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한지 (사)한지산업기술발전진흥회 회장
차한지 (사)한지산업기술발전진흥회 회장
  • 손병일 기자
  • 승인 2019.09.03 0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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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한지를 소재산업으로 발전시켜 국제시장 복원해야

 

차한지 (사)한지산업기술발전진흥회 회장

전통 한지를 소재산업으로 발전시켜 국제시장 복원해야

한지(韓紙)를 세계적인 콘텐츠로 육성 해보겠다는 일념으로 올곧이 20여년을 받쳐 온 차한지 (사)한지산업기술발전진흥회 회장. 그러나 한지에 대한 일반인들의 관심은 그때나 지금이나 밋밋하고 한지 장안들의 생활은 별반 달라진 게 없고, 초라하게 사라지는 산업으로 치부되는 현실에 마음이 찢어질 듯 아리다고 말하는 차 회장. 다음은 차 회장과의 일문일답.

▲ 서울 돈의문박물관마을에서 열린 한지공예전에 대해 말해 달라.

- 사)한지산업기술발전진흥회 부산지회 회장이자 부산시 선정 공예명장인 정계화 선생이 이끌고 있는 고현한지연구회 소속 작가들의 작품을 전시하고자 올해 초에 연구회 회원들과 전시회를 갖기로 하고 수개월간 심혈을 기울여 완성된 작품을 전시하게 되었다.

돈의문박물관마을에서의 전시는 한지공예의 차별화된 품격이 있는 작품을 엄선했다. 이번 전시회에 출품된 작품들은 그 동안의 한지공예에서 쉽게 접하기 어려웠던 차원 높은 작품으로 구성됐으며 ‘생활 속의 한지’라는 슬로건 아래 한지공예의 새로운 이정표를 제시한 것이다.

그래서인지 전시관을 찾는 관람객들은 지금까지의 한지공예에서 경험하지 못했던 아름다운 작품이라며 많은 찬사를 보이고 있다.

▲ 한지를 접하시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 소위 밀레니엄시대라는 2000년 즈음에 국내에 이민바람이 불었다. 그 당시 가까이 지내던 한 친구가 캐나다로 이민을 가는 계획을 세우고 멀리가면 고국이 생각날 때마다 향수병을 달랠 극히 ‘한국적인 것’을 찾아 봤다. 그래서 힘들고 외로울 때 의지도 되고 향수도 달래고 조국을 회상할 수 있는 것이 바로 한지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당시 충청북도 관광과에 전화를 하니 괴산에 한지공방이 대를 이어 지키는 장인이 있다고 하여 소개를 받아 괴산을 방문하게 되었다. 그런데 괴산에 신풍한지를 처음 방문한 순간 너무나도 열악한 환경에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장인의 한지 생산하는 모습을 보면서 가슴 한쪽이 짓눌러 오는 말로 형언할 수 없는 묘한 감정이 주체할 수 없이 솟구쳤다. 이러한 감정이 한지에 꽂혔고 한지를 세계적인 문화 콘텐츠로 육성하겠다고 결심했고 오늘까지 오게 되었다.

그런데 한지를 알고 한지를 세계적인 콘텐츠로 육성 해보겠다는 생각으로 어언 20여년을 한지를 생각하며 지내온 세월을 뒤돌아보면 그때나 지금이나 한지 장안들의 생활은 별반 달라진 것은 없고 더욱 초라하게 사라지는 산업으로 치부되는 게 슬플 따름이다.

▲ 그동안 한지를 위해 해 온 다양한 활동에 대해 말해 달라.

- 2000년도만 해도 한지중요무형문화재가 없었다. 한지중요무형문화재는 2005년 9월 문화재청에서 류행령 선생님을 대한민국 최초로 한지중요무형문화재 제117호로 지정하게 되었다.

한지가 국가에서 중요무형문화재인정이 되는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무형문화재로 지정되고 얼마 있지 않아서 정부는 류행령 장인께서 고령이라는 이유로 2008년 12월 중요무형문화재에서 명예보유자로 재지정하며 한지중요문화재를 재심의 하게 된다. 명예보유자로 재지정 되고 마음고생을 하다 2013년 8월 운명을 달리 하게 된다.

한지장인의 길은 고되고 험난한 길이지만 천직으로 알고 묵묵히 평생 한지를 위해 살아오신 류행영 한지장인은 괴산신풍한지 안치용을 후계자로 삼으시고 장인의 길을 전수했다. 현재 안치용 장인은 충북무형문화재로 활동하고 있다.

