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문정 작가

“마당에 덩그러니 있는 풀 한포기도 내겐 소중하다”

허문정 작가
허문정 작가

 

허문정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나의 정원 ‘my garden’ 은 ‘자연 속에서’의 연작이다. 초록의 자연 속을 들여다보며 봉오리가 터지려는 순간, 활짝 핀 꽃, 그 속의 작은 곤충처럼 소소한 자연에서의 일상을 기록하고 관찰하며 새로운 상상력을 더해가는 나의 삶을 발견해 나간다. 그것은 나비와 새를 키우고 나와 아이도 커가는 성장의 기록이기도 하다.

마당에 있는 풀 한포기도 내겐 소중하다. 오늘은 어떤 식물이 자라는지 오늘은 어떤 색깔의 노린재, 나비를 만나게 될지 설렘을 주는 마당은 매일매일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마당에서 오랫동안 일을 하다보면 해가 지고 어둠이 깔리는 찰나의 순간이 온다. 그 순간은 자연의 사물들이 더욱 아름답게 빛나는 모습을 선사해 준다. 어둠이 찾아오고 쓸쓸한 고독의 시간이지만 자연에 에워싸이는 시간, 사색의 시간이다. 하늘의 별과 우주의 신비로움을 느끼게 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나의 정원에서 자연에서 느껴지는 맑은 기운과 섬세함, 미묘한 아름다움을, 자연과 교감으로 인한 나만의 감수성을 누구나 공감되는 거창하지도 무겁지 않게 작품으로 표현한다.

 

자연속의 모습은 아름답기도 하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찢겨진 나비의 날개, 죽어있는 곤충, 죽은 새 등 상처 나고 찢김을 볼 수 있다. 우리의 삶 또한 유한한 존재로 불안하고 외로운 존재이다. 작품을 통해 생태학적으로 사실적인 부분과 이질적인 부분이 함께 존재하는데, 나비가 꿀을 찾는데 꽃에 꿀이 없거나 서로 어울릴 수 없는 나비와의 관계 등을 통해 아이러니 또는 인간의 욕망을 표현하였다. 나의 작품 속에 간간히 보여 지는 인물과 눈동자는 자연 속으로 침투한 자아의 모습이다.

꽃잎 작업은 모든 작품 곳곳에 나타나는 주요 모티브이다. 자연물을 드로잉하고 꽃잎과 나뭇잎을 채취하여 작업에 사용한다.

나의 작품은 자연물을 직접 사용하여 작업된 판들과 드로잉 작품을 자유롭게 응용하였다. 자연의 본질적인 모습과 인생사와의 관계, 삶속에서 쌓여진 감성들을 묵묵히 쌓아감이 나의 작품이다.

이야깃거리가 많은 자연 속 나의 정원이야기는 한 화면에 많은 자연의 모습을 담고 있다. 다소 산만하지만 우주를 유영하고 있는 행성들처럼 서로 공존하면서도 자유롭게 속박되지 않는 자연의 사물들을 표현하려 하였다.

사계절 변화하는 모습을 느끼고 관찰하는 것은 삶의 한 일부분이다. 일상에서 만나는 자연적 소재들은 나의 감각과 촉각을 세우며 채집된다. 자연을 관찰하고 사색한 드로잉 작업 등 다양한 기법을 시도 한다. 판화로는 주로 동판화 작품을 제작한다. 에칭, 아쿼틴트, 연필로 얇은 유산지에 선을 그려 부식하는 소프트 그라운드 기법과 특히 실제 나뭇잎을 이용하여 실재감 있는 잎맥을 표현하는 소프트 그라운드 기법을 사용한다.

프린팅 과정에서는 얇은 한지에 작품 이미지의 부분을 오려 수채화로 채색하여 동판위에 꼴라주하여 찍어낸다(친꼴레- 프랑어로 풀로 붙이다의 뜻) 드로잉, 페인팅, 판화 작업을 하면서 판화의 복수성을 이용한 에디션 없는 작품을 하고자 많은 시도를 하였다. 얇은 한지를 이용해서 꼴라쥬하거나 그림 위에 판화를 찍어 이미지의 중첩을 구현해 자연스럽게 표현하고자 하였다. 또한 단색 판화가 아닌 페인팅처럼 판 하나에 많은 색을 사용하여 자연의 맑고 투명한 아름다움을 표현하고자 하였다.

이처럼 자연물을 직접적인 작품의 소재로 활용한 작업은 2000년대 초반 채송화 꽃의 즙을 활용한 것이 시초이다. 아름답기만 하던 채송화의 색채는 캔버스 위에 시간을 이기지 못하고 탈색되어 죽음의 색, 갈색으로 변모하였다. 자연의 아름다운 색에 빠져 봉선화, 장미, 메리골드 등의 식물을 채취하여 그라인더에 갈아 자연의 아름다운 순수한 색을 얻고자 했으나 산화되어 자연물의 흔적만 남기었다. 이러한 자연현상은 퇴색되고 사라지는 우리의 인생사와 닮아있는 듯하다.

