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필

1945 개성 출생

1968 서울대 농과대학 축산학과 졸업

1971 퓨리나코리아 입사

1990 퓨리나코리아 대표이사 사장

1990 하버드 경영대학원 국제 최고경영자과정 수료

1995 랠스턴 퓨리나 인터내셔널 북아시아 지구 사장

1998 애그리브랜드 인터내셔널 북아시아 지구 회장 겸 애그리브랜드 퓨리나코리아 대표이사 회장

2000 헬싱키 경제경영대학 Executive MBA 경영학 석사

2002 한국능률협회 최고경영자상 수상

2009 글로벌 사회공헌부문 올해의 CEO상 수상

2001- 현재 카길코리아 회장

▲ ‘섬김 리더십’과‘낙타 리더십’전도사…비전과 가치로 성공을 이끈다

요즘 서점가에 눈길을 끄는 제목의 책 한권이 사람들의 발길을 잡는다. ‘사막은 낙타처럼 건너라’. 평범한 영업사원으로 시작해 글로벌 CEO가 된 카길코리아 김기용(金基鏞) 회장의 인생철학을 담은 책이다.

1971년 퓨리나코리아 영업부 신입사원으로 입사해 40여년 간의 시간동안 김 회장이 깨달은 성공의 비결은 사람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고, 1%의 가능성도 포기하지 않고, 바위를 뚫는 물방울처럼 꾸준히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부드러운 카리스마가 다른 어떤 것보다 강하다는 것과 꿈과 미래를 생각하면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말해준다.

1990년 퓨리나코리아 최초의 한국인 CEO로 선임된 후에는 사람을 중히 여기고, 세상과 나누는 경영을 몸소 실천하고 있다. 그의 노력은 기업성과는 물론 건전하고 탄탄한 기업문화를 만들어냈고 업계 전반으로 퍼져 빛을 발하고 있다. 2001년 카길과의 합병 과정에서는 이런 경영 능력을 인정받으며 카길 한국대표로 선임되었다.

▲ 부드러운 카리스마로 미래 설계

카길애그리퓨리나는 한국축산의 태동기인 1967년 우리나라에 진출하여 한국 사료업계의 선두주자로서 우리나라 축산 발전에 큰 공헌을 해왔다.

“최고급 동물성 단백질 식품을 더 값싸게 보다 많이 생산해 농가소득 증대 및 국민식생활 개선에 기여한다”는 설립취지를 바탕으로 사업을 시작한 카길애그리퓨리나는 완전배합사료와 최신 사양기술 보급, 우수한 가축과 개량방법 소개, 농장운영 및 경영관리 개선 등을 통하여 가축의 생산성을 끊임없이 향상시켜 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1968년 국내 최초로 현대식 대규모 사료공장을 건설, 한국 사료공업의 효시를 이루고 현재 HACCP 인증을 획득한 송탄 군산 김해 천안 정읍에 최첨단 시설을 갖추고 연간 140여만 톤의 사료를 생산하여 전국 7개 거점을 통해 공급, 500여명의 임직원이 고객에게 최고의 가치를 전달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지난 2001년 5월 세계적인 농업식품기업인 카길 코퍼레이션은 카길애그리퓨리나의 모기업이며 세계 최고의 사료기업 애그리브랜드 퓨리나인터내셔날을 합병하여 명실공이 세계 최고 최대의 사료회사로 탄생했다.

이 기업이 이렇게 성장한 중심에는 김 회장이 있다. 김 회장은 항상 묵묵하고 겸손하게, 하지만 절대 지치지 않는 ‘낙타의 리더십’‘섬김의 리더십’으로 회사를 이끌어 온 것이다. 김 회장의 별명이기도 한 낙타는 그의 삶을 설명하기에 가장 적합한 동물이다. `사막의 배`로 불리는 낙타는 자기의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 가장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포기를 모르고 목적지를 향해 한발한발 내딛는다.

