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희순 대한민국명장 

전통자수 ‘천년의 올을 잇다’展…43년 올 곧은 刺繡 인생

육지에서 강화대교를 넘자마자 좌회전해서 논길을 가로질러 도착한 갤러리 더 웨이(THE WAY). 이곳에 매우 특별한 전시회가 열려 있다. ‘전통자수, 천년의 올을 잇다’전(展).

2020년 2월 29일까지 열려 있을 이 전시회는 대한민국 자수(刺繡)명장 유희순(劉喜順)과 전승자들의 작품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다.

유 명장은 “이번 전시는 누구나 한번 쯤 나들이 하고픈 아름다운 힐링 장소로 여겨지는 강화도의 작은 마을, 예쁜 공간의 갤러리에서 후학들과 함께 하는 매우 뜻 깊은 시간으로 잇고 있다”고 말했다.

이번 전시회에 함께 하는 유 명장의 제자들은 박물관 미술관 등에 소장되어 있는 전통자수유물을 중심으로 충분한 재현작업을 통해 실력을 다져 왔으며 이미 오래전부터 대한민국전승공예대전 및 그 밖의 크고 작은 공예공모전에서 다수의 수상경력을 갖고 있는 전승자들이다.

동국대학교 미래융합교육원 주임교수이기도 한 유 명장은 특히 ‘달항아리’ 주제를 갖고 ‘우주(CHAOS), 지구(EARTH), 환상(FANTASY)’이란 공간의 언어를 심도 있게 들어가서 본질을 자수로 표현하고 있다.

또 닥나무 껍질을 가공한 닥피에 하늘로 향한 가로수 길의 쭉 뻗은 나무의 질감을 살려 표현한 작품으로 세계 최초로 시도한 자수 작품 ‘<선목(ZENTREE)’도 눈길을 끈다.

유 명장은 “전통자수는 많은 정성과 인내를 필요로 하는 작업인 만큼 한 땀 한 땀 수놓음으로서 가족의 안녕과 기원으로 안정되고 침착한 정서적 요인으로 자리할 수 있으며, 최상의 아름다움을 표현할 때 어떤 분야를 막론하고 ‘수를 놓은 듯이’란 언어를 사용하므로 아름다움의 대명사로 꼽기도 한다”고 정의했다.

▲ 이번 전시회의 취지와 의미는 무엇인지요.

- 사라져가는 전통자수의 맥을 계승․발전시키기 위한 작은 움직임이라고 말하고 싶어요. 우리나라 전통자수의 우수성과 아름다움을 널리 알리고 이를 계기로 전문적으로 배우고 싶어 하거나, 취미로 배우고 싶은 사람들에게 길을 이어주고 싶습니다.

▲ 강화도에 위치한 작은 갤러리인 ‘더 웨이’를 선택한 이유가 있는지요.

- 이 곳이 서울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는 지리적 단점이 조금은 있지만 서울이나 대도시에서 전시회를 할 경우에는 기간을 길게 잡을 수 없다는 애로사항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곳에서는 77일간 여유롭게 관람할 수 있다는 작가로서는 매우 큰 장점이 있습니다. 물론 관람객들도 조급해 하지 않고 자기 일정에 맞춰 한가로이 방문할 수 있다는 것이 매력이지요.

아마도 가장 이유는 도심의 각박한 리듬에서 여유를 찾고자 하는 마음으로 선택하게된 것입니다. 갤러리 찾아가는 길이 곧 힐링의 장소로 바람 쐬러 교외로 떠나고 싶은 곳이라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 이번 전시회의 구성과 기대효과는 무엇일까요.

- 갤러리 1층은 저를 비롯한 제자 28명이 우리나라 전통자수의 유물재현 작업을 위주로 전시작품을 설치하였고, 2층에는 저의 새로운 신작 ‘달항아리’시리즈(우주, 지구, 환상, 사랑 등)와 닥피(닥나무 껍질)에 수놓은 작업 선목(ZENTREE)을 중심으로 전시 공간을 채웠습니다.

이번 전시회에서 가장 중요한 기대효과는 전통자수의 유물재현 작업을 전수받은 제자들이 자신의 작품을 발표함으로써 스스로의 역량과 서로 다른 전승자의 작품에서 신선한 영감과 선의의 자극을 받아 더 큰 작품세계로 도약하고 발전하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그리고 자수명장인 저는 우리나라의 전통자수 문양으로만 작업한 작품으로는 세계시장을 겨냥하기에는 작품의 한계에 부딪혀 전통자수 기법을 토대로 현대에 맞는 새로운 디자인을 개발하여 앞으로 세계무대로 나설 수 있는 단초를 마련했다는 것입니다.

