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현영 작가

“십장생도는 고달픈 현실에서 행복한 삶을 소망하는 부적과 같은 것”

 

작가 오현영은 자신의 노트에 이렇게 썼다.

“나에게 바코드는 모든 가치가 기계화되고 코드화된 현대문명을 상징한다. 나의 그림은 그러한 환경 속에 알게 모르게 젖어 들며 각박해져 가는 나 자신과의 투쟁의 결과이고, 과거 자연과 어우러져 낭만적인 삶을 살았던 선조들에 대한 동경을 반영한 것이다. 과거 김홍도, 정선, 김규진이 그린 금강산을 바코드를 이용해서 재현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어느덧 내가 사는 빌딩 숲처럼 되어 버린다. 나는 모든 가치가 자본화되고 도시화 된 오늘날의 사회현실에서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인간 본연의 낭만성을 현대적 감각으로 구현하고 싶다.”

그리고 최광진 미술평론가는 오현영 작가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모든 국가와 사회는 근본적으로 안정과 질서를 추구하고, 이를 위해 각종 법과 규범을 만들어 순종을 강요한다. 특히 현대로 올수록 더 거대해진 사회체제를 유지하기 위해서 더 많은 법령과 규범들이 만들어졌다. 이것은 결코 자연스러운 일이 아니다. 여기에는 알게 모르게 타인을 지배하기 위한 이데올로기와 정치적 권력이 교묘하게 개입되어 개인의 욕망을 억압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거대해진 현대사회에서 ‘코드화’는 개인을 감시하고 통제하기 위한 유용한 수단이다.

오현영의 근작은 갈수록 삭막해지는 현대사회에서 ‘십장생도’를 통해 잃어버린 인간의 꿈과 욕망을 드러내고 있다. 과거 전통 회화에서 ‘십장생도’는 해, 구름, 산, 물, 소나무, 거북, 사슴, 학, 복숭아, 불노초(영지) 등 주로 불로장생을 상징하는 소재들로 이루어져 있다. 이것은 영생의 비법을 터득한 신선처럼 오래 살기 위해서 동식물과 자연에서 이와 관련된 소재를 통해 장생을 소망한 것이다.

오현영의 작품에도 어김없이 전통 ‘십장생도’에 나오는 해와 구름이 등장한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이것이 QR코드로 이루어져 있다. 컴퓨터가 만든 흑백 격자무늬 패턴으로 된 QR코드는 오늘날 코로나 펜데믹 이후 일상화된 디지털 기호다. 직선과 제한된 숫자로 구성된 1차원적 바코드와 달리 QR코드는 2차원의 면에 픽셀로 더 정교하게 정보를 판독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역시 빛의 투과와 반사의 원리를 이용하여 실재를 디지털 기호로 코드화한 것이다. 그리고 도교의 전통에서 장수를 상징하는 복숭아는 오현영의 작품에서 디지털 가상화폐인 비트코인으로 되어 있다. 블록체인 기술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비트코인으로 장수의 상징인 복숭아를 대체함으로써 그녀는 모든 가치가 돈으로 평가하는 황금만능주의 시대의 왜곡된 욕망을 풍자하고 있다.

이처럼 오현영의 신작 ‘디지털 십장생도’는 전통과 현대를 관통하는 인간의 욕망을 관조하고, 불로장생을 꿈꾸던 선조들의 순진한 욕망으로부터 돈을 숭배하는 배금주의로 변질된 오늘날 자본주의 시대의 씁쓸한 욕망을 응시하게 한다. 그녀는 현대인의 욕망이 담긴 이러한 이미지들을 유희의 도구로 삼아 자신만의 방식으로 자유롭게 재코드화 함으로써 코드화되기 이전의 아날로그적 낭만을 꿈꾸고 있다.

 

오현영 작가는 또 다른 노트에 이렇게 썼다.

