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인희의 역사이야기

경복궁 중심에 자리 잡은 醬庫…간장류, 김치, 젓갈류 담아 지역·용도별 전시

王家 먹을 기초 부식 보관하는 곳, 정갈한 앞치마 두른 ‘대장금’ 만날 듯

글 황인희(역사칼럼니스트, 역사여행가) / 사진 윤상구(사진작가)

서울 한복판에는 조선의 5대 궁궐인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덕수궁, 경희궁이 있습니다. 또 수도권에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조선 왕릉 40기가 있습니다. 조선 시대 왕실 문화의 흔적을 둘러보기 가장 좋은 유적들이지요. 아마도 우리나라 사람치고 경복궁이나 창덕궁에 안 가본 사람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어른들에게 궁궐은 학교에서 소풍갔던 추억의 장소로 기억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요. 동구릉이나 서오릉, 서삼릉, 금곡릉 같은 조선 왕릉들도 단골 소풍 장소였습니다. 그래서 왕릉의 석마에 올라타 손가락으로 V자를 그리며 찍은 사진을 앨범에 간직한 분도 많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의 궁궐이나 왕릉은 20년 전, 30년 전의 모습이 아닙니다. 그동안 많은 부분이 발굴 ‧ 복원되었고 세계문화유산으로서 그 가치를 간직하기 위해 보다 소중하게 관리되고 있으니까요. 이제 다시 궁궐이나 왕릉을 찾아가면 학창 시절 기억과는 전혀 다른 유적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하지요. 궁궐이나 왕릉에 대해서도 유래나 사연을 알고 가면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글에서는 궁궐이나 왕릉에서 그냥 지나치기 쉬운, 그러나 눈여겨보면 더 재미있는 부분만 추려서 여러분께 알려드리고자 합니다.

우선 조선의 정궁이었던 경복궁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부분은 어떤 곳일까요? 경복궁의 정전인 근정전에 가면 다른 궁궐 정전 월대에는 없는 난간을 볼 수 있습니다. 그 난간 위에 서 있는 돌짐승들의 정체를 알아보는 것도 재미있겠지요? 이들 돌짐승들은 세 가지 부류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째는 사신(四神) 상입니다. 이들은 상월대 난간에 동서남북으로 위치하고 있습니다. 남쪽의 주작(朱雀 : 붉은 봉황), 동쪽의 청룡(靑龍), 서쪽의 백호(白虎), 북쪽의 현무(玄武 : 검은 거북과 뱀, 근정전 현무는 거북만 형상화했음)가 그것입니다.

돌짐승의 둘째 부류는 십이지신상입니다. 쥐, 소, 호랑이, 토끼, 뱀, 말, 양, 원숭이, 닭의 상이 있지만 개, 돼지 상은 세우지 않았습니다. 예로부터 개, 돼지를 깨끗지 못한 동물로 본 이유에서인 것 같습니다. 용은 청룡과 겹친다 하여 만들지 않았다지만 백호와 겹치는 호랑이상은 만들어놓았습니다.

세 번째 부류는 서수(瑞獸 : 상서로운 동물)입니다. 서수들은 난간의 모서리에 서 있는데 새끼까지 동반한 가족 서수도 있습니다. 이 서수들은 각기 다른 곳을 보고 있습니다. 사방에서 나타날 수 있는 나쁜 기운을 빠짐없이 막아보려는 의도에서 그렇게 만든 것이지요. 십이지신과 서수들은 임금의 주변에 사악한 기운이 침범하지 못하도록 막아주는 상징물입니다.

경복궁 중심부에는 장고(醬庫)가 있습니다. 민가의 장독대에 해당하는 곳이지요. 경사지에 계단을 마련하고 장독을 배열하였습니다. 큰 독에는 간장류와 김치를 담았고 중간 크기의 항아리에는 젓갈류를, 작은 단지에는 된장류를 담았습니다. 장고는 세 부분으로 분리되어 있는데 중앙에는 아름다운 전통 독들이 있고, 오른쪽에는 지역별로, 왼쪽에는 용도별로 나누어 독들을 전시하였습니다. 임금과 그 가족이 먹을 기초 부식을 보관하는 곳으로, 정갈하고 깔끔한 앞치마를 두른 대장금을 만날 것만 같은 장소입니다.