▲ 제자들과 공동전시를 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 그 동안 열심히 익힌 솜씨를 이번 전시회를 통해 일반 관람객들에게 보인다는 그 자체로 큰 공부가 될 것입니다. 이를 가까이에서 이끌어 줌으로써 차근차근 전문 작가로 성장하는데 중요한 발판이 되기도 하고 뿌듯함으로 작품 전승활동에 용기를 불어 넣기도 합니다. 따라서 스승으로서 전시참여를 마땅히 권해야 될 부분이고 전시도록과 전시장 디피, 개막식 행사 등 하나하나에도 교육의 의미가 담겨진 것입니다.

이번 전시회에 출품한 제자들은 누구인가요.

- 다들 학교에서 몇 년씩 수학한 전승제자들로서 대한민국전승공예대전 및 각종 공모전에서 다수의 수상경력을 갖고 있습니다. 제자들의 이름을 가나다순으로 말씀드리면 강상희 강현옥 곽미지 곽민정 김민정 김소진 김해자 박순정 박임순 박태홍 박현주 방정순 성강희 양영심 엄영민 유혜정 윤교순 이난숙 이영자 임미선 장현성 정다연 조경숙 조금희 조원란 제영주 최은교, 그리고 일본 제자인 요코이가즈코입니다.

▲ 우리나라 전통자수 현실에 대한 생각은 어떻습니까.

- 한 올 한 땀씩 모든 과정을 직접 손으로 완성해야 하는 전통자수는 그 만큼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에 비해 경제성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는 현실이 안타깝기만 합니다.

더구나 하나의 자수제품을 제작하기 위한 물품들은 최고의 고급 부속품들로 그 작품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고액을 투자해야 되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상업적 면으로만 판단해서는 승산이 없는 게 사실입니다.

이러한 어려운 상황에서도 오로지 우리나라 전통자수의 아름다움과 생활도구로 쓰인 자수의 맥을 잇기 위한 작업은 한 땀 한 땀의 기도로 이루어지는 심연을 느끼고, 그로인한 작품들은 기도 또한 그만큼 커지기 때문에 실오라기 잇는 식으로 이어진다고 봅니다.

▲ 향후 작품 활동 계획은 어떤지요.

- 우리나라 삼국시대부터 이어져 온 전통자수의 아름다움을 계승, 발전시키고 더 나아가 시대에 맞는 창의적인 작품을 개발하여 세계시장에서 주목받고 싶습니다.

조선시대 유씨 부인의 조침문이란 시에서도 언급했듯이 바늘로 수를 놓는 정서는 그 무엇과도 비교될 수 없는 나만의 시간과 공간, 즉 규방에서 여인네가 할 수 있는 작업으로 깨우침의 경지에 이르게 하는 도구이기도 한 것입니다.

그리하여 나와의 공간에서 뗄 수 없는 작업이고 이를 지속적으로 이어나가 우리나라 자수발전에 한 획을 긋고자 합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전통자수의 전승 작업과 교육으로 일관해 왔듯이 공방에서는 시대가 요구하는 새로운 시도의 작품과 전통자수의 유물원형 재현작업을, 그리고 학교 및 강단에서는 제자들에게 유물재현 작업을 올곧게 전수하여 전통자수 천년의 올을 아름답게 잇고자 합니다.

2002년 자수공예부문 대한민국명장으로 선정된 유 명장은 43년간 ‘자수’와 삶을 같이 하고 있다. 1983년 제8회 대한민국전승공예대전에서의 입상을 시작으로 1985년 노동문화재 수예부문 대상, 1994년 한수예술제 최우수상, 1997년 신미술대전 공예부문 대상 등 다수의 공모전에서 많은 상을 수상했다.

또한 2000년에는 한국밀레니엄 상품으로 선정되며 산업자원부장관상(은상) 및 우수공예문화 100선에도 선정된 바 있다. 최근에는 국가직무능력표준(NCS) 섬유공예부문의 전문위원으로 위촉되어 출제와 최종검토위원으로 활약했고, 2013년 문화관광부에서 제작한 국가브랜드 홍보영상에도 출연했다.

유 명장의 작품은 외국 귀빈이 방한(訪韓)할 때 더욱 빛난다. 1999년 영국 엘리자베스2세 여왕의 방한 당시, 여왕이 앉는 방석과 숄을 제작했는데 특히 여왕 이름의 영문 사인을 한글로 바꾸어 수놓기도 했다.

또한 지난 2005년 부산에서 개최된 ‘APEC 정상회의’에서 벡스코 컨벤션홀 의장석 뒤를 장식했던 ‘일월오봉도’를 제작하며 세계적인 이목을 끌었다. 해와 달, 다섯 봉우리, 소나무, 폭포의 형상이 좌우대칭으로 배열되어 있어 조선왕실의 위엄을 상징하는 이 작품은 가로 624cm, 세로 348cm의 크기로 제작됐는데 명주실이 무려 12kg이나 사용된 국내 최대 작품임을 자랑한다.

유희순 대한민국명장
유희순 대한민국명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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