“나의 근작은 동식물의 상징성을 통해 현실에서 이루지 못한 소망을 이루고자 했던 십장도의 전통을 현대적인 조형 언어로 재해석한 것이다. 이것은 행복, 사랑, 부귀, 장수, 영생, 인간과 자연의 조화 등을 꿈꾸고, 고달픈 현실에서 벗어나 행복한 삶을 소망하는 부적과 같은 것이다. 특히 내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태양은 모든 것의 근원이자 희망이고 현재까지 숭배의 대상이 되는 소재다. 십장생을 통해 선조들이 장수를 꿈꾸었다면, 오늘날은 돈에 더 집착하고 있는 듯하다. 그래서 장수를 상징하는 복숭아를 비트코인으로 대체함으로써 오직 돈에만 집착하는 현대인의 욕망을 표현했다. 그리고 QR코드로 구름과 태양을 만들고, 바코드로 자연을 표현하는 방식으로 코드화된 사회를 반영하고, 이를 탈코드화시키고 재코드화 하는 방식으로 현대인의 소망을 담은 것이다.”

김종근 미술평론가는 이렇게 말했다.

새로운 미술의 역사는 언제나 모든 예술가의 창조적이고 실험적인 작가정신에서 출발했다. 이것이 곧 현대미술의 궤적이며 흐름이다. 바로 거기에 진정한 작가들의 존재 가치 그리고 의미가 있다. 이런 도전은 예술가들이 자신의 작업에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신세계를 찾아 나서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그래서 이 끈질긴 창조적인 목마름의 자세야말로 예술가들에게 있어 최고의 덕목이라고 부른다. 오현영 작가의 20여 년 작업에 흐름을 보면 그 미덕에 대한 인상이 더욱 굳건해지고 강렬함을 느낀다. 놀라운 것은 70대를 앞둔 현재에도 오현영 작가가 어쩌면 단 한 순간도 쉬지 않고 작품에 혁신적인 기법과 형식을 추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간 오현영 작가는 디자인에서 출발하여 회화작업으로 오기까지 다양한 표현과 기법의 변화를 시도해 왔다. 2004년 서울과 뉴욕의 첫 개인전을 필두로 작업 활동이 그 서막이다. 당시 작업은 숙련된 석판화 작업으로 내용은 가족과 생활을 모티브로 한 형상적인 이미지의 세계를 보여주었다. 작품들을 보면 그녀의 머릿속에 대가족을 꾸려나가는 생활상들이 그려진다. 그때의 작가 노트에 “일상의 것들에서 벗어나 나라는 존재와 삶. 그녀의 삶 속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생각을 표출하고자 했다”라는 기록이 상황을 잘 말해주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주제 자체가 5남매를 둔 가족 이야기와 아이들의 생활, 그 풍경들을 회화적이며 조형적인 요소로 화면을 짜임새 있게 구성한 작품들이었다.

이후 작가는 2005년부터 영수증을 활용한 작업을 이용하여 화면을 구성하고 조립하는 독특한 구성법을 전개했다. 2011년의 작품전은 그러한 작가의 개인적인 삶의 특성을 엿볼 수 있는 작품들로 원숙하게 변모했다. 이 작업들은 영수증이 나열되어 도시의 건물 풍경을 연출하는 이색적인 실크스크린의 연결 작업이었다. 작가는 이러한 풍경화의 양식에 만족하지 않고 더 새로운 화풍을 찾아 나섰다. 본격적으로 전통적인 산수화를 화폭으로 끌어들여 그만의 신 산수화 화풍을 구축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른바 전통적인 옛것으로 신선하고, 참신한 인상의 산수화 양식을 창출하려는 과감한 기법을 적용하고 있다. 여기서 그 전통적인 모델을 오현영 작가는 조선 시대 후기 진경산수 속에서 그 뿌리를 찾았다. 특히 겸재 정선이나 김홍도가 그렸던 금강산의 이미지를 그만의 필선(筆線)과 구성, 화면의 결합으로 신(新) 산수화 패턴 형식을 만들었다.

이처럼 오현영 작업의 독창성은 금강산이나 거대한 도시의 건물 이미지를 차용하면서 그만의 특유한 산수화 양식을 만들어 펼쳐낸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작가는 이것에 만족하지 않고 문자와 형상, 기호를 붙이듯이 콜라주 작품으로 확장 시켰다. 형태적 이미지는 빌리되 기법으로는 문명사회의 시각적 기호들을 전통 회화에 양념을 친 이른바 퓨전회화인 것이다. 작가가 전통적 산수화풍에 이처럼 현대적 기호와 상징 이미지를 사용하는 바탕에는 유명화가들의 산수를 넘어 문명사회에 대한 그만의 시각적 기록과 해석에 의도가 있음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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