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led smile’…다채롭게 장식된 선글라스로 닫친 ‘눈’, 살짝 열린 ‘입’

 

 

화면 속 선글라스를 낀 여인은 의중을 알 수 없는 오묘한 표정을 짓고 있다. 눈을 가린 경직된 웃음으로 그녀의 감정을 짐작하기란 쉽지 않다. 입 꼬리가 올라가있는 미소 띤 표정에 경계를 풀어보지만 치아의 교정기는 어떠한 메시지를 전하는 것처럼 보는 이를 긴장하게 한다. 몸체가 없어, 윤두서의 ‘자화상’이 떠오르는 강렬한 화면에 현대생활의 소비재나 보석 같은 소비재로 치장된 여성의 모습. 이제 우리에게 익숙해진 ‘Sealed smile’ 시리즈는 화가 김지희를 대표하는 작품으로 국제적으로 꾸준히 작품성을 인정받으며 사랑받고 있다.

 

이화여대 동양화 전공 및 동대학원에서 동양화를 전공한 김지희 작가는 전통 재료를 사용한 팝아트풍의 강렬한 작품으로 유명하다. 교정기, 오드아이 등 파격적인 소재를 화면으로 끌어들이며 미술계의 주목을 받아왔다. 2007년 일본 전일전 예술상, 2011년에는 열한번째 청작미술상을 최연소로 수상하며 이름을 알렸다.

또한 서울, 뉴욕, 홍콩, 워싱턴, 쾰른, 마이애미, 런던, 도쿄, 베이징, 싱가포르, 타이완 등 국내와 해외를 무대로 150여회의 전시를 가졌다. 해마다 홍콩에서 개최되는 유수의 아트페어 ‘Asia Contemporary Art Show'에서는 아트 페어 대표작품으로 해외 유력 매체 등에 광고되며 해외 컬렉터들의 좋은 반응을 얻기도 했다.

매해 홍콩에서 전시를 이어가는 김 작가에게는 작품을 사랑하고 꾸준히 소장하는 홍콩 컬렉터 층이 해마다 두터워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일부러 한국까지 와서 작품을 매입해 가는 홍콩 컬렉터들을 비롯해 전시와 행사 등 홍콩 러브콜이 이어지는 것은 홍콩에서의 인지도가 점차 높아지는 것을 증명한다.

주요 기업 컬렉션을 비롯하여 국제적으로 컬렉터 층을 확보해 나가는 김지희 작가는 다양한 콜라보레이션 프로젝트로도 세상과 소통해 왔다. 대표적인 콜라보레이션은 2012년 화장품 브랜드 미샤와 손을 잡은 ‘Missha with Kim Jihee’ 한정판 라인이다. 작품의 이미지가 소비되는 차원을 넘어 시즌 전체를 김지희 작가 이름을 딴 제품과 광고들로 채우며 희소성 있는 한정판의 특별함을 강조하였다. 매장에서는 김지희 작가를 작품을 이해할 수 있는 브로슈어를 배포하였고, 모든 제품에 작가의 이름을 새겨 넣었다. 제품이 탁월하게 손을 잡은 콜라보레이션의 진화적 사례로 주목받은 이유다.

소녀시대 I got a boy 의상 콜라보레이션 ‘GG X Kim Jihee’ 역시 대중문화와 미술의 만남으로 주목받으며 SBS 8시 뉴스를 장식하기도 했다. 그 외에 스타 디자이너 최범석의 패션브랜드 ’제너럴 아이디어‘, 패션 브랜드 ’한섬‘, 대한적십자 헌혈의 날 콜라보레이션 등 문화 전반에서 크리에이티브한 활동을 이어왔다. 올해는 중국 알리바바TV, 유쿠 등의 대형 플랫폼을 통해서도 작품이 소개 될 예정이다.

그림을 그리고 나서 습관적으로 글을 써왔다는 김지희 작가는 몇 권의 책을 통해서 독자를 만나오기도 했다. 2012년 출간된 에세이집 ‘스물아홉 김지희, 그림처럼 사는’ ‘스물아홉 김지희, 삶처럼 그린’, 2015년 출간된 ‘하얀 자취’는 작업하는 과정에서의 그녀의 생각을 담아내며 작품에 관한 이해를 돕는다. 글과 그림을 떼어놓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김지희 작가에게는 책을 쓰는 일 역시 익숙한 작업의 일부이다.

최근에는 Invaluable moment 조각 작품이나, Virgin heart와 같이 다소 추상적인 느낌의 신작 시리즈를 연이어 발표하며 인기 있는 기존 작품에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도전을 이어가고 있다.

 

작가로서 쌓아온 탄탄한 경력에도 불구하고 84년생의 김지희 작가는 이제 서른 한 살이다. 2012년에는 스위스 세계경제포럼 산하 20대 리더 커뮤니티 글로벌 쉐이퍼(Global Shapers Community)에 뽑혀 활동을 이어오고 있는 만큼 문화 예술 분야의 젊은 리더로 꼽힌다.

