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쌍리 청매실농원 대표
홍쌍리 청매실농원 대표
  • 박석재 기자
  • 승인 2018.11.23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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梅實名人

 

섬진강 옆 武陵梅源…봄날 매화꽃잎의 饗宴에 취하다

 

3월이 되면 푸른 물결 흐르는 섬진강 바로 옆 산들은 온통 하얀 꽃옷을 입는다. 마치 겨울 흰눈이 소복이 쌓인 것처럼. 바로 매화(梅花)가 만발한 청매실농원이다.

위치는 전남 광양시 다압면 도사리이지만 섬진강을 사이에 두고 경남 하동과 마주하고 있다. 동쪽을 바라보고 있으니 태양 빛을 아침 일찍 맞이할 수 있고, 강물 소리가 노래가 되어 주니 매화들의 행복은 이 세상 최고다. 그래서인지 청매실농원의 매화는 그 어느 곳의 매화보다 아름답고 유쾌하다. 그러하니 이곳은 찾는 상춘객(賞春客) 역시 통쾌하지 아니할 수 없다.

하지만 지금의 청매실농원이 있게 한 홍쌍리(洪雙理) 대표의 속을 들여다보면 마냥 웃고만 있지 못한다. 홍 대표는 우리나라 최초의 매실명인(梅實名人) 칭호를 듣고 훌륭한 상도 많이 받았지만 그의 인생역정에 비하면 너무 작은 것이다.

1995년부터 시작된 청매실농원축제가 시작되면 이곳은 전국 각지에서 찾아온 100만명이 넘는 인파로 넘실거린다. 그들은 이산 저산에 흐드러지기 피어있는 매화를 바라보고 그 향기에 취해 어찌할 바를 모르며 즐거워한다. 그리고 매실로 만들어진 다양한 음식을 맛보며 행복한 웃음을 멈출 수 없게 된다.

이러한 이상향(理想鄕)에서 사람들이 행복을 만끽할 수 있는 것은 홍 대표의 노고(勞苦)와 눈물이 있었기 때문이다. 1943년 경남 밀양에서 태어난 홍 대표는 글쓰기와 노래부르기를 좋아한 어여쁜 소녀로 자랐다. 그리고 매일 노래하는 사람으로 살고 싶어 했다. 하지만 아버지의 반대가 심했고 결국 16살 때 부산 국제시장에서 장사를 하는 작은아버지 가게에서 점원을 하게 되었다.

 

세련된 부산 아가씨, 밤나무 농장 며느리 되다

 

그곳에서 홍 대표는 세련된 도시 아가씨로 변모했고 일 잘하고 마음 씀씀이 좋다는 평가를 받아 주변에서 탐내는 사람이 많았다고 한다. 그녀는 친구들과 도시생활을 즐기며 규수(閨秀)가 되어 갔다.

그러던 중 그 가게와 거래하던 한 어르신이 홍 대표에게 “내 며느리 하자”고 말하기 시작했고 귀담아 듣지 않던 그녀는 결국 몇 년 후 그 어르신의 며느리가 되었다. 그래서 홍 대표의 부산생활은 6년 만에 막을 내렸고, 시집 온 곳이 바로 전남 광양, 지금의 청매실농원이다.

홍 대표가 처음 시집에 왔을 땐 온통 밤나무 밭이었다. 시아버지가 일본에서 밤나무 묘목을 들여 와 산을 개간하며 심기 시작했고, 종자 개량을 해 다른 집보다 씨알이 굵은 밤을 생산해 인기가 최고였다고 한다.

하지만 홍 대표는 이곳의 실상을 접하고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부산에서 세련된 도시생활을 했던 그녀가 양장을 차려입고 ‘뾰족구두’를 신고 섬진강을 건너 논길을 굽이굽이 걸어 산중턱 시댁에 오니 사립문 하나 덩그러니 달려 있는 으스스한 모습의 초가집.

홍 대표는 순간 ‘탈출’을 생각했고 기회만 엿보게 되었다. 이러한 심정이었으니 무엇 하나 마음에 드는 것이 있었겠는가. 살림살이가 서툴러 시어머니의 야단이 흔했고 밤밭 일도 해야 하니 몸이 흔든 건 말로 감추기 어려웠다. 가파른 산세라서 장정도 싶게 다니기 힘든데 여자의 몸으로 이산저산 다니며 거름 주고, 수확하고, 집안일하고. 그래도 다행인 것은 착한 남편의 사랑과 며느리를 아껴주는 시아버지의 마음이 홍 대표를 그나마 견디게 해 주었단다.