최초의 한지장 류행영 선생님 이후로 두 번째로 가평의 장용훈 선생님과 임실의 홍춘수 선생님께서 2010년 2월 국가중요무형문화재 한지장 117호로 지정되었다. 두 분의 한지장 선생님중 장용운 선생님은 2016년 8월 작고했으며 현재 한지중요문화재는 홍춘수(1942년생) 선생님 한분만 생존해 계시다.

▲ 한지를 소재산업으로 발전시켜야 한다고 말했는데.

- 전통은 전통 그대로의 가치를 더하여 한지가 지니던 옛 명성을 회복해야 한다. 전통한지의 옛 명성은 역사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미래의 소재로 바라보고 산업으로 발전시켜야 한다. 전통한지에 과학기술을 더하여 위조할 수 없는 한지를 연세대학교에서 이미 과학화 시켜 놓고 때를 기다리고 있다.

전 세계에서 외부로 유출되거나 보안을 요하는 보안용지, 각국의 최고 기밀을 요하는 VIP용지 등으로 발전 시켜나가고 지류문화재의 손실로 인한 복원 용지로 발전 시켜나가야 한다. 특히 예술용지의 개발은 새로운 시장에서 수요창출이 가능한 분야로 종이를 활용하는 세계적인 예술가들에게 있어 한지를 본인 고유의 예술용지로 공급할 수 있는 과학기술이기에 많은 관심이 필요하다.

지금은 서예(書藝)라고 말하지만 글은 도를 지키는 것이라 하여 서도(書道)로서 예법을 지켜오고 있었지만 지금은 서도를 예술장르에 편입하여 서예라고 부르고 있다. 한중일 삼국에서 서예의 최고 장인들은 우리 전통한지의 우수성을 인정하고 지금도 우리 한지를 찾고 있지만 옛 방식 그대로 한지를 생산하는 장인이 몇 분 안 계셔서 안타까움만 더할 뿐이다. 중국이나 일본은 서도의 예법을 지켜오며 도를 지키는 서예장인들의 한지 사랑은 지금도 대단하지만 우리의 사정이 녹녹치 않아 씁쓸할 뿐이다.

▲ 한지를 양심 것 생산하는 장인이 많아져 전통한지 국제시장을 복원시켜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 현재 인사동이나 지방에서 판매되고 있는 한지의 90% 이상은 수입된 동남아산. 중국산이 한지로 둔갑 되어 판매 되고 있는 실정이다.

국내에서 생산되는 한지 역시 동남아에서 수입된 닥나무 펄프가 한지로 생산되어 판매되고 있기에 한지의 원료 국산화 및 한지 생산의 국산화 문제는 시급한 실정이며 한지정체성에 문제가 되고 있다.

이를 위해 한지의 원료가 되는 닥나무 대량 재배지도 추진되어야 하며 닥나무 대량 재배지가 만들어지면 한지 원료의 국산화와 닥나무 펄프 수입대체 효과로 우리 농민이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기회도 제공되어 한지 국산화 운동이 활발하게 이루어 질수 있다.

전통 한지로 만들어진 한지 스피커는 세계 오디오 마니아들이 소장하고 싶은 천상의 스피커로 인정을 받고 있으며 전통과 기술적 가치는 감동이 아닐 수 없다. 또 한지로 만들어진 한지 섬유시장도 새로운 시장으로 부상 하고 있다.

그러나 일부 비양심적인 생산자들이 한지가 아닌 것을 한지로 둔갑시켜 한지산업 시장을 흐리고 있는 것 도 안타까운 일이다.

▲ ‘한지가 곧 반도체’라고 주장하는 근거는 무엇인가.

- 한지가 최초 생산된 시기에는 그 시대의 반도체나 진배없다. 우리나라가 반도체 강국이 될 수 있는 것도 한지의 역사 속에서 찾아볼 수 있다. 우리나라가 통신 강국이 될 수 있는 것도 역사 속에서 찾아볼 수 있다.

세계 해전사에 길이 남을 이순신장군의 백전백승의 비결이 전술비연의 통신교육을 하여 수군들이 일사 분란하게 움직여 해전에서 승리한 것도 전술비연이 통신수단으로 사용 되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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