중진-원로작가로 이어지며 한국을 대표하는 여류작가가 되길 바라는 주변의 기대가 크지만, 작가 본인은 긴 호흡으로 작업을 이어나가며 좋은 작가가 되는 것이 목표라고 말한다. “20대에는 수면시간이 부족할 만큼 작업에 매진했어요. 전시를 앞두고는 하루에 서너 시간 씩 자며 작업량을 소화했고, 휴일도 없이 달렸죠. 보이지 않는 가치를 찾아 제가 선망했던 역사 속 대가들처럼 작품으로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 돌진했던 것 같아요.

지금은 그때와는 또 달라요. 아무래도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으며 심리적으로 여유가 생긴 것 같아요. 나태해지는 것과는 다른 여유에요. 여전히 육아를 하며 새벽부터 자정까지 그림을 그리는 생활이지만, 무언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보다는 정말 좋은 작품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먼저 들어요. 그리고 어느 날 갑자기 작품을 못하게 되는 일 없이 한결같은 호흡으로 롱런하고 싶고요.”

결혼과 출산으로 삶에 큰 변화를 맞은 이후에도 변함없는 작업량을 유지하는 작가는 내년까지 국내외 굴지의 아트 페어 등의 전시 일정이 차있다. 작가로서 압축된 시간을 어떻게 살아왔을지 짐작이 되지 않지만, 변함없는 속도로 나아간다.

“결혼과 육아는 삶의 큰 변화이지요, 그림 그리는 제 모습을 좋아해주는 남편을 만나 것은 큰 행운이라고 생각해요. 출산을 하고 나서도 붓이 손에서 멀어질까봐 출산 3주 만에 작업을 시작했어요. 산후조리 할 때 무리하면 안 된다고 주변에서 말릴 정도였지만 그래도 작업이 너무 하고 싶더라고요. 두 세 시간 마다 수유를 하는 틈틈이 작업을 했고, 아이가 8개월에 접어든 요즘도 아이를 안고 작업을 하곤 해요. 육아와 작업을 병행하는 것이 힘들기는 하지만 웃는 아기 미소에 피로가 다 씻기 걸 보니 아기가 큰 에너지와 영감이 되어 주는 것 같아요.”

삶의 큰 변화 때문인지, 섬뜩하리만큼 문제의식을 담아내고 있던 작가의 언어는 어느덧 더욱 따뜻해지고 원숙해진 느낌이다.

 

 

화려함 속의 고독, 군중속의 외로움, 더 나은 삶을 향한 욕망, Sealed smile 시리즈 작품들이 담고 있는 주된 코드이다. 미술 평론가 고충환은 “모나리자의 알쏭달쏭한 미소는 시공간의 차이를 훌쩍 뛰어넘어 김지희의 그림과 만나진다고 생각한다. 웃음에 인색한 시대에 웃음을 선사하는 그림은 보는 이를 행복하게 한다. 모르긴 해도 사람들이 작가의 그림을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작가가 우리에게 보여주는 소녀의 해맑은 웃음은 그렇게 서먹한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해소해줄 수가 있을 것인가. 웃음 뒤에 숨은 어둠을 헤아릴 일이다. 어둠을 애써 외면하는 웃음은 웃음이 아니다. 어둠을 껴안을 때에야 비로소 웃음은 서먹한 사람들 사이로 번져 나갈 수가 있다.”고 작품을 평하였다.

또한 프랑스 미술평론가 장 루이 프아트뱅은 "전통적인 주제를 습득하면서 현대사회의 표현의 한계에 직면한 그녀는 대학시절 자신의 문제제기에 변화를 시도해야한다고 깨닫게 된다. 전통과의 끈은 놓지 않으면서 현대적인 주제에 집중하기로 결심한다. 그녀는 한국의 전통 종이인 장지위에 색을 입힌다. 현대 사회 뿐만 아니라, 자연과 예술의 재현에 대한 깊이 있는 문제제기가 김지희의 작품세계에 나타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김지희가 중요한 아티스트인 이유는 우리 자신의 존재, 그 있는 그대로를 바라보게 하기 때문이다. 이상적인 모델에 맹목적으로 순응하는데 급급해 감정적인 뿌리를 외면하는 존재들 말이다 "라고 호평한 바 있다.

 

 

한편 김지희 작가는 내년 1월 메이저 갤러리와 손을 잡고 중국에서 개인전을 개최할 예정이다. 개인전 준비로 바쁜 나날을 보내면서 곧 있을 대구아트페어, 아트에디션 아트페어, 스푼 아트페어, 부산 국제 아트페어, 홍콩 아시아 컨템포러리 아트 쇼 등을 함께 준비하고 있다.

긴 호흡을 바라보는 문턱에 선 작가의 작품과 활동은 늘 세간의 관심과 기대를 모으곤 한다. 한결같은 성실함으로, 작가가 한국을 대표하는 여류작가로 성장해 나갈 수 있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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