등학생이던 1982년에 우리나라에도 프로야구 시작되고 나 역시 야구에 빠져 땅바닥을 기어다면서 만날 옷을 찢어먹고, 다치기도 많이 했지만 어머니는 한 번도 싫은 내색 하시지 않고, 더 열심히 하라고 격려해 주셨다.

어려운 형편이었지만 고가의 야구 장비 일체를 사주셨고, 엉덩이 상한다고 바지에 헝겊을 덧대어 주시기도 하셨다. 비록 장애를 가졌지만, 어머니 덕분에 장애를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고 장애 때문에 용기를 잃지 않을 수 있었다.

▲ 장애를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은.

- 큰 사고를 2번 당한 장애인이 있었다. 사고로 허리를 다쳐 척수장애인이 되어 휠체어를 타게 되었고, 다른 사고로 목을 다쳐 손도 쓸 수 없는 아주 힘든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그렇지만 긍정적인 자세로 열심히 노력하여 큰 사업도 일구었고, 사회적으로도 성공한 사람이 되었다.

그는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기자가 “한 번의 사고도 아니고, 두 번의 큰 사고를 당하고도 어떻게 이렇게 성공적인 삶을 살 수 있습니까?” 하고 묻자, 그는 “나는 사고 전에 대략 20,000가지의 일을 할 수 있었다. 첫 번째 사고로 허리를 다쳐 두 다리를 못 쓰게 되니까 10,000가지 정도의 일밖에 할 수 없었다. 그러다가 두 번째 사고로 목을 다쳐 손도 쓸 수 없게 되니까, 한 2,000가지일밖에 할 수 없게 되었다. 나는 내가 할 수 없는 18,000가지 일을 고민하기보다 내가 할 수 있는 2,000가지 일에 감사하고 집중했다”고 말했다.

사람들은 나에게 다리가 없어 얼마나 불편하냐고 묻는다. 그럴 때 나는 “튼튼한 두 팔이 있어 감사합니다” 라고 답한다.

인생에서 ‘긍정적인 자세’는 의무라는 말이 있다. 이순신 장군도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있습니다’ 라고 생각하셨기에 수적으로 열세인 명랑해전에서 왜적을 압도적으로 제압할 수 있었다.

▲ 인생목표는 무엇인가.

- 거창한 목표는 갖고 있지 않다. 후회 없이 살고 싶고, 나 자신도 행복하고 가족과 주변 사람들에게 행복을 줄 수 있는 그런 삶을 살고 싶다. 다만 장애인으로 살아오면서 경험하고 습득한 노하우와 지혜를 고령사회의 노인문제를 푸는데 일조하고 싶은 바람을 가지고 있다.

지인들 중 질병에 걸리거나 노화에 따른 장애를 가지게 되면 나에게 이것저것 자문을 구하는 경우가 많다. 장애인을 위한 제도, 적합한 병원, 자신에게 맞는 보장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것을 문의한다. 어릴 적 장애 때문에 비장애인들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았는데, 이제는 장애 덕분에 그 때 받았던 도움을 비장애인들에게 되돌려 주고 싶다.

앞으로 우리나라는 노인문제로 많은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래서 40년 넘게 장애인으로 살면서 경험하고 습득한 지혜를 고령사회에 노인 장애인문제를 해결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는 일을 할 계획이다.

<프로필>

○ 1971년 대구 출생

○ 2001년 연세대학교 신문방송학과 졸업

○ 1983년 대구시장 수여 <장한 어린이> 표창

○ 1991년 대구로터리클럽 수여 <모범 청소년> 표창

○ 1992년 제1회 전국휠체어마라톤대회 7위

○ 1998년 2002년 한일월드컵홍보 2002km 유럽5개국 휠체어횡단

○ 1998년 IMF 극복 삼성그룹 PR '할 수 있다는 믿음‘ 시리즈 광고모델

○ 1999년 2002년 한일월드컵 성공기원 한일4500km 휠체어 국토종단

○ 2001년 자서전 출간 <내게 없는 것이 길이 된다>

○ 2006년 대통령 표창 <올해의 장애 극복상> 대상 수상

○ 2007년 대한장애인체육회장 <모범직원상> 수상

○ 2008년 문화체육관광부장관 표창 수상

○ 2006년부터 현재까지 대한장애인체육회(Korea Paralympic Committee) 재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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