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근 드림텍솔루션 대표
이대근 드림텍솔루션 대표
  • 곽성열 기자
  • 승인 2019.07.19 10: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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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금형직종에서 대한민국명장으로 선정된 이대근 명장. 그는 “그 동안 배우고 익힌 최고의 기술을 확대 보급하는 일에 솔선수범해 우리나라 산업발전에 주축이 되도록 꾸준히 행동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대근 대한민국명장

“흥미로운 교육프로그램․교보재 개발로 금형산업발전에 최선”

2012년 금형직종에서 대한민국명장으로 선정된 이대근 명장. 그는 “그 동안 배우고 익힌 최고의 기술을 확대 보급하는 일에 솔선수범해 우리나라 산업발전에 주축이 되도록 꾸준히 행동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음은 이 명장과의 일문일답.

▲ 대한민국명장이 되기까지의 경력이 궁금하다.

- 1982년 군산기계공고 정밀기계과를 졸업하고 전공을 심화하기 위해 인천폴리텍대학에 입학해 1984년 금형공학과 직업훈련교사 전문과정을 졸업했다. 그리고 직업전선에 뛰어들어 한성공업(주) 프레스금형제작, 한국단자공업(주) 금형설계실, 충남인력개발원 전산응용기계과, 한국단자공업(주) 금형기술연구소 등을 거치며 숙련기술을 익혔으며 2013년 12월 드림텍솔루션을 창업해 경영하고 있다.

‘금형’은 1979년 기계공고에 입학하면서부터 현재까지 약 40여년간 내 인생과 함께하고 있으며 금형업계에 입문하게된 것을 단 한 번도 후회하지 않고 있다. 물론 그간 여러 가지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인내와 끈기로 ‘최고의 기술자’가 되겠다는 목표를 단 한순간도 저버리지 않고 한 우물을 파고 있는 진정한 금형 기술자라고 자부한다.

▲ 대한민국명장으로 선정된 당시 소감은.

- 2012년 8월 27일에 선정결과를 알았을 때 그 동안 한 번도 느끼지 못했던 마치 하늘을 나는 것 같은 가슴 벅찬 기쁨이 몰려왔다. 내 인생 최고의 기쁨을 느낀 것은 물론이고 스스로 자랑스러웠다. 이러한 경사는 나 혼자만의 기쁨보다는 그동안 함께 해준 사내·외 금형관계자들의 기쁨이고 자랑이라는 생각했다.

금형과 함께 한 긴 세월 동안 힘들고 어렵게 참아야 했던 것들과 참으로 말할 수 없이 기뻤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고 이제는 무거운 책임감으로 또 다른 도전을 준비해야 한다는 각오도 했다.

▲ 가장 먼저 감사했던 인물은 누구였나.

- 대한민국명장으로 선정되었다는 사실을 안 순간 부모님이 뇌리를 스쳤다. 아버지는 가족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은 희생하면서 열사의 나라 중동지역에서 건축 일을 하면서 여러 해 동안 학비를 충당해 주셨고 어머니는 극한 어려움 속에서도 지극정성으로 4남매를 무난하게 길러주셨다. 부모님을 생각하면서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를 여러 번 되뇌었다.

그리고 결혼 후 금형 일에 푹 빠져 몰두하며 가정에는 소홀 할 수밖에 없었던 남편을 묵묵히 기다리며 세 아이들 양육에 힘써오면서 아빠의 빈자리까지 대신 채워주며 남편이 최고의 자리까지 오를 수 있도록 응원해 준 저의 한쪽 갈비뼈 아내가 진하게 떠올랐다.

또한 대한민국에서 최고의 금형기술을 자랑하는 회사에 근무할 수 있도록 해주신 한국단자공업(주) 이창원 회장과 나의 금형기술 ‘사수’였던 송유선 팀장 등이 생각나면서 이루 말할 수 없는 많은 지인들과 그동안 있었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갔죠.

▲ 현재에 이르기까지 가장 중요했던 시기는 언제이고 그 이후는 어떠했나.

- 실력을 인정받으며 잘 다니던 한국단자공업을 퇴직하고 1993년 4월에 충남인력개발원 교수로 자리를 옮겼다가 약 3년 후인 1996년 3월 한국단자공업에 재입사 한 것이 내 인생에서 매우 중요한 전환점이 됐다.

금형분야에서 최고기술자가 되겠다고 다짐하고 시작한 기술인의 정도(正道)를 걷기 위하여 이론과 실무를 겸비한 진정한 기술인이 되고자 회사업무에 매진하면서 학문적 욕구를 채우기 위해 학사과정과 석사과정을 마쳤다.

