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복 인봉봉사단 마술단장

 

“어르신 얼굴에 핀 웃음꽃이 바로 우리의 행복입니다”

 

우리 주변에는 ‘봉사’가 봉사가 아닌 경우를 간혹 본다. 남에게 행복을 준다는 미명아래 진정성없는 공연을 한다든지 무리한 대가를 요구해서 분위기를 망치는 사례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신의 마음을 다해 상대에게 기쁨을 주고, 그 기쁨을 자신의 행복으로 여기는 이들이 더 많다는 엄연한 사실이다.

특히 박영복 인봉봉사단 마술단장과 함께 공연을 펼치는 박성극·오순금 부부가 그렇다. 이들은 자신이 공연할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달려가 환한 웃음과 행복을 선물한다. 그리고 그것으로 만족한다.

박 단장은 2007년 9월 한국행복컨설턴트협회 ‘웃음치료사’ 교육과정을 이수하고 틈틈이 요양원 등 노인들을 삶을 밝게 하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는 2008년 웃음치료사 1급 자격을 취득한 이후 더욱 적극적인 봉사활동에 몰입했다. 또한 그해 3월 마술강사 자격을 얻어 다양한 공연을 펼칠 수 있게 되었다.

박 단장을 중심으로 한 작은 공연단은 마술을 비롯해 색소폰 연주, 연극, 웃음치료, 치매예방을 위한 손가락 운동 등 조화로운 공연을 보여주는 것으로 유명하다.

 

마술하는 웃음치료사…다양한 공연으로 행복마당 꾸며

 

박 단장은 인봉봉사단, 쌍무지개봉사단, 한울타리봉사단을 연계한 마술단장을 맡고 있으며 중국 연변에서 온 박성근 오금순 부부와 함께 ‘장한몽’이란 심파극을 공연한다. 이들의 주 공연무대는 주로 요양원 같은 어르신들이 있는 곳에서 이루어진다.

박 단장은 공연을 대하는 마음에 대해 “사실 처음에는 실습 겸 경험삼아 했으나 횟수가 늘어날수록 사명감이 생겨 진정 어르신을 모신다는 마음으로 매회 공연을 하고 있다”며 “더욱 많은 프로그램을 개발해 병들고 삶에 지친 모든 사람들에게 작은 즐거움이라도 안겨 주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 동안 수없이 많은 공연을 한 박 단장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공연은 `언제일까.

“2008년 봄 어느 날. 웃음치료사 선생들과 경기도 외곽 요양병원으로 봉사공연을 갔다. 그런데 마술공연 도중 파트너가 필요해 환자 둥 한 할머니를 모셔 공연을 이어가는데 갑자기 그 병원 원장과 간호사가 소리를 지르며 제지를 한다.

공연 중이라 중단할 수 없어 공연을 무사히 마치고 원장에게 공연을 중지시키려던 그 이유를 묻는다. 그 원장은 그 할머니는 치매 증상이 있기 때문에 돌발 상황이 발생할까봐 걱정이 돼서 그랬노라고 말한다.

 

“진정성없는 마음으로 하는 공연은 오히려 害惡”

 

그러나 그 할머니는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한 얼굴이었고 모처럼 느끼는 삶의 진정한 의미를 만끽하는 티없이 밝은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 할머니는 전보다 훨씬 건강한 모습으로 요양원 생활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박 단장은 앞으로 더욱 왕성한 활동을 할 준비에 만전(萬全)을 기하고 있다. 레드매직 기술고문으로서, 예술공연단(봉사단) 마술단장으로서 과학을 응용한 마술도구를 개발해 건강이 허락할 때까지 ‘자리’만 있다면 어느 곳에서건 공연을 펼칠 계획이다.

‘건강이 허락할 때까지’라고 말하는 박 단장에게는 특별한 사연이 있다.

왕성한 공연 활동을 하던 2016년 8월 어느 날 갑자기 다리가 아파 병원에 가 진찰을 받았더니 ‘악성종양’이라는 판정이 나왔다. 일종의 ‘혈액암’이었다. 서울대병원에 입원하게 된 박 단장은 수술 후 여섯 번 항암치료를 받았고, 방사선 치료를 20번 받으며 1년 가까이 병원생활을 했다.

 

박성극·오순금 부부 공연은 분위기 휘어잡는 ‘마술’

 

이러한 생활을 하면서 박 단장은 어떤 이유로 힘든 삶을 살게 된 사람들에게는 더 많은 긍정적인 웃음이 필요하다는 점을 깨달았다. 그리고 병원을 나서면 더 적극적인 봉사활동을 하겠노라고 다짐했다고 한다. 박 단장은 월남전 참전 용사이기도 하다.

박 단장과 함께 활동하고 있는 박성극·오순금 부부는 중국 연변 출신이다. 박성극 씨는 올해 76세다. 1995년 월성원자력 건설공사장에서 용접공으로 일하다 추락해 척추를 다쳐 병원치료를 받다 한국 국적이 없다는 이유로 추방됐다.

다행히 둘째 딸이 한국으로 시집을 오게 돼 딸의 초청으로 한국으로 다시 왔다. 그리고 국적을 얻게 되고 의료보험 혜택도 받고 수급자 지원을 받게 돼 건강을 회복할 수 있었으며 국가로부터 받는 혜택에 보답하고자 2010년부터 예술봉사를 시작하게 된 것이다.

부부가 함께 공연하고 있는 박 씨는 늘 공부하는 자세로 예능을 배우고 공연을 하고 있다. 인천시 부평구에 살고 있는 오순금 씨 역시 부평구노인복지회관에 다니면서 고전무용, 가요, 민요, 풍물, 심파극 등을 배우면서 요양원 등 노인들이 있는 곳에서 공연을 하고 있다.

오순금 씨는 “아직 부족한 면이 있기만 하지만 성심성의껏 어르신들에게 즐거움을 주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 하고 있다”며 “공연이 끝나고 나올 때 ‘또 언제 올꺼냐”며 내 손을 잡아 주는 어르신들을 보면 뿌듯하기도 하고, 책임감을 느끼기도 한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The PeoPle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