홍 대표는 울기도 많이 울었다. 일이 힘들어서 눈물이 나고, 몸이 아파서 눈물이 나고, 마음이 괴로워서 눈물이 나고.

 

울다 만난 돌 틈 매화 한 송이가 그녀의 울음을 멈추게 했다

 

그런데 어느 봄날. 이날도 장맛비처럼 눈물을 흘리며 걷던 홍 대표의 눈에 들어온 것이 있으니 바로 돌 틈에 피어있는 매화 몇 송이. 그녀는 매화 앞에 앉아 꽃과 대화를 시작한다. 매화 “엄마, 울지 말고 나랑 같이 살자.” 홍 대표 “난 너무 힘들어서 견딜 수가 없다.” 매화 “엄마, 그래도 참고 살다보면 반드시 좋은 날이 올 거예요.”

홍 대표는 매화 앞에서 하염없이 울고 나니 속이 후련해졌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섬진강을 내려다보니 강 안개가 휘돌고 지리산은 뒤에 우뚝 버티고 있으니 이런 곳을 ‘꽃 천국’으로 만들면 얼마나 좋을까하는 생각이 들면서 ‘한번 해보자’는 각오가 생겼다.

그날부터 홍 대표는 시아버지의 ‘작품’인 밤나무를 베어 내고 매화나무를 심기 시작했다. 물론 시아버지의 반대가 심했지만 며느리의 ‘의지’를 알기에 말리지는 않았다. 큰 나무를 베어내고, 끌어내리고, 새나무 심는 일이 어디 말처럼 쉽게 그려질까. 홍 대표는 눈물도 많이 흘렸지만 부상으로 피도 많이 흘렸단다.

그래도 포기란 없었다. 밤나무 산은 점차 매화나무 산으로 화장을 고쳐 갔으며 매년 봄이 되면 만발하는 꽃 천지로 변했다. 홍 대표는 자신이 생각한대로 멋진 그림이 그려지고 있다는 거에 행복함에 빠져 들었다.

그러나 시아버지가 일본에서 결혼해 낳은 아들이 찾아와 광산 사업을 하자는 권유에 땅을 담보로 돈을 빌려 1970년부터 시작한 사업이 결국 4년 만에 파산이 되면서 빚더미에 올라앉게 되었고 남편은 화병이 나 병상에 눕게 되고 말았다. 그 사이 홍 대표는 2남1녀의 엄마가 됐다.

가뜩이나 농사일에 힘겨운 홍 대표는 빚쟁이의 독촉까지 견뎌야 했다. 그들의 갖은 협박과 폭력을 감수하면서 홍 대표는 더욱 일에 빠져 들었다. 아이들까지 일을 거들며 빚을 갚아 나가야만 했다.

홍 대표가 심어 놓은 매화나무는 이른 봄에 예쁜 꽃을 피어주었고 열매를 맺어 선 보였다. 온 산은 매화꽃으로 뒤덮였으며 매실(梅實) 수확도 늘기 시작했다. 수확한 매실은 장아찌를 만들어 반찬으로 먹었고 전통 항아리에 담아 숙성시켜 진액을 만들었다. 그러나 특별한 수입은 없었다.

 

대한민국 최초 ‘梅實名人’, 눈물로 ‘매화천국’을 세우다

 

그래도 홍 대표는 꾸준히 매화나무를 심었다. 왜냐하면 그녀의 꿈은 매화꽃세상을 만들어 많은 사람이 찾아와 행복을 즐길 수 있도록 한다는 꿈이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매실의 장점을 누구보다 많이 체험한 홍 대표는 매실을 이용한 좋은 식품을 만들어 ‘건강’을 선물한다는 생각도 강했다.

홍 대표의 전통 항아리는 점점 늘어 그 커다란 항아리가 현재는 3천여 개가 도열해 있다. 마치 홍 대표를 지켜주는 호위무사(護衛武士)처럼. 전통 항아리를 고집하는 이유는 숨을 잘 쉬기 때문이란다. 숨을 잘 쉰다는 것은 자연과 하나가 된다는 것이고, 그래서 가장 좋은 ‘선물’이 된다는 것이다. 항아리 속에는 최상의 매실이 가득 차 ‘아름답게’ 숙성되고 있다. 매실은 장아찌, 고추장, 된장, 한과, 사탕, 젤리, 진액 등으로 재탄생해 인간에게 기꺼이 ‘건강’이 되어 준다.

