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대현 수곡공방 대표(대한민국명장 나전칠기 1호)

“자개가 발산하는 영롱한 무지개 빛은 기본 옻칠이 잘 돼야 더 華麗”

 

현재 국립민속박물관에 영구 소장된 ‘모란당초능화형쟁반’, 예전에 노태우 전 대통령이 유럽 방문 때 정상들에게 선물한 ‘나비당초문서류함’, 김대중 전 대통령이 일본 왕에게 선물한 ‘쌍휘문보석함’, 방한한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에게 선물한 ‘십장생도보석함’의 공통점은 모두가 수곡공방(守谷工房) 손대현 대표의 작품이라는 것이다. 다음은 손 대표와의 일문일답.

▲ 나전칠기(螺鈿漆器)를 배우게 된 계기는 무엇입니가.

- 저는 1949년 황해도 장연에서 태어났습니다. 1·4 후퇴 때 홀어머니와 월남해 제주도와 부산, 경기도 포천과 문산, 서울 등 이곳저곳 떠돌며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그러던 중 친구 소개로 서울역 근처 사무실에 일하러 다녔는데, 그 건물 2층에 나전칠기 작업장이 있었습니다. 작업 장면이 얼마나 신기한지 시간 날 때마다 구경하러 갔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완성품을 포장하는데 자개가 박힌 보석함과 쟁반에서 발산(發散)되는 무지개 빛이 내 눈을 현혹하는 순간 마음을 빼앗겨 지금까지 ‘칠쟁이’로 살고 있습니다.

▲ 나전칠기의 매력은 무엇인지요.

- 칠의 매력은 탑을 쌓듯 하나하나 완성해가는 데 있습니다. 오늘 초칠을 했다면 내일은 건조 상태와 색깔의 변화를 확인한 다음 곱게 갈아내고 덧칠합니다. 이렇게 차례차례 칠해나가다 드디어 마지막 마감 칠을 하거나 광내기 작업을 끝냈을 때, 그 달라진 질감과 색깔을 보노라면 그 환상적인 느낌은 인간의 언어로는 표현이 불가능할 정도로 짜릿합니다.

 

▲ 호(號)가 수곡(守谷)인데 사연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 저의 직계 스승이 민종태(閔鍾泰·98년 84세로 작고) 선생이십니다. 그분의 호가 수곡이었는데 알고 보니 민 선생님의 스승이 바로 우리나라 나전칠기의 중시조(中始祖)라 할 수 있는 전성규(全成圭) 선생님으로 그분의 호가 바로 ‘수곡’이었습니다. 그러니까 큰 스승님의 호를 제자가 물려받은 것입니다. 매우 영광스러운 일이지요.

민 선생님을 처음 만난 때는 1969년 9월쯤 성남에 있는 공방으로 찾아가서부터 입니다. 첫날 제자로 받아 달라고 했지만 거절하셨지요. 그래서 6개월 동안 거의 매일 찾아갔습니다. 드디어 스승님이 허락해줘서 본격적으로 나전칠기를 배우게 됐습니다.

그리고 몇 개월 지나자 처음엔 시큰둥하시던 스승님도 관심을 갖고 봐주시고 끼니를 챙겨줄 정도로 각별한 애정을 주셨습니다. 이후 스승님이 돌아가시기 몇 달 전에 저 보고 ‘수곡’이란 호를 쓰라고 하셨어요. 유언처럼 남기신 그 말을 듣고, 원래 쓰던 호를 두고 ‘수곡’으로 바꿨지요. 그래서 3대째 내려오고 있습니다.

▲ 자신만의 작품 세계를 갖기 위한 ‘독립’은 언제 했는지요.

- 1978년 말 결혼한 뒤 새로운 길을 개척해 보고 싶은 생각에 ‘독립하고 싶다’고 말씀드렸을 때 스승님은 기꺼이 허락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스승님께 들어 온 주문의 70% 정도를 저에게 맡겨 주셔서 어렵지 않게 기반을 다질 수 있었습니다.

주로 일본 수출용을 맡기셨는데 실력 향상에 큰 도움이 됐습니다. 이렇게 실력을 쌓다보니 1984년 동아공예전 입선을 시작으로 솜씨를 인정받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전승공예대전에서만 여덟 차례에 걸쳐 각종 상(93년 18회 때 '日月五嶽圖文匣'으로 국무총리상 수상)을 받을 정도가 됐습니다.

지금까지 외국에서 가진 굵직굵직한 초대전만 중국 일본 미국 독일 포르투갈 이탈리아 프랑스 몽골 등에서 모두 10여 차례 있었습니다. 현재 국립민속박물관에 영구 소장된 ‘모란당초능화형쟁반’이 있으며 예전에 노태우 대통령이 유럽 방문 때 정상들에게 선물한 ‘나비당초문서류함’(7점)과 김대중 대통령이 일본 왕에게 선물한 ‘쌍휘문보석함’, 방한했던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에게 선물한 ‘십장생도보석함’도 저의 작품입니다.

▲ 1991년 나전칠기 부문 1호 대한민국명장으로 선정됐는데 당시 소감(所感)은 어땠는지요.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진리를 다시 한번 깨달았습니다. 어린 나이에 시작해 포기하지

않고 노력한 결과에 대한 영광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우리나라 전통 공예를 더욱 발전시켜 세계화에 이바지하라는 국가의 명이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래서 다양한 곳에서 기술을 전수하고 있습니다. 문화재보호재단 전통문화의 집이 운영하는 한국전통공예건축학교에서 옻칠반 교육을 했으며 서울대에서도 강의를 합니다. 초등학교를 겨우 마친 내가 우리나라 최고의 대학에서 똑똑한 제자를 키우다 보니 군자삼락(君子三樂) 중 하나를 알게 되었습니다.