김 회장의 이러한 ‘뚝심’은 1988년 제대로 나타났다. 1?4대 한국 지사장이 계속 미국에서 파견되고 있어 한국인이 CEO 자리에 오를 수 없다고 판단, 당시 그의 나이 43세에 승부수를 던진다. 하버드대학 최고경영자MBA과정에 도전한 것이다. 그런데 하버드대학에서 ‘조건부 입학허가서’가 보내왔다. 본사 회장의 추천서를 받으면 가능하다는 내용이었다.

김 회장은 본사 회장에게 “학업의 기회를 주지 않으면 비전이 없는 회사로 간주해 사표를 쓰겠다”며 추천서를 써줄 것인지, 사표를 받을 것인지 선택을 요구했다. 그룹 회장은 고민 끝에 추천서를 써줬고 MBA과정이 끝나고 1990년 45세 나이에 퓨리나코리아 5대 CEO 자리에 앉게 된 것이다.

그러나 항상 탄탄대로를 걸을 수는 없었다. 1997년 12월 외환위기사태 발생으로 한국 경제가 휘청거리게 되고 퓨리나 역시 그 충격을 피해갈 수는 없었다. 그 결과 미국 거대 곡물회사인 카길이 2000년 애그리퓨리나를 인수했다.

이때 김 회장은 구조조정을 할까 동요하는 직원들에게 “회사가 팔린 것은 모기업이 바뀐 것입니다. 종업원은 아무런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됩니다. 변화는 매우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며 차분히 대응했다. 그의 예견대로 구조조정은 없었고 오히려 카길 측은 더 많은 지원을 약속했다.

김 회장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그는 중국 시장 개척을 강력하게 건의했다. 당시 김 회장은 2010년이 되면 미국 본사의 매출보다 한국과 중국을 합친 매출이 더 많아지게 된다는 점을 강조하며 그룹 회장을 설득했고 본사는 곧바로 김 회장을 북아시아 회장으로 발령했다.

김 회장은 “카길 경영의 핵심은 비전과 가치”라며 “인간의 최고 욕구는 자기실현에 있습니다. 회사의 비전과 개인의 비전을 동시에 달성할 수 있도록 해야 직원들이 몰입해서 일을 하게 됩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회사가 추구하는 가치, 즉 공통선이 직원들이 추구하는 가치와 같아야 실행능력이 생기게 됩니다. 직원들이 공통선을 향해 뛸 때 목표수익은 저절로 따라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 “비전과 가치의 경영철학은 최고의 공통선”

이 같은 경영철학에 따라 김 회장은 1990년에 2000년 회사비전을 만들었다. 비전은 김 회장 이 만드는 게 아니다. 직원들이 며칠간의 난상토론 끝에 만들어낸 것이다. 세계 최고의 종합축산회사를 만들자는 비전이 세워졌다. 꿈같던 세계 1등의 비전을 7년 만에 성취했다. 이후 난공불락의 세계 1등이 됐다.

미국 본사에서도 한국 직원을 보는 눈이 달라졌다. 다른 나라에서는 한국 경영진을 보내달라는 요청이 쇄도했다. 김 회장은 한국 경영진들을 중국을 비롯해 필리핀, 인도, 태국, 미국 등지에 20여 명이나 내보냈다. 능력을 발휘하며 전 세계로 퍼져나가는 선배들의 모습을 보고 직원들은 더 창의적으로 업무를 수행하는 기업문화를 일궈놓은 것이다.

김 회장은 늘 ‘섬김의 리더십(servant leadership)’을 강조한다. 앞에 나서서 이끌기 보다는 뒤에서 밀어주는 스타일이다. 1997년 외환위기가 발생하자 모든 기업이 연구개발비와 인건비를 줄였다. 그러나 김 회장은 이럴 때일수록 인재에 투자해야 한다며 사내 MBA프로그램을 기획했다.

김 회장은 “어떻게 하면 직원들이 성공할 수 있도록 할 것인가를 고민한 끝에 사내 MBA프로그램을 기획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 결단은 직원과 직원의 가족들에게 ‘내치기보다는 사람을 키우는 회사’라는 확신을 심어 줬다. 사내 인재 양성과 사기진작에 큰 도움을 줬다. 이 같은 투자는 1997년 불황 속에서도 최고 실적을 안겨줬다.

