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우 100년 전쟁의 시작 대한독립군단 괴멸사건

 

- 반드시 알아야 할 독립군 궤멸사

필자 류현수(문자와 경전 강사, 고리학술원 원장, 생명의강교회 목사)

사건 개요

1921년 6월 28일 당시 제3인테르나치오날로 명칭된 코민테른으로 볼셰비키 혁명군 중 극동군(이하 쏘련으로)이 아무르 주 자유시(스보보드니시) 수라제프카 역사(驛舍)에서 대한독립군을 공격한 전투가 벌어졌다. 최신식 무기로 무장한 쏘련 붉은군대는 쏘련군 최고의 빨치산 갈란다라시윌린이 사령관인 1,000여명 고려인연대를 앞세워 최신형 장갑탱크 두 대에 30여문의 기관총, 2군단 코사크 기병대대의 기병 300명까지 동원했다.

그들은 선로 너머에서 선로를 방패삼고 삼각주 형태의 야영지에 주둔한 대한독립군단을 공격한 것이다. 대한독립군은 강이 아니면 후퇴할 길이 없이 포위된 상태에서 벌인 전투였다.

이 전투로 독립군 1.000여 명이 전사하고, 강물로 후퇴하던 1,800여 명이 실종되었으며, 포로가 된 1,000여 명 중 쏘련 적군이 되기를 거부한 독립군은 집단수용소에 감금, 나머지는 소련군에 강제 편입되었다.

이 전투에서 살아남은 극소수의 독립군은 총포탄이 쏟아지는 강을 건너거나 강 하류로 내려간 분들 중에서도 극히 일부만 후퇴에 성공한 것이다.

다행이랄까! 독립군단이 자유시로 모이기 이전 대한독립군단의 총재인 서일, 부총재인 김좌진, 이범윤 김홍일 장군 등 북로군정서의 핵심인사들은 독립전쟁을 해야 할 대한민국 본토와 너무 멀다는 것과 러시안의 이중성을 이유로 대한독립군의 근거지인 밀산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대한독립군단의 부총재였던 홍범도나 국민회군의 안무, 서로군정서 총사령관 지청천 등 일부는 자유시 참변이 있기 전날 밤 붉은 군대의 회유에 속아 그 부하들과 함께 쏘련군대에 귀속하고 말았다.

발단

1902년 청국의 침범에서 간도를 지키기 위해 상소, 대한제국 황제로부터 간도시찰사를 명받은 이범윤의 군단에서 독립군의 한 부대장으로 활동하던 홍범도가 러시아의 배신으로 연해주 독립군 부대가 와해되자 10년동안 봉오동에 터를 잡고 독립군대를 양성하던 최진동의 독군부 부대와 연합, 군무도독부의 연대장으로 두만강 너머 일본헌병대를 기습한 사건에서부터 시작됐다. 1920년에 발생한 강양동 전투는 삼둔자 안산 고려령을 이어 결국 봉오동전투로 이어져 일본군에 대승을 거두지만 최진동의 10년 독립군 세거지를 잃었다.

그 봉오동 전투 이후 약이 오른 일본군은 대한독립군 제거를 목적으로 신흥무관학교의 서로군정서와 대종교의 중심으로, 대한군정서 총사령부이자 북로군정서를 공격하기로 했다. 대한군정서는 상해임시정부가 임명한 대한독립군 총본영이다.

이 소식을 중국군 장수 맹부덕에게 전해들은 대한군정서 서일총재는 흩어져 있던 독립군 부대들을 모두 한곳으로 모았다. 청산리 유역이다. 서일총재는 부대를 셋으로 나눠 한 부대는 사관학교를 갓 졸업한 생도들로 가족들을 밀산으로 옮기게 하고, 한 부대는 총재들의 본부대로 독립군을 추격하는 추격대의 지원사령부를 공격하고, 나머지 한 부대는 야전사령부의 부대로 독립군 추격부대를 공격했다. 매복과 기습, 그리고 치고 빠지기다.

