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적 신화·설화·민화를 깊은 의식의 풍경으로 언어화

 

이희중 작가는 고전의 관념적 풍경인 것 같으면서도 유현미와 심상의 미를 현대적 문체로 해석해냄으로써 그의 조형은 한국미술이 찾아내고 지향해야 할 숨은 보석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 작가는 홍익대 미대와 독일 뒤셀도르프 쿤스크 아카데미에서 회화를 전공했으며 독일 서울 부산 대구 등에서 36회 개인전을 가졌다. 마이애미, NICAF, 칼스루에, 북경, 홍콩, KIAF 등의 아트페어에 참가한 바 있는 그는 광주비엔날레, 국립현대미술관, 뒤셀도르프 시립도서관, 쾰른, 오버우어젤, 서울시립미술관, 공평아트센터, 동산방화랑 등에서 수 백회의 전시에 초대되었다.

다음은 ‘심상풍경과 원형적 우주’라는 제목으로 이 작가를 평가한 함선미 미술평론가의 말이다.

‘마음’의 심연을 떠도는 무의식, 그 원천을 파고드는 사유가 일관된 논리로 이희중의 작품을 구현한다. 지워진 기억, 그러나 원형으로 남아 때때로 마음을 뒤흔드는 과거의 흔적들이 작품 속에 뒤섞이는 것이다. 그는 유화작업들을 통해 시공간을 초월한 화면 속에서 부유하는 도상들을 가지고 하나의 풍경을 담아내는 익숙함과 생소함을 동시에 선사한다.

작품은 크게 전통적 소재, 민화적 형식을 재구성한 구상회화의 작품들과 전통적 소재와 다양한 기호들을 추상적으로 변환하여 유기적인 화면을 구성하는 작품들로 나뉘게 된다. 전자는 1980년대 이후부터 등장한 민화적 특성이 돋보이는 ‘심상 풍경’ 연작들이며 후자는 그의 작업적 사유가 극대화된 ‘우주’ 연작으로 소개되었다.

 

진한 푸른빛의 배경 속에 나비들이 떠다니는 풍경

 

먼저 ‘심상 풍경’의 연작은 말 그대로 마음속을 흐르는 풍경을 담아낸 작품들이다. 그 가운데 산수와 자연적 풍광 속에서 작가는 산, 논과 밭 혹은 땅 속의 공간처럼 보이는 장면들을 파편적으로 엮어간다. 논밭의 구획이 나뉜 것처럼 구분된 틀 속에서 갖가지 다른 기억과 이야기가 단절된 공간들을 만들게 되는 것이다. 일종의 ‘브리콜라주(bricolage)'fh 구성된 이러한 화면 속에는 한국적 정서가 정제된 민화적 소재들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우리에게 익숙하기도 한 이 도상들은 이미 과거 속에 묻혔다가 새로운 의미로 탄생한 일종의 ’윤회(輪廻)‘적 도상들로 볼 수 있다. 이러한 장치들은 우리의 의식 속에서 애잔한 익숙함을 주면서도 비현실적 공간으로 이행하도록 만들며 과거의 의미와는 차별화 된다.

마찬가지로 진한 푸른빛의 배경 속에 나비들이 떠다니는 풍경의 연작들 역시 익숙한 소재들을 사용함과 동시에 비현실적인 공간으로 탈바꿈하는 장치들을 마련해 두었다. 작품 배경의 전면을 에워싼 푸른 색채가 그것이다. 이 특징적인 색채는 민화적 색채의 강렬함과 초현실주의 작가들이 꿈과 무의식의 세계를 체감하도록 사용한 푸른빛의 느낌과도 맞닿아있어, 비현실적인 공간, 꿈의 세계와 같은 몽환적인 공간성을 돋보이게 한다. 더욱이 떠도는 나비들은 다른 도상들에 비해 큼직한 비율로 강조되어 장자(莊子)의 호접지몽(胡蝶之夢)을 자연스레 떠올리도록 만들고 있다.

한 개인의 마음을 흐르는 집단적 무의식은 낯설지만 언제나 근간에 자리하고 있는 정서이다. 이것이 이희중의 작품에서는 원초적인 신화나 설화, 민화적 이야기로 구체화되어 등장하는 것이다. 결국 그의 작품에서 나타난 전통의 파편들은 과거에 대한 기록이 아닌, 현대 속에 실존하는 무의식적 원천을 이해하는 과정이다. 나아가 ‘우주’ 연작의 작품들에서는 이러한 논의가 보다 포괄적으로 발현되는 단계에 이르게 된다.

 

‘우주’ 연작은 추상화된 기호들이 공간을 유영

 

‘우주’ 연작은 추상화된 기호들이 공간을 유영하고 있다. 침착하면서도 생생한 색채와 율동감 있는 표현들은 현대에 친숙함을 유발하기도 한다. ‘우주’ 연작의 작품들은 사실적 묘사로 이루어진 여타 연작들과 표현방식에 있어서는 극단적으로 차이가 있겠지만 마찬가지로 신화 설화 토템 등의 전통적 소재들을 단순화한 것이 바탕이 된다. 거기에 우주적 도상들, 가령 별자리나 뇌우와 같은 이미지 나아가 작가를 둘러 싼 일상의 소재들까지 화면 속에서 추상적으로 어우러졌다.

이러한 연작들은 유독 원판(圓板)의 형태 속에 구획을 나누며 표현된 작품들이 자주 등장하여 만다라(曼茶羅)의 작품을 떠올리게 한다. 정신분석학자 융의 경우에는 만다라 작품들을 개인의 내면과 원형의 표현으로 바라보기도 했는데 그의 우주적 표상들도 주체의 ‘마음’속에 존재하는 원형의 단편들로 짐작이 가능하다.

이희중의 ‘우주’ 연작에서는 이전 연작에서 표현한 전통적 설화나 민화의 형태들이 다른 문화권에서도 보편적으로 찾을 수 있는 특성임에 주목한다. 이는 말 그대로 원초적인 원형, 인류의 집단적 무의식을 근간에 두고 행해지는 요소들이다. 실제로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우주적 도상들이나 뇌우와 같은 형상들은 북아메리카의 푸에블로 인디언들을 비롯해 과거 여러 민족에서 토템신앙과 관련한 주술적 도상으로 사용되어 온 것이 한 예이다.

이렇게 끝없이 흐르는 무의식적 원형, 원초적 지성들, 신화, 민화적 사유의 체계는 막힘없이 증식하는 특성을 지닌다. ‘우주’ 연작의 작품들 또한 무한으로 증식되거나 파생되는 형상들이 빈번히 등장하는데 이는 무의식이 무한한 확대를 이루어가는 표현으로 여겨진다. 작품에서 각각의 도상들이 화면을 가득 메우고 더욱이 화면 너머에서도 연속될 것 같은 유기성은 이러한 ‘야생의 사고’를 불교적 사례로 구체화하여 설명한 인류학자 나카자와 신이치의 논의에서 보다 극명하게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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