▲ 문화재단 설립해 한국 축산업 발전에 기여

이 같은 김 회장의 직원 사랑은 직원들의 업무 몰입도에서 드러난다. 전문 컨설팅 회사가 측정한 카길애그리퓨리나 직원들의 업무 몰입도는 91%로 카길 전 직원의 몰입도 81%를 크게 웃돈다. 한국 내 기업 평균의 41%와 비교되는 수치다.

이는 이 회사의 노사관계에서도 잘 나타난다. 노측과 사측은 1년에 두 번 만남을 갖는데 봄에는 임금협상을, 가을에는 회사 생산성 향상을 위한 토론을 하기 위해서다. 노측과 사측의 이해관계를 두고 싸우기보다는 회사와 직원이 윈-윈할 수 있는 상생모델을 만들자는 것이었다. 그 대표적인 성과가 사내 새마을금고를 조성한 것이다.

2001년 카길과 퓨리나가 합병하자 김 회장은 두 회사의 화학적 결합을 중시했다. 당시 필리핀 법인이 본사 발표 즉시 두 법인을 합쳐 호평을 얻었다. 하지만 이 회사는 곧 경영실패로 이어졌다. 이에 비해 김 회장은 두 회사의 결합을 서두르지 않았다. 무려 7년에 걸쳐 문화를 결합시킨 뒤 화학적 결합을 이끌어냈다.

문화가 다른 두 회사를 통합하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의 캠페인과 융합과정이 필요하다는 게 그의 지론이었기 때문이다. 여러 해에 걸친 꾸준한 문화캠페인으로 두 회사의 분위기가 비슷해졌다는 판단이 서고 나서야 그는 합병을 선언했다. 법인 중 가장 늦은 합병이었지만, 가장 성공적이었다.

김 회장은 또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해 강조한다. 김 회장은 카길이 무엇보다도 산업 발전에 기여하는 기업이라고 강조한다. 또한 시장에서 얻은 수혜는 반드시 사회에 되돌려 주어야 한다는 확실한 철학을 갖고 있다. 따라서 1997년 8월 재단법인 카길애그리퓨리나 문화재단을 설립했다. 한국 축산업 발전에 기여하겠다는 한국법인만의 재단이다.

이 재단에서는 축산ㆍ사료분야 학술연구활동과 기술개발을 지원하고 매년 축산 및 사료분야 기술 및 연구 분야에 지대한 공헌을 한 축산, 수의, 사료업계 인사 및 관련 단체를 선정하여 `카길 애그리퓨리나 축산사료 연구기술대상`을 시상한다.

국내외 축산 관련 분야에 재학하고 있는 고등학생 및 대학생 중 학업성적이 우수하고 장래 축산관련 분야에 종사할 인재를 선발해 장학금을 지급하고 있다. 김 회장은 또 현재 카길그룹 차원에서 진행하는 중국 내 인재 양성 프로그램인 `골든 키 플랜`의 책임자도 맡고 있다.

김 회장은 27세에 퓨리나 코리아에 입사해 IMF사태, 사료파동, 오일쇼크 등의 시대적 질곡, 회사가 합병되는 험난한 과정을 겪으면서도 항상 자기가 해야 할 일에만 집중하며 포기하지 않고 한길을 걸어 세계가 주목하는 CEO가 되었다. 그는 사람을 등에 태우고 한 발 한 발 발걸음을 옮기는 낙타처럼 끊임없이 앞으로 나아간다고 해서 별명도 낙타다.

김 회장은 “우리는 ‘인류를 풍요롭게 하는 세계적 리더가 된다’라는 비전과 ‘차별화된 가치를 창조한다’는 사명으로 고객 여러분과 함께 했다”며 “성실과 신뢰라는 오랜 유산을 바탕으로 가치중심의 경영 혁신과 차별화된 가치창조로 고객과 함께 더욱 발전해 나갈 것”이라며 말을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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