자연물을 직접 이용하는 실험적 작업에서는 식물의 상태에 따라 예민한 차이가 나타난다. 특히 블루프린트 작업에서의 얇고 투명한 꽃잎의 식물은 음영의 대비가 잘 나타내주는 형상을 만들어 주었으며, 빛의 강도에 따라 강한 그림자와 양감 등이 재미있게 표현된다.

그리고 홍경한 미술평론가는 허문정 작가를 이렇게 얘기한다.

세심함과 치밀함이 돋보이는 온갖 자연물이 화면에 자리한다. 사실적인 잎사귀의 잎자루와 형형색색의 꽃들을 비롯해 새, 나비, 사마귀, 무당벌레 등 온갖 곤충과 조류도 배치되어 있다. 원근법 없는 평평한 공간을 부유하는 그것은 전체적인 구성에마저 어느 것 하나 소홀히 하지 않을 만큼 계획적이고 꼼꼼하다. 그야말로 ‘질서의 미’다.

‘질서의 미’는 2000년대 중반 선보인 <in nature> 이후 2020년 근작인 <in nature>연작과 <My Garden>(2020) 시리즈, <Forest>(2020) 시리즈에 이르기까지 고루 나타난다. 사실적이면서도 불규칙한 리듬을 지닌 채 예술적 대상에 대한 인식과 관점들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해체 및 집약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촘촘하게 그려진 자연물의 심미성도 눈에 띄지만, 무엇보다 홍엽이었다가 황엽이 되고, 다시 시간이 흘러 갈엽이 되듯 세월에 흔적이 열람된다는 게 특징이다.

세월의 흔적은 잠시 가려졌다 다시 피어나는 자연의 그것마냥 작가에게 순환의 과정과 다름 아님으로 비춰진다. 이는 유기체적 세계관이지만, 자연의 순리에 인간의 운명을 맞춰가며 현세의 삶을 초월하려는 의지 역시 배어 있다. 반문명주의(反文明主義)까지는 아니더라도 인위적인 것과의 대립이 내재되어 있음이다.

실제로 작가 허문정에게 자연은 일상의 한 부분이면서, 생명이 다한 것들에 새로운 생명을 부여하는 생태학적 고리와 맞닿아 있다. 사적으로서의 자연은 그에게 행복을 일깨우거나 정체성을 확인하는 계기이고, 주어진 현실을 넘어서는 촉매로도 아쉬움이 없다. 특히 어느 면에선 폐쇄된 자의식에서 풀려나 자유로운 사고를 지향하는, 작가의 마음을 대리하는 색다른 재현인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기 언급한 내용의 소실점엔 ‘지금 내 안에 있는 무엇(something that is in my mind)’이 걸려있다. 그것은 곧 자아를 의미하고, 인간 내면의 공통분모적인 욕구와 무의식, 삶을 지탱해온 여러 알고리즘과 연계된다. 물론 그 욕구와 무의식, 삶의 요소에는 미로와 같은 인생에서 하루하루의 문제들을 담담하게 맞닥뜨리며 살아가는 나라는 존재와, 존재일 수 있기에 들어차는 다양한 의문들, 생을 소모할수록 되레 성장하는 여타의 것들이 나란히 분포되어 있다. 여정에 관한 고뇌, 매 순간마다 다가서는 ‘감정의 복선들’ 또한 복잡하게 내재되어 있다.

<나의 정원>(my garden)을 비롯한 일련의 연작들은 바로 그 ‘감정의 복선’을 전사한 것이다. 이 작품 모두 본질적으론 작가가 추구해온 ‘삶의 주제’(ego)와 동떨어져 있지 않으며, 그건 ‘자연과 나’의 현상학적 관계들을 보다 밀도 있게 보여주는 행위이자, 작가 자신과 그 자신을 둘러싼 이야기들을 발견하거나 기록하는 것이라 봐도 무방하다.

다만 그 발견과 기록은 지시적이지 않다. 지시적이지 않기에 상상력을 가중시키고 해석의 여지 또한 넓다. 판에 눌려 한지에 옮겨진 다양한 자연물과 인물 등, 모든 소재들 하나하나가 그렇다. 그 중에서도 그의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꽃잎 작업은 자연 속 존재로서의 실존과 가깝다. 그 둘의 관계는 작가 스스로 살고자 하는 의지만을 가리키진 않는다. 서로 존재한다는 것만으로 순종하고, 순종함으로서 자연의 섭리를 이해한다는 게 옳다. 이는 물질 관계로 전이되지 않고 이성으로 파악되지 않는 조건들로서, 작가는 이를 감성으로 걷어 올려 시각으로 표현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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