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병훈 여원전인방 대표(대한민국명장 인장공예 1호)

“印章은 人格과 信賴의 함축적 결정체…名匠의 사명감으로 맑은 心性 담아”

 

“인장은 세상에 단 하나뿐인 맞춤 신분증이고, 세상과의 가장 강력한 약속이 담겨 있는 신뢰의 결정체이므로 심성(心性)을 다해 점 하나에도 정성을 다 하고 있다”고 말하는 최병훈(崔炳勳) 여원전인방(如原篆印房) 대표. 대한민국명장 인장공예 1호이기도 한 최 대표와의 일문일답.

▲ 인장(印章)에는 어떤 깊은 뜻이 담겨 있나요.

- 소유자와 동일체(同一體)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인장에는 그 사람의 사회적 신분은 물론 심성(心性)도 담겨 있지요. 따라서 도장을 만들 때는 의뢰인과의 소통이 중요합니다. 충분한 교감을 한 후에야 정확한 분신(分身)이 탄생하는 것입니다.

그동안 수많은 인장을 제작했습니다. 그러나 모두 다릅니다. 단순히 글자만 다른 것이 아니라, 동일인의 것이라 해도 각자가 ‘유일’합니다. 왜냐하면 ‘칼맛’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글자를 새기기 위해 재료에 칼을 댈 때마다 힘의 정도와 손놀림이 다르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그 인장은 바로 ‘그 사람’이고, ‘신뢰(信賴)’인 것입니다.

▲ 어떤 마음으로 글자를 새겨 넣으시는지요.

- 인장은 그 사람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세상에 단 하나뿐인 맞춤 신분증입니다. 손톱만 한 작은 공간에 보통 네 글자로 그 사람을 완전하게 나타내려면 넉 자가 조화롭게 한 문양처럼 되어야 합니다. 따라서 가능하면 그 인장 주인과 많은 대화를 통해 그 사람에게서 받은 느낌, 그리고 저의 심성을 담아 새겨야 최고의 ‘작품’을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 전자체(篆字體)를 고집하는 이유가 있나요.

- 전자체가 제일 오래된 서체이자 새기는 데 가장 적합하기 때문입니다. 그전 갑골문은 서체(書體)라고 보기는 힘들고 춘추전국 시대 발전한 전서, 특히 진나라 시대의 소전체(小篆體)가 인장에 가장 많이 쓰였지요.

소전체는 진시황이 글자를 통일해 확립한 서체로 조형미가 있고, 가장 오래된 글자라는 권위도 갖고 있기 때문이지요. 또 획을 많이 구부려 파는 것을 구첩전(九疊篆)이라고 하는데, 꼭 아홉 번 구부리는 것이 아니라 글자에 따라 횟수를 달리하는 것으로 이는 글자의 간격을 맞추고 그 공간을 메우는 위한 것입니다.

언제부턴가 인장 공예가들이 한글 인장에는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구첩전을 꺼리는 경향이 있어요. 그러나 인문(印文)의 균형미를 위해서라도 한글 전서체나 구첩전을 더 연구할 필요가 있습니다.

 

▲ 2001년에 대한민국명장 인장공예 1호로 선정됐는데 당시 심정이 어떠셨습니까.

- 지나온 세월이 마치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더군요. 한마디로 영광과 사명감이 동시에 다가왔습니다. 영광은 그동안의 역경을 이겨낸 보상인 것 같고, 사명감은 대한민국의 전통 인장공예를 계승·발전시키라는 국가의 준엄한 명령 같기도 했습니다.

▲ 인장공예 분야에 입문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지요.

- 저는 1950년 7월 전북 장수 어느 작은 산골 마을에서 50세인 부친의 늦둥이로 태어났습니다. 부친께서는 제가 여섯 살 때부터 한학(漢學)을 배우라고 서당에 보내셨어요. 그렇게 서당을 다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부친이 돌아가시면서 집안 형편이 어려워져 고향에서 초등학교를 마치고 서울로 올라왔습니다.

책 읽는 것이 즐거웠던 저는 공부를 계속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종로5가에 있던 한국서예학원에 급사로 취업했고 학원 일을 하는 틈틈이 붓글씨 연습을 열심히 했습니다. 이후 고등학교에서 필경사(筆耕士·문서나 책 등에 글씨를 쓰는 일이 직업인 사람)로 근무하며 전각(篆刻·나무, 돌, 금옥 따위에 인장을 새김) 기술을 배우게 됐습니다.

그때는 글씨를 잘 쓰면 필경사로 일할 수 있었는데 중앙여고에서 군대 갈 때까지 학교의 각종 문서나 시험지 등의 등사용 원판 글씨를 썼어요. 그때는 일본말로 ‘가리방’을 긁는다고 했지요. 군에 입대해서도 행정병으로 온종일 철필(鐵筆)을 잡고 등사용 원판 글씨를 썼습니다.

그런데 제대 후 윤전기가 나오는 등 인쇄기술이 발전하면서 필경사라는 직업이 없어져 필경사 시절 어깨너머로 배운 도장업에 관심을 갖고 품격있는 인장공예를 배우기 위해 1976년 한국인장업연합회에서 후배양성을 위한 기술교육 과정에 들어가 3개월의 교육기간 동안 15명의 인장업 선배들에게 특별 교육을 받고 인장공예기능사 1급 자격증을 취득하게 됐고 지금까지 한길을 걷고 있습니다.

▲ 인장의 역사에 대해 말씀해 주십시오.

- 글자가 나오기 전 자신을 상징하는 그림을 새긴 ‘고도형새인(古圖形璽印)’이 있었습니다. 일종의 ‘그림 도장’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다 글자가 나오면서 인장이 되었지요. 고도형새인은 말 타고 활 쏘는 사람, 춤추는 사람, 호랑이를 탄 사람 등을 단순하지만 매우 분명하게 표현된 뛰어난 작품들입니다.

