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현 스님

話頭 ‘板齒生毛’… ‘날마다 좋은 날’은 자기 마음속에 있는 것

 

<박스>

‘날마다 좋은 날’ 전시회

4월8일-4.17

나무갤러리(조계사 경내)

 

‘머리 둘 달린 어리석은 공명조. 마음의 눈을 뜬 문수동자는 지혜를 얻고 진면목의 소를 타고 구멍없는 피리를 분다. 환희의 노란 연꽃은 금빛 광명 속에 피어나 사바의 고뇌를 불사르니 자유와 평온함을 얻어 날마다 좋은 날 우담바라로 피네.’ 정현(正玄) 스님 ‘그림’의 대주제인 ‘날마다좋은날되소서’를 글로 그려낸 설명이다.

정현 스님의 화두(話頭)는 ‘판치생모(板齒生毛)’다. 판치생모는 선가(禪家)에서 생소한 문자는 아니다. 성불(成佛)의 화두로 쓰인지 오래이기 때문이다. 판치생모를 글자그대로 해석하면 ‘판자에서 이빨이 나고, 이빨에서 털이 난다’는 말이지만 매우 추상적이며 초현실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정현 스님은 부처님의 제자로 수행정진하면서 예술적 사유(思惟)와 미감(美感)을 통해서 그린 선(禪)을 바탕으로 한 초현실주의 작품을 선보이고 있는데 이것이 곧 판치생모라는 결론에 도달하는 것이다.

미술 전문가들은 “스님의 그림은 정상적인 사물의 표현이 아니고 현실을 초월한 방법이며 새로운 불교선화로서 독창성을 내포하고 있다. 따라서 서양의 피카소와 같은 맥락”이라며 “사물의 정형(定型)을 단순히 모사(模寫)하는 것이 아니고 수행자의 심상(心想)으로 원형을 재창조하는 선적인 예술행위이며 정신주의에 근거한 화두와 같은 독특한 예술의 모습”으로 분석하고 있다.

‘붓’이 깨달음이 되어 새로운 ‘境地’를 이룬다

특이한 것은 정현 스님은 그 누구에게 사사(師事)한 적이 없다한다. 스님은 “무엇을 그리겠다고 미리 생각하지 않고 붓을 들어 화폭에 대면 스스로 깨달음을 얻어 새로운 경지를 찾아가게 되고 또 하나의 ‘좋은 날’이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스님의 그림은 주로 연꽃과 물고기, 보살상, 후광(後光), 쌍두 공명조 등 불교적인 소재를 택하고 있다. 비교적 단순한 소재를 이용해서 무거운 주제를 소화하는 것은 선적인 경지에 이르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정현 스님은 과거 충남 공주 마곡사 태화산 골짜기 토굴 화림원(華林苑)에 칩거하여 문수도와 달마도 등 선화를 많이 그렸다. 이러한 생활을 7년 동안 하면서 이곳을 찾아오는 불자 등 방문객을 위해 무려 1만5천점 이상 선화를 보시(布施)했다.

정현 스님은 선험(先驗)적인 영험(靈驗)과 삶을 통한 체험의 미학(美學)으로 자기만의 예술 세계를 구축하고 있다. 즉 독특한 개성과 차별성을 바탕으로 창조적인 예술을 완성한 것이다.

독창적인 자기어법에 순수와 신선감을 더해 세련미 넘치는 조형언어를 완성하고 있는 표현주의 성향의 예술이다. 이러한 화풍(畵風)이 탄생한 것은 누구에게 그림을 배운 게 아니라, 스님 스스로의 공부에 의한 것이다. 혹 남에게 그림을 배웠다면 독창적인 작품이 나오지 않았을 수 있다.

“면문(面門)은 나의 철학적 사유이자 신념과 지론”

정현 스님 작품의 주제와 사상들은 넓은 의미에서 우주와 지구촌 모든 사람들의 영원한 행복, 영원한 자유, 중생을 위한 ‘날마다 좋은 날’이 되는 것이다. 스님은 “면문(面門)은 나의 철학적 사유이자 신념과 지론”이라며 “얼굴은 그 사람의 사상과 철학 즉 오관이 숨 쉬고 있고, 문(門)은 나의 눈이자 세상을 달관하는 마음의 창”이라고 말했다.