홍 대표는 1994년 매실농원 영업허가를 내고 본격적인 판매 활동을 시작했다. 그러나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했다. 하지만 홍 대표에게 ‘천사’가 찾아 왔다. 순천에서 성당건립 바자회를 준비한다는 사람이 농축액을 판매하고자 한다며 3천만원 어치를 주문해 가져갔고 순식간에 판매가 완료돼 첫 영업은 성공리에 마무리됐다. 그 후 청매실농원 매실 농축액은 소문에 소문으로 이어져 주문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이듬해인 1995년부터 청매실농원 축제를 시작했으며 매화꽃을 즐기고자 하는 사람들이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이 모습이 바로 홍 대표가 돌 틈 매화꽃과 처음 만나 대화를 나눌 때 그렸던 그림인 것이다.

홍 대표는 가공식품부문 국무총리상, 국가 지정 명인 제14호(식푼 1호), 가공식품부문 대통령상, 석탑산업훈장 수상, 농촌문화대상 수상, 일백만불 수출의 탑 수상 등 업적을 이뤘다. 그리고 친환경농산물 인증, 전통식품 품질인증, 제조법 특허, ISO 인증 등 확실한 보장을 받았다.

청매실농원은 단순한 매화나무 밭이 아니다. 관광객들이 몰려오는 관광지이기도 하고, 심신(心身)이 지쳐 있는 사람들의 ‘힐링’ 명소이기도 하다. 그리고 영화 드라마 등의 촬영지로도 많이 부름을 받는다. 우리나라 영화계의 거장 임권택 감독이 자주 와 촬영을 하는데 ‘취화선’ ‘천녀학’의 촬영지다. 이외 드라마 ‘다모’ ‘바람의 파이터’ ‘흑수선‘ ’봄의 왈츠‘ 등도 이곳에서 탄생했다.

 

100만 인파 몰리는 청매실농원축제, ‘힐링’의 대명사 되다

 

홍 대표는 청매실농원이 촬영장소로 쓰여도 대가를 받지 않는다. 오히려 지원을 더 많이 해 준다. 이러한 모습은 시아버지와도 상통한다. 홍 대표가 꼭꼭 새겨놓은 시아버지의 말씀은 “농사지어서 자기 식구 입치레하는 것이 아니고 온 동네가 다 같이 잘사는 법, 좋은 것을 만들어서 많은 사람들이 이롭게 쓰는 것이 도리다”이다.

이곳에는 대통령뿐만 아니라 유명 연예인 등이 찾는다. 특히 홍 대표가 ‘아버지’라고 부르는 법정스님은 청매실농원의 모습을 그려주었다고 한다. 매화나무를 산꼭대기까지 심어라, 건물의 높이를 낮춰 좌청룡 우백호의 기운을 흐르게 하라는 등 조언을 아까지 않았다고 한다.

지금도 꽃을 보면 마음이 설렌다는 홍 대표는 그 동안 흘린 눈물과 땀이 청매실농원의 가장 좋은 거름이 됐다고 말한다. 고희(古稀)를 넘긴 나이임에도 농사일을 멈추지 않는다. 아무나 견딜 수 없는 큰 고통이어서 이젠 질릴만도 하고 지겨울 만도 한데 자신을 보고 방끗 웃어주는 꽃을 생각하면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없단다. 그 동안 꽃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그들을 위한 시가 빼곡하게 쌓여 있다.

홍 대표는 이제 더 이상 울지 않는다. 그 동안은 고통은 그저 ‘파도’라도 생각한다. 파도는 언제든지 오지만 반드시 사라진다. 오히려 파도가 쳐야 인생이 재미있다고 말한다. 우리가 새겨들어야 할 ‘말씀’이다. 특히 청춘들이 꼭 담고 있었으면 한다.

홍 대표의 얼굴에는 ‘웃음주름’이 많다. 얼굴을 마주하고만 있으면 과거의 고생은 그려지지 않는다. 우리의 ‘어머니’다. 아무리 힘겨운 역경에 처하더라도 반드시 이겨내는 우리의 어머니. 가족을 생각하고, 특히 자식 때문이라도 주저앉을 수 없는 ‘엄마’이시다.

3월 매화가 만발한 청매실농원이 그려진다. 꽃과 함께 활짝 웃는 사람들의 얼굴도 눈에 선하다. 매화꽃 만발한 나무 아래서 푸르른 섬진강을 굽어보는 이곳이 바로 무릉매원(武陵梅源) 아니런가.

마지막으로 홍 대표에 관한 정보를 하나 폭로(?)한다. 이름인 쌍리는 원래 지어진 이름이 아니다. 원래는 상(相) 의(義)였으나 출생신고를 하러 면사무소 호적계에 갔더니 연세가 지긋한 담당 직원이 쌍(雙) 리(理)로 하자고 제안했고 아버지가 묵인(?)하면서 정해졌다고 한다. 아주 제대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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