도장 하면 사람들이 막도장이나 인감도장 정도만 생각하는데 역사적으로 따져보면 인류 최초로 문자를 새긴 것이 바로 도장입니다. 신패(信牌) 역할을 하는 도장은 오래전부터 진흙, 나무, 금속 등 다양한 소재로 만든 자신만의 그림 도장을 사용했어요.

고대 인장을 보면 안 나오는 동물이 없을 정도로 문양이 다양해 따라 하기도 어려울 정도입니다. 도장 모양도 자기만의 표식인데 꼭 동그라미여야 할 이유는 없습니다. 법으로 정해진 것도 아닌데 사람들은 으레 기계로 일정하게 깎은 원형 도장만 생각합니다. 사각형이나 ‘ㄴ’자형 등 다양한 모양의 도장도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 우리나라 인장공예 발전을 위해 남다른 노력을 기울인 걸로 정평이 나 있는데 말씀해 주시지요.

제가 32살 때 인장협회 도봉구지부장을 맡았습니다. 당시 회원들의 대부분은 주문받은 도장

을 파주고, 밥 먹고 사는데 만족하는 분위기였습니다. 그래서 ‘5인 연구회’를 만들어 고급 기술을 익히며 실력을 키웠습니다.

국내 유명 인장업소 150여 곳을 돌며 인장 분야 장인들의 솜씨를 비교 분석했고 알뜰살뜰 돈을 모아 중국, 일본, 대만 등 해외를 다니며 인장과 전각에 대한 역사자료와 변천사를 수집했습니다.

이렇게 노력한 결과 대한민국 최초로 1999년 전각 분야 신지식인, 2001년 인장공예 부문 대한민국명장으로 선정됐습니다. 그리고 한양대박물관에서 열린 ‘한국인과 인장’ 특별전에서 작품 50점을 전시하기도 했고 국제미술대상전, 대한미술전람회, 전국인장작품공모전 등 국내외 미술전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었습니다.

▲ 인장공예를 하시면서 뜻깊은 일화(逸話) 하나만 소개해 주시지요.

- 멀리 부산에서 할아버지 한 분이 직접 찾아오셨어요. 액수는 얼마가 되든 최고로 좋은 도장을 새겨달라는 겁니다. 누가 쓸 것이냐고 물었더니 백일을 맞는 손자에게 선물할 거라고 하더군요.

손자가 평생 지닐 수 있는 소중한 선물로 ‘도장’을 주고 싶다는 할아버지의 말을 염두에 두고 나무를 직접 손으로 깎아 정성 들여 다듬어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인장을 받아 들고 크게 기뻐하는 할아버지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도장은 꼭 장롱 깊이 보관했다가 아이가 대학생이 되면 손에 쥐여주라고요. 왜냐하면 인장은 아무 데나 찍으며 노는 장난감이 아니라 귀하게 보관하고 함부로 찍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주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 ‘도장을 찍다’는 어떤 의미를 갖고 있나요.

- 한 단어로 말하면 ‘믿음’입니다. 도장은 서약할 때, 거래할 때, 자신을 증명할 때 찍게 되지요. 이 행위는 곧 ‘신분 증명’과 ‘약속’의 엄숙한 표현입니다. 바로 상호 믿음인 것입니다.

그래서 ‘도장’은 단순한 ‘이름 새기기’가 절대 아닙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그의 운명이 달려있는 것이기 때문에 함부로 ‘찍어내면’ 안되는 것입니다. 주문자와 제작자의 심통(心通)이 중요하고 이를 바탕으로 만들어질 때 또 하나의 ‘역사’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 명장님 인장 작품의 모양은 모두 제각각인데, 이유가 있나요.

- 재료 고유의 특성을 살려 일일이 손으로 다듬어 만들기 때문입니다. 나무 같은 경우에는 대패질은 물론 니스칠도 하지 않고 호두 기름을 짜다가 손으로 일일이 인재(印材)에 문질러 바릅니다. 인재에 니스나 페인트를 칠하면 나중에 칠이 벗겨지면서 도장이 깨지기 때문입니다.

뒤틀린 나무는 뒤틀린 대로 한쪽이 썩었으면 썩은 대로 사용합니다. 생긴 그대로를 살려 소박하게 만든 인장이 참 멋을 발휘합니다. 같은 사각 도장이라도 다 다릅니다. 틀에 맞춘 사각형도 좋지만, 한쪽 귀퉁이가 깨진 사각형도 그만의 멋이 있죠.

▲ ‘인감(印鑑)’에 대한 견해를 듣고 싶습니다.

- 중요한 문서에 찍는 인감은 사용자를 나타내는 상징물이자 그 사람의 인품을 대변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좋은 인감은 도장을 새기는 기능인과 의뢰인이 서로 마음이 통해야만 완성될 수 있습니다. 기능인이 아무리 잘 만들어도 사용자의 마음에 닿지 않았다면 ‘잘못’입니다. 따라서 기능인과 의뢰인이 소통함으로써 사용자 고유의 심성을 상징화한 문양을 새겨 넣을 때 좋은 인장이 되는 거고 진짜 ‘복도장’이 되는 겁니다.

▲ 향후 계획은 무엇인지요.

- 우리나라 전통 인장공예의 명맥을 대대로 이어갈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동안 배운 기술과 모아 놓은 자료들을 후진양성에 모두 바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시대별 인장의 변천사를 일목요연(一目瞭然)하게 보여줄 수 있는 인장공예 전시관을 마련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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