또한 업무의 ‘가성비’를 높이려면 실무경험을 토대로 이론적 학습을 중시하고 실력을 갖추어야 살아남는다는 각오로 현존하는 금형분야의 모든 국가기술자격 취득을 목표 삼아 고교 때 취득했던 정밀가공기능사를 필두로 프레스금형산업기사, 전산응용설계산업기사, 프레스금형설계기사, 사출금형설계기사, 금형제작기능장, 금형기술사 등을 순차적으로 취득하는 쾌거를 이룰 수가 있었다.

보유하고 있는 금형기술에 대한 지적재산권을 확보하기 위하여 금형기술특허에도 도전하여 8건의 특허와 3건의 실용신안을 등록하는 등의 일에도 게을리 하지 않았고 사내 제안제도를 통하여도 수많은 아이디어를 제공했다.

특히 금형설계표준화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여 금형설계시간의 단축과 설계오류의 감소 등을 토대로 금형제작기간을 획기적으로 단축하여 금형제작비용절감에도 기여해 왔다.

또한 2007년부터는 금형현장전문가로 한국산업인력공단에서 주관했던 국가직무능력표준인(NCS) 금형분야 시범 개발을 시작으로 현재까지 NCS의 개정, 신규개발 등과 학습모듈개발에 참여하고 있고 특성화고의 도제프로그램, 일학습프로그램 등의 개발에도 꾸준히 참여하고 있어 금형분야의 전문가로서 지속적인 기여를 하고 있다.

▲ 대한민국명장으로 선정된 후에 어떤 변화가 있었나.

- 주변에서 나를 대해주는 위상이 달라졌음을 실감했다. 금형분야 최고기술자, 최고의 전문가 위상이라 할까. 명장에 선정되기 전부터 회사 소재 구청에서 진행하는 가족봉사활동 등에 참여하기도 하고, 회사에서 후배들의 기술지도에도 힘을 써 왔기에 나를 롤 모델로 삼게 된 다수의 금형분야 후배들이 생겼다. 일종의 ‘팬클럽’이랄까.

대한민국명장이라는 높아진 위상만큼이나 당연히 좋은 특급대우를 받으면서 교육부에서 주관하는 명장공방사업, 중소벤처기업부에서 주관하는 뿌리기술코칭사업, 고용노동부와 한국산업인력공단에서 주관하는 대한민국산업현장교수 활동, 멘토링 사업, 대한상공회의소 인력개발원에서 진행했던 ‘이대근명장아카데미’ 등을 통하여 교육기관에서의 기술전수와 중소기업애로기술지도 등과 금형직종 전국기능경기대회와 세계기능올림픽 출전을 위한 기술지도 등에 충실히 임하면서 각종 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두는데도 일조를 하고 있다.

▲ 대한민국명장으로서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견해는.

- 본인이 직무를 수행해 온 현장에서 최고 수준의 숙련기술을 보유하고 대한민국명장의 사회적 책임은 그 무엇보다 무겁다고 생각한다. 대한민국명장으로 선정되기까지 걸어온 인내와 배려를 모토로 역동적이고 열정적인 모습의 초심을 유지하면서 많은 배려와 희생이 우선되어야 하고 그 동안 쌓아 온 최고의 기술을 확대 보급하는 일에 솔선수범하면서 최선을 다해야 우리나라 산업발전에 주축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 후진들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은.

- 금형직종 대한민국명장으로서 안타까운 것은 금형분야가 3D 직무로 구분되면서 금형을 배우려 학생들이 줄어들고 있어 교육기관에서도 금형분야에 대한 매력을 점점 상실해 가고 있는 현실이 매우 안타깝다.

그러나 여러 가지 어려움 속에서도 금형을 배우고자 하는 학생들이 즐기면서 배울 수 있는 여건과 기회를 만들어주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금형을 즐기면서 체계적으로 배울 수 있도록 금형 종류별 교보재를 설계 제작하여 금형설계에서 제작을 거쳐 제품생산까지를 일괄적 통합학습으로 구현하여 ‘따라하기식’ 학습을 통한 체득을 유도할 수 있고 쉽게 금형분야에 입문하고 산업현장적응에 전혀 무리가 없도록 교육하고 있다.

▲ 향후 계획은.

- 특성화고와 대학교 등에서 학생들을 지속적으로 지도해 금형분야에 유입인구가 증가할 수 있도록 흥미로운 교육프로그램과 교보재 개발 및 보급을 통하여 금형기초교육의 혁신을 통한 금형산업발전에 일조하고 싶다.

▲ 대한민국명장회와 회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 국가로부터 최고의 숙련기술인으로 인정받은 분들이 때로는 자기중심적 사고 때문에 사소한 일로 갑론을박하면서 양보와 배려는 뒷전으로 하고 ‘우리’라는 대한민국명장회의 목표와 위상을 뒤로 할 때가 종종 있는 것 같아 아쉽다.

양보와 배려 그리고 희생을 우선으로 하면서 발전하는 대한민국명장회가 진취적으로 나아갔으면 한다. 물론 나 역시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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