군세만 믿고 달려들다가 치고 빠지기라는 교란작전에 말려든 양쪽의 일본군은 대패했다. 그러자 일본군은 그해 간도참변을 일으켜 간도의 대한제국백성을 무차별 사살하는 만행을 저지른다.

그렇게 일본군과 치룬 홍범도의 강양동 일본헌병대 침공은 함경도 서북방의 독립군 세거지 모두를 잃게 하여 쏘련이 점령한 러시아령으로 패퇴하게 하고 결국은 자유시 참변으로 이어지게 했다.

경위

안전하게 러시아와 간도의 경계인 밀산으로 이주했던 대한독립군은 일본군을 피해 러시아령으로 이주를 모색했다. 이를 간파한 러시아령 연해주에 머물던 고려인 공산주의자들은 쏘련식 훈련과 신식무기로의 재무장을 빌미로 독립군대 전체를 쏘련의 자유시로 가자고 유혹했다. 그들은 국민회군, 다반군, 사할린의용대로 불리는 니항군, 자유대대 등이 있었다. 그들은 이미 쏘련군 빨치산 소속이었다.

진퇴양난에 빠졌던 대한독립군은 그 유혹을 이기지 못한 대한독립군단은 자유시로 이동을 하고 그러던 중 대한군정서 총재인 서일과 북로군정서의 김좌진, 이범석, 의군부의 이범윤 등은 독립군대로서의 효용가치가 없다는 이유 등을 들어 자기들 수하 병사들과 함께 밀산으로 회군했다. 그것이 1921년의 정월!

그로부터 두어달 총재부를 제외한 대한독립군 산하 모든 부대들이 모두 자유시로 모였다.

독립군단이 자유시로 모인 후, 처음 소련군의 수락을 받아 대한독립군 전체를 지휘하던 박일리야는 그 유혹의 중심에 있던 니항군 사령관이었다. 니항군의 실제 총사령관은 상해임시정부의 초대 총리였던 이동휘였다.

상해임정의 초대 국무총리가 공산주의자였다는 말이다. 그러하기에 이동휘는 경무국장이던 김구에게 자유민주국가로 독립을 하면 또 다른 유혈전쟁을 통해 쏘련의 지시를 받는 공산국가를 다시 만들 것이니 자유민주국가로의 독립을 지지하지 말고 공산주의자인 자기를 지지해달라고 했던 것이다. 김구에게 호된 경고를 받고 끝이 났지만!

그렇게 자유시에서의 대한독립군은 박일리야의 지휘에 머무는 듯 했지만 자유대대의 사령관인 오하묵이 제3코민테른 사령부를 찾아가 박일리야를 몰아낸 후 고려인 연대를 형성 부연대장이 된다. 연대 사령관은 쏘련군 최고의 빨치산인 갈란다라시빌리였고!

쏘련군의 지휘를 받는 고려인 쏘련군대가 됐다는 말이다. 쏘련의 지배를 받는 대한을 만들자고 김구를 회유하던 이동휘의 말과 같은 부대가 만들어진 것이다. 당시 고려인 쏘련군의 생각도 다르지 않았다. 쏘련이 일본군을 몰아내고 대한민족의 영토를 쏘련의 연방주의 하나로 만들고 그 연방정부를 통치하는 통치자가 되려고 했다 한다.

그 후 쏘련군은 대한독립군에게 쏘련군대가 되어줄 것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쏘련이 일본을 몰아내고 대한민국의 독립을 이뤄줄 것이라고 하면서!

그 유혹이 6월 들어선 협박으로 변했고 일방적인 무장해제 요구가 됐다.

그러나 독립군에겐 독립군이기를 포기할 수도, 전 국내와 재외 모든 국민의 목숨과 피와 땀으로 구입한 무기도 포기할 수 없었다.

그런 긴 대치 끝에 6월 28일의 자유시참변은 발생한 것이다.

그렇게 발생한 자유시참변의 원인이 훗날에 밝혀진 또 하나가 있다. 일본의 개입이다.