경복궁 향원지의 모퉁이에는 덮개를 덮은 샘물이 있습니다. 이곳은 열상진원(列上眞源)으로, 이는 차고 맑은 물의 근원이라는 뜻입니다. 샘물은 홈통을 따라 내려와 표주박 같은 돌확(지름 41센티, 깊이 15센티)에 잠깐 머물게 됩니다. 돌확에서 돌면서 속도가 늦춰진 물은 동쪽으로 방향을 바꿔 판석 밑으로 들어가 기역자로 꺾인 후 수면 아래서 연못물과 섞이지요. 이렇게 복잡한 구조로 만든 이유는 서쪽에서 들어와 동쪽으로 나가야 명당수라는 개념에 맞추기 위해서입니다. 또 수면 아래서 향원지 물과 섞이게 한 것은 연못의 파문을 막기 위한 것입니다. 이 물이 수면 위로 직접 떨어지면 연못에 사는 물고기들이 찬물과 파문에 놀랄 수 있으니 말입니다. 물고기까지 배려하는 선조들의 미덕을 배울 수 있는 유적입니다.

열상진원 근처에 전기 발상지 비석이 있습니다. 고종 때 궁궐에 전기를 켜기 위한 모든 시설을 미국 공사에게 부탁하여 에디슨 전기회사에 발주하였습니다. 에디슨 전기회사에서는 장비와 함께 멕케이라는 기사를 파견했고 향원정 연못물을 끌어들여 석탄으로 발전기를 돌릴 수 있게 하였습니다. 고종 24년인 1887년 3월 6일 저녁, 드디어 경복궁에서 점등식을 가졌습니다. 물을 끌어들여 발전을 했다하여 전깃불을 ‘물불’이라 부르기도 했지요. 또 잦은 고장으로 깜빡거리는 일이 많아 ‘건달불’이라고도 불렸답니다. 그런데 전깃불의 부작용도 있었습니다. 밤에도 불이 훤하니 궁녀들은 불면증을 호소하고 냉각수가 향원지에 흘러들어 물고기가 떼죽음을 한 것입니다. 애초 시설도 에디슨 회사에서 직접 보내온 최고급인데다 발전기를 돌리는 운영비도 많이 들어 ‘증어망국(蒸魚亡國 : 물고기가 삶아지고 나라가 망한다)이라는 말이 돌기도 했습니다.

향원지 뒤편에 있는 건청궁 곤녕합은 1895년 명성황후가 일본인들에게 무참히 시해된 장소입니다. 건청궁 옆의 녹산은 명성황후의 시신이 훼손되고 가매장되었던 곳입니다. 예전에는 비극의 현장임을 알리는 ‘명성황후 순국 숭모비’가 있었지만 지금 이 비는 여주의 명성황후 전시관으로 옮겨졌습니다.

녹산에는 동궁 자선당의 기단석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1914년 동궁 철거 작업에 참여한 일본인 건축가 오쿠라 가치히로[大倉喜八郞]가 자선당을 해체하여 일본으로 가져갔답니다. 바다 건너 일본으로 간 자선당은 오쿠라의 호텔 마당에 마구잡이로 조립되었습니다. 오쿠라는 이 건물에 ‘조선관’이라는 현판을 붙이고 약탈해간 우리의 문화재들을 전시하는 공간으로 사용했습니다. 조선관은 관동대지진 때 불타 없어지고 그 기단석만 남았습니다. 호텔 한 구석에 방치되어 있던 기단석 288개를 되찾아온 것은 1995년의 일이지요. 하지만 이 기단석들은 자선당 복원 작업에는 사용할 수 없었습니다. 화재 때 돌이 삭아버렸기 때문입니다. 이 기단석들은 우리 문화재를 되찾아오려는 학자나 관련자들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는지 짐작할 수 있게 해주는 소중한 유물입니다.

<작가 프로필>

1983. 2 이화여자대학교 사범대학 사회생활과 졸업

2013. 2 중앙대 예술대학원 문예창작전문과정 수료(소설 전공)

1981 이대학보사 편집장

1986-1987 한국출판연구소 연구원

1987-1998 (주)계몽사 홍보실장

2000-2003 월간 샘터 편집장

2010 조선일보 논픽션 대상 우수상 수상

2013. 3 수원 시민 인문·교양 아카데미 평가위원

2015-2016 국민대통합위원회 통합가치포럼 위원

현재 역사칼럼리스트, 두루마리역사교육연구소, 빛뜰 대표

한국경제신문 ‘펭귄쌤이 전해주는 대한민국 이야기’ 연재 중

「위클리 공감」(문체부) ‘황쌤의 조선 궁궐 ‧ 왕릉 이야기’ 연재 중

대한민국문화예술인 문화교육위원회 위원장

<저서>

역사가 보이는 조선 왕릉 기행(21세기북스), 고시조, 우리 역사의 돋보기(기파랑), 잘! 생겼다 대한민국(기파랑) 궁궐, 그날의 역사(기파랑), 우리 역사 속 망국 이야기(백년동안), 쉽게 풀어 쓴 선진 통일 이야기(글마당), 대화(피천득‧법정‧최인호‧김재순 님 대담집

황인희 작가
황인희 작가

 

저작권자 © The PeoPle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