정현 스님 작품에서 찾아볼 수 있는 또 하나의 특징은 ‘색채’다. 우리나라 전통 색인 화려한 오방색(五方色)이 작품에 흐르러지게 뿌려져 있다. 한마디로 오방색 ‘교접(交接)’의 극치미를 보여주는 것이다.

정현 스님의 작업노트를 살짝 열어 보았다. 그 곳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문수동자나 달마선사를 그리는 일은 세상을 맑게 하는 일이야. 문수동자는 지혜를 상징하지 않는가. 문수도를 나누는 일은 지혜를 나눠 갖는 일이요, 달마도를 갖는 일은 깊은 사려와 깨달음을 나눠 갖는 일이 아닌가.”

정현 스님의 그림은 대체로 이렇게 구성된다. 정중앙에 소를 탄 문수동자가 자리 잡고, 그 옆에 전설의 새 공명조를 소의 등에 자연스럽게 앉힌다. 대개 문수동자는 사자를 타고 있지만 소와 어울리게 한 것은 우리가 미완성의 문수이기 때문이란다.

그리고 반드시 함께 어우러지는 글귀는 '날마다 좋은 날 되소서'다. 대단히 간단하면서 쉬운 문구이지만 깊이는 절대 얕지 않다. '좋은 날'은 욕심으로 꽉 찬 날이 아니라 여여(如如)한 날, 한결같이 청정한 날을 의미한다.

정현 스님의 그림은 정신적인 설법일 뿐 아니라 선화 작업을 통한 정신설법이다. 이러한 정신은 1980년 미국으로 건너가 중생을 제도하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쫓아 본격적인 포교활동으로 연결된다.

스님은 LA 오렌지 카운티 정혜사 주지를 비롯하여 오래곤주 포트랜드 보광사 주지, 댄버 용화사 주지, 캘리포니아 금강선원을 개설하여 원장에 취임하는 등 열악한 조건에서도 불국건설에 소홀치 않았다. 뿐만 아니라 판화의 제작 등 선화수업도 게을리 하지 않아 많은 작품을 남겼다.

“스스로 번뇌를 다스리면 매일이 ‘좋은 날’이 될 것”

정현 스님은 국내에 다양한 연꽃을 보급했다. 왜일까. 스님은 “연꽃은 정토불국건설의 상징”이라며 “진흙 속에서 피는 꽃이지만 아름다운 자태와 그윽한 향기, 연대의 텅 빈 공간은 탐욕을 싫어하는 순도 높은 중용사상이 함축되어 있다”고 설명했다. 이렇듯 정현 스님의 종교관과 예술이 추구하는 최상의 목적은 인간주의 실현, 속박과 질곡에서의 인간의 해방, 인본주의 구현이다.

그렇다면 정현 스님이 말하는 ‘좋은 날’은 어떤 날인가. 첫 마디가 ‘자신에 달렸다’이다. '좋은 날'은 어느 특정한 날이 아니고 인간의 마음에 있는 것인데 어리석은 자는 ‘어느 날’에 매달리지만, 지혜롭고 용기있는 사람은 자신의 마음에 좋은 날을 만든다는 것이다.

그리고 강조하는 것은 바로 “'날마다 좋은 날'은 스스로 만들어 나가야 한다. 우리는 항시 나보다 남을 생각하는 대자비와 사랑, 봉사와 희생정신으로 이웃을 돕고 불행과 고통을 함께 나누는 사람이야말로 '날마다 좋은 날'을 만드는 사람”이라고 역설했다.

정현 스님은 마지막으로 이렇게 설법(說法)했다. “현실은 좋은 날 보다 고통과 슬픔으로 이어지는 날이 더 많기 때문에 어쩌면 매일 매일 나쁜 날이라고 할 수도 있다. 인간은 길일을 선호하고 액일을 피하지만 좋은 날인가 나쁜 날인가는 마음이 어떤 것인가에 달려있는 것이지 날짜에 연연하지 말아야 한다. 날마다 좋은 날은 집착심을 없애버리고 평안한 마음과 맑은 경지를 나타내야 한다. 즉 하루하루는 인간에게 최상의 날이며 소중한 날인 것이다. 기쁠 때는 즐거워하고 슬프고 괴로울 때는 울고 화날 때는 화를 낸다. 억지로 무엇을 하지 않으면서 현실에 있는 그대로 생활한다. 이처럼 시기와 장소에 따라 대응하면서 번뇌를 불러일으키지 않는다면 매일이 ‘좋은 날’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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