소련령으로의 이주 초기 대한독립군은 쏘련군으로부터 군량과 무기지원까지 받고, 쏘련의 적인 러시아백군과 백군을 돕던 일본군과 전투를 벌여 쏘련 붉은군대를 도왔다. 하지만 러시아백군과 일본을 거의 제압하여 대한독립군의 도움이 필요 없게 되자 대한독립군의 거취문제는 쏘련의 딜레마가 된다. 이를 눈치챈 일본은 일본이 러시아와 캄차카 반도 연안의 어업권을 쏘련에 할양한다는 것과 러시아령에서의 일본군 철수라는 조건을 걸고 러시아에서 대한독립군대를 제거해 줄 것을 요구했다. 러시아는 수락했다.

결국 자유시참변은 대한민국으로서의 자주독립을 바라던 대한독립군에게 패한 일본의 독립군 제거작전에서 시작하여 쏘련의 ‘대한독립군 쏘련군대 편입요구’와 ‘제거’ 그 과정에서 일본의 개입으로 이어진 결과였다. 쏘련파 고려인 공산연대는 결국 일본의 앞잡이가 되었다.

자유시참변의 의의

자유시참변은 일본과 조약을 맺은 쏘련의 붉은 군대(볼세비키)와 그 꼭두각시 이르쿠츠크파 한인 공산당세력이 러시아 아무르주 자유시(스보보드니)에 집결한 상해 임시정부 지지 대한독립군단을 몰살시킨 사건이다.

자유시참변 그 이후 일본군과 대한독립군은 군대 대 군대간의 전투가 전무했다.

그래서 자유시참변의 의의 그 첫째는 대한독립군을 궤멸시킨 사건이란 것이다.

그리고 둘째는 공산주의자들의 정체성 통찰이다. 자주통일국가로서의 대한민국 건국 아닌 쏘련의 지배를 받는 번국으로의 독립을 꿈꾸던 그들은 세계공산화를 목적으로 하는 쏘련의 충견이었다. 또한 일본과 야합한 쏘련의 앞잡이가 되어 대한독립군 공격의 선봉에 섰던 공산주의자들은 자신들의 의지와 상관없이 사주하는 일본과 야합한 반민족 매국노였던 것이다.

설전

자유시참변에 과한 설전, 그 첫째는 공산주의자들의 권력암투설이다.

그 설이 가능해지려면 쏘련에 의해 밀려난 박일리야가 쏘련과 다시 접촉, 권좌를 얻으려는 시도가 있어야 한다. 그 기록은 전혀 없다. 또 그 설이 힘을 얻으려면 오하묵은 공격을 하려하고 쏘련군은 중재를 했어야 한다. 대한독립군은 차치하더라도 1917년 겨울 레닌이 군대를 동원하여 쏘비에트 의회를 해산시킨 볼셰비키 혁명을 이룬 후부터, 오하묵이나 박일리야나 모두 러시아백군과 그를 돕는 일본군과의 전투를 함께 했던 동지들이기 때문이다. 그나마 꼬투리로 사용하자면 박일리야는 그나마 민족주의, 오하묵은 반민족 공산주의자 그 차이일 뿐이다.

설전의 그 둘째는 대한독립군을 공격한 것이 공산군이 아니었다는 설이다.

이건 말도 안 되는 것으로 다만 자기들의 책임을 회피하고자 하는 공산주의 추종자들의 궤변일 뿐이다. 아래의 그림은 자유시참변 바로 전날 밤 쏘련군에 투항한 홍범도가 쏘련군에게서 대위 계급장을 받고 한인대대 대대장이 된 후 쏘련군에게서 하사받은 대대 깃발이라 한다. <상생방송 홍범도장군편에서 방영한 것을 내가 그린 것으로 원품은 하바롭스크 민족박물관 소장되어 있다고 함>

내용에서 보자면 쏘련은 고려공산군에게 고려정부를 세웠고 그 정부는 자본주의에서 인민을 해방하여 공산주의 아래에 두는 것이다.