▲ 우리나라의 나전기법이 특별한 이유는 무엇인지요.

- 우리나라 나전칠기의 역사는 무척 오래됐습니다. 그 과정에서 우리만의 독특한 기법이 발전

했지요. 인류가 목기를 쓰기 시작했을 때부터 옻칠이 시도됐을 것으로 보는 학자도 있습니다.

청동기 시대 유적지인 창원 덕천리 유적에서 칠 조각이 발견되면서 우리 옻칠의 역사가 청동

기 시대에 시작된 것으로 확인됐으며 아산 석관묘 청동기 유적지에서도 칠편이 나왔고, 창원

다호리 유적지(BC 1세기)에서는 칠기가 20여 점이 출토됐습니다. 공주 공산성 유적지에서는

백제시대 옻칠 갑옷과 마갑까지 발굴되면서 우리 옻칠의 발전사를 엿볼 수 있습니다.

일본은 습기가 많은 기후 탓인지 칠기를 널리 써왔고, 옻 재료와 정제기법도 앞서간다는 평가를 받지만 장인의 기술로만 따져본다면 우리나라가 단연 최고라고 확언할 수 있습니다. 고려시대 확립된 섬세하고 세련된 칠기 기술은 오늘날에도 변함이 없으며 이때 전복 껍데기와 바다거북 등딱지인 대모를 얇게 저며 각질 뒷면에 안료를 칠하는 복채기법이 개발됐습니다.

▲ 긴긴세월 칠 작업을 해 왔는데 지겹지는 않나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작업을 마무리하고 나면 전날 칠한 것이 제대로 말랐을지, 색깔은 내가 바라는 대로 나왔을지, 혹 잡티가 붙지는 않았을지 조바심과 설렘 긴장감 그리고 경건함까지, 뭐라 말할 수 없는 두근거림이 있습니다. 도공이 드디어 가마 문을 열고 작품을 처음 꺼낼 때의 설렘과 마찬가지이지요. 그러니 도저히 지루해질 수가 없지요.

▲ 옻칠을 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부분은 무엇입니까.

- ‘보이지 않는’ 과정입니다. 마감 칠을 해 버리면 그전에 했던 과정들이 감춰져 버려지요. 제 스승이신 민종태 선생님께서는 언제나 ‘밑에 보이지 않은 부분이 정확해야 정말 천 년이 가는 명품으로 남는다’는 철학을 말씀해 주셨어요. 밑바탕이라고, 안 보인다고 소홀히 하면 안 되고 과정 하나하나를 빠트리지 말고 충실히 하라고요.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던 말이라, 지금도 그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 작품당 작업 소유 시간은 얼마나 걸리나요.

- 나전칠기를 만드는 데 거쳐야 하는 공정은 줄잡아 20여 단계가 필요합니다. 단계마다 수십 번 손질을 해야 하지요. 예를 들어 높이 1백68㎝ 길이 78㎝ 크기의 관복장 하나 만드는데 6개월, 앉은뱅이 차상(茶床)을 만드는 데도 2개월이 소요됩니다.

그러니 완성품의 화려함만을 눈속임으로 내세워 어느 한 구석이라도 소홀히 했다간 작품을 그르치게 되지요. 그래서 제자들에게 “조급증에 손이 곱은 사람은 일찍 손을 떼라”고 말합니다.

▲ 작품에 관한 에피소드 하나만 말씀해 주시지요.

- 예전에 전복 중에서도 아주 아름다운 것으로 골라 3층 장을 세트로 만든 적이 있어요. 어떤 분께서 사 가셨는데, 그분에게서 전화가 왔어요. 저는 혹시 장식이 잘 못 되었거나, 녹이 슬었나 라는 생각으로 찾아갔는데, 그분이 ‘정말 좋은 작품을 해줘서 고맙소’라고 인사를 하려던 거였어요.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분이 어느 날 밖에서 아주 마음이 상해서 들어 오셨데요. 노한 마음을 가지고 방에 있었는데, 자기도 의식하지 못하는 순간 마음이 너무 차분해져 노여움이 가셨다는 거예요. 본인도 놀라서 보니깐, 제가 만든 3층 장을 계속 응시하고 있었데요. 화사한 나전에 빛깔과 문양이 자신의 마음을 씻어줬다고요.

▲ BMW자동차와 삼성TV 등과도 콜라보레이션을 하셨다면서요.

- 전통공예라고 하면 옛것을 그대로 답습하는 경우가 많은데 저는 이 시대에 살면서 이 시대에 모든 분야와 소통할 수 있는 그런 문양과 소재를 사용해야 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소재도 많이 달라졌죠. 예전에는 나무에 옻칠을 하는 것이 거의 전부였는데, 지금은 여러 가지 소재가 많이 나오잖아요. 금속, 알루미늄, 플라스틱 등 다양한 소재에 옻칠을 접목해서 이 시대에 맞게 계속해서 도전해 나가고 있어요. 그래서 아마 그런 산업 쪽에서 일이 들어오고, 결과가 좋지 않았나 싶어요.

▲ 향후 계획은 무엇인지요.

- 나전칠기는 우리나라만 표현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세계적인 공예 기술입니다. 옻칠은 일본이 더 뛰어나다고는 하지만, 옻칠과 나전을 접목한 나전칠기는 일본의 옻칠장들도 와서 배울 정도로 독보적인 위치에 있습니다. 이렇게 훌륭한 나전칠기가 해외에 많이 알려질 기회가 없었어요. 우리 장인들이 스스로 그 부분을 해결하기는 어려운 부분이 많고, 한계가 있습니다. 따라서 외국의 유명한 미술관이나 전시공간에서 나전칠기를 전시해 우리의 아름다운 전통공예를 더 많이 알릴 수 있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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