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의종 前 서울시의회 부의장

謀陷으로 억울한 옥살이 한 4선의 서울시의원…사법피해자 구제위해 餘生 바쳐

 

“진실은 영원히 묻히지 않는다. 그리고 절대 그렇게 되어서는 안 된다.” 서울시의회 4선 의원이자 제6대 부의장까지 지낸 백의종 전 부의장의 절규에 가까운 외침이다.

백 부의장은 2010년 11월 3일 새벽 서울서부지방검찰청 수사관들에 의하여 자택에서 긴급 체포됐다. 당시 백 부의장 지역구인 마포구 아현뉴타운사업과 관련해 조합 관계자로부터 4천만 원의 뇌물을 받았다는 혐의였다. “절대로 뇌물을 수수한 사실이 없다”고 결사적으로 결백함을 강조했지만 곧바로 구속영장이 청구되고 구속 기소돼 징역 1년6개월을 살고 나왔다.

증거는 뇌물을 공여했다는 조합 관계자의 검찰진술과 그의 메모지에 적힌 ‘백 40’이 전부. ‘백’은 백의종을, ‘40’은 4천만원을 뜻하는 것이다. 그 메모지에는 여러 명의 이름과 숫자가 적혀 있었는데 뇌물죄로 처벌을 받은 사람은 오로지 백 부의장 한사람뿐이었다. 검찰은 백 부의장을 기소하면서 다른 사람들은 아예 수사를 하지도 않았다.

만기 출소한 백 부의장은 사법부의 잘못된 판단을 바로 잡기 위해 재심을 청구하기위해 올해 6월 법원에 의견서를 제출했고, 재심이 받아들여져 죄 없이 옥살이를 한 억울함을 해소할 수 있게 되었다.

형기를 다 마치고도 법원에 재심 신청을 하는 이유에 대해 백 부의장은 “비록 옥살이는 다 마치고 그저 평범하게 살 수도 있지만, 진실은 반드시 밝혀야 또 다른 나 같은 피해자가 줄어 들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만기 출소 후 재심 청구해 받아들여져 곧 결백 인정될 듯

이렇듯 백 부의장의 재심이 받아들여지기까지는 사법피해자들의 억울함을 풀어주기 위해 불철주야 노력하는 구국실천국민연합 연도흠 대표의 공이 크다. 연 대표는 전국 각지에서 찾아오는 온갖 사법피해자들의 구제를 위해 문서를 작성해 주고, 법원, 검찰청, 지자체 청사 등에서 집회를 하며 힘을 보태고 있다.

의견서에서 백 부의장은 “아무리 잊으려 해도 낫지 않는 상처로 남아 일상생활을 제대로 할 수 없다”며 “더욱 마음이 아린 건 반평생을 함께 살아 온 내 아내가 나로 인해 화병을 얻어 시름시름 앓다가 내가 출소한 지 열흘 만에 세상을 떠났다”고 말하며 눈시울을 적셨다.

백 부의장은 1942년 충남 서천에서 태어났다. ‘고아’나 다름없었던 그는 초등학교 졸업 후 학업을 지속할 수 없는 경제적 여건 때문에 먹고살기 위해 군산으로 가 구두닦이를 하는 등 고단한 어린 삶을 영위했다.

그러던 중 그 지역에서 신문사 지국을 운영하는 사장 눈에 띄어 그의 집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신문배달 일을 하게 되었다. 당시 신문배달원에게는 정식 배달부수 외에 10부 정도의 신문을 더 줘 판촉용 등으로 사용하도록 했다는데 백 부의장은 그 신문을 팔아 번 돈 전부를 지국에 입금했다고 한다.

불우하지만 정직한 삶 살아 주변의 신뢰 두터워

이런 모습을 신뢰한 지사장은 백 부의장을 중학교에 입학시켜줬고 군산고교까지 졸업하게 되었다. 그리고 지국장 딸이 사는 서울 이태원으로 올라와 그 집 어린 아이들의 공부를 봐 주며 사회생활을 시작했고, 단국대 체육교육학과를 졸업하고 농협에 취업해 8년을 근무한 후 1991년 6월 서울시 마포갑지역구 제3대 서울시의원 선거에 출마해 당선 된 이후 내리 4선 의원이 됐으며, 제6대 서울시의회 부의장에 당선됐다.

백 부의장은 의원 재직 시절 2002한일월드컵축구대회에 필요한 서울지역 경기장 위치 선정을 놓고 의견이 분분할 때 “전세계 축구 선수와 응원단이 서울을 방문하는데 공항과 가깝고 서울의 관문이라 할 수 있는 상암동에 축구장을 건립해야 한다”고 주장해 당시 쓰레기매립장이었던 ‘난지도’를 정비하고 서울월드컵축구경기장이 들어서게 했다.

이렇듯 백 부의장은 어려서부터 정직한 삶을 살아왔으며 자신의 영달보다 시민의 행복을 위해 4선의 의정활동을 펼쳤다는 객관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나 사욕(私慾)에 가득 찬 어떤 인물에 의해 억울한 옥고(獄苦)을 치렀고, 그 억울함은 아직도 완전히 해소되지 않은 상태다.

부의장은 현재 사법피해자들의 구제를 위해 활동하는 구국실천국민연합 고문으로 있으면서 노구(老軀)에도 불구하고 각종 집회에 빠지지 않고 참석해 그들의 아픔을 다독여 주고 있으며 서로 큰 힘이 되고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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