우리가 모르는 것은 우리의 독립전쟁을 방해한 그 대상이 당시는 일본 뿐만 아니라 쏘련과 중국, 중국공산당에 마적까지 연루된 것으로 우리가 치룬 자주적 대한독립전쟁은 사방이 절벽인 상태에서 치러진 암흑과의 전쟁이었다는 것이다.

결론

사방 적으로 둘러싸여 대한국민 전체가 일어나도 독립을 달성하기가 쉽지 않은 마당에 먼 쏘련에 가서도 동포인 독립군에게 총부리를 겨눈 것이 쏘련파 고려인 공산군이었다. 공산당 세력은 독립전쟁 시기나 해방시기나 지금이나 우리 민족을 분열시켜 공산화로 이끌려는 가장 큰 적이다.

김삼용 저, 책보세 출판의 <우당 이회영 평전> 325쪽을 보자면 그들 공산주의자들은 훗날 김좌진 김종진 김규식 등 잊혀진 대한독립군단을 꿈꾸며 준비하던 대한독립지사들을 암살하였기에 <일본과 쏘련을 등에 업고 일본과 교대로 대한독립지사들을 공격하고 암살하여 독립해야 할 대한을 일본보다 더 큰 적으로 간주하고 있다. 또 일제보다 이념적 라이벌인 독립운동자들을 더 큰 적으로 생각하면서 태어난 대한민국이 아닌 공산주의 이념의 고향 쏘련을 조국으로 여기고 있다> 라고 적고 있다.

김구 저, 도진순 탈초 교감, 돌베개 출판의 <정본 백범일지> 388~389쪽을 보자면, 김구에게 쏘련의 지배를 받는 공산 대한을 세우자던 이동휘는 흑심을 감추고 대한독립을 돕겠다고 레닌이 준 자금을 수하인 김립을 시켜 수송관이 한형권을 협박하여 자금 중 상당분을 취하여 가족을 위해 사용하고 공산주의자들의 마을을 만드는 등으로 자주적 민족국가의 독립 아닌 독립운동을 빙자하여 자기들의 배를 채우는 그 유전자를 보여줬다. (김립은 김구가 직원을 시켜 임정 사무실에서 사살)

허훈 강석찬 조윤기 동두천시 지음, 조명문화사 출판의 <동두천과 주한미군> 18쪽을 보자면 ‘38선을 기준으로 하는 분단은 포츠머스회담이 아닌 1945년 8월 쏘련군의 한반도 침략 이후인 8월 11~12일 양일간 미국 3성위원회의 결정에 의한 것으로 한반도의 공산화를 막기 위한 특단의 조치였다’고 했다. 또 쏘련은 1945년 그해 10월 13일에 38도선 이북에 쏘련분국 북조선을 세우고 정치와 행정일군이던 김일성을 앞세워 북조선 공산화에 앞세웠다고 했다. 또 같은 책 20쪽에서는 세계공산화를 위한 첫 전쟁인 6.25는 김일성의 요구와 쏘련 스탈린의 결정에 의해 일어난 것으로 21쪽에선 그 주장의 근거를 지금 대한민국 외교부 외교사료과에 소장된 것으로 옐친이 김영삼에게 선물로 준 구 쏘련의 비밀문서라고 암시했다.

자유시참변은 공산주의자들이 일본과 짜위한 쏘련의 군대되어 세계공산화를 위해 자주대한의 독립을 위한 동족 독립군대를 몰살한 것에 대한 의견은 국방일보를 위시해서 목단강 독립운동사적지 보존카페, 서일총재 기념사업회, 오마이뉴스 등 인터넷에서 자유시참변을 검색해 보면 알 수 있다.

만주 간도 연해주를 호령하던 조상님들의 기상은 어디에 쳐 박고 공산주의 패권국의 무릎 아래 엎어져 기려고 하는지~~

공산주의와 자유민주주의 간 그 100년, 기나긴 그 전쟁은 역사에 담긴 그 정신에서 누가 참 민족자결주의, 자주적 자유대한민국을 세우고 지키려 했는지를 아는 그것에서 민족전쟁은 마침을 이룰 것이다.대한의 민족 모두가 역사의 진실 앞에 겸손해지길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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