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도 대한민국명장

세계 屈指의 발레단 專屬 衣裳 담당…“무대의상은 패션의 綜合藝術”

 

일명 발레복(服)은 ‘살아있는 의상(衣裳)’으로 불린다. 무대(舞臺) 위를 휘저으며 동작(動作)하는 ‘춤꾼’과 동시에 호흡(呼吸)해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발레복 제작은 ‘그 사람’에만 맞춰 처음부터 끝까지 수작업(手作業)으로 한 땀 한 땀 정교(精巧)해야 해서 그 어떤 의류(衣類)보다 난도(難度)가 가장 높다는 평가다. 이러한 ‘작품’을 50년이 훌쩍 넘게 만들어 온 이기도(李基道) 대한민국명장과 인터뷰를 진행했다.

▲ ‘패션디자인’ 명장 제1호인데, 입문하게 된 동기는 무엇인지요.

2003년 대한민국명장으로 선정되는 영광을 안았습니다. 당시 양복 부문에서는 명장이 몇 명이 있었지만, 패션디자인 부문에서 최초로 알고 있습니다. 젊었을 때부터 이 분야에 관심이 있었고 군 전역(轉役) 후에도 이 일을 계속 했습니다.

그러다 30대 중반 때 뜻하지 않게 국립극장에서 발레공연을 관람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 무용수(舞踊手)의 몸짓 못지않게 의상이 작품의 감동(感動)을 전하는데 빼놓을 수 없는 요소(要素)라는 데 매력을 느꼈고, 바로 발레 의상에 빠져든 걸 보면 운명인 것 같습니다.

▲ 초창기에는 어려움이 많았겠습니다.

당시만 해도 우리나라에 발레나 오페라 뮤지컬을 즐기는 인구가 그리 많지 않은 관계로 의상 산업이 발달하지는 못한 시대였습니다. 무대의상에 관한 한 황무지(荒蕪地)나 다름없던 때라 배울 곳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국립극장에 전속(專屬)으로 무대의상을 납품하는 동대문 인근 한 의상실에 들어가 실기(實技)부터 착실히 익혔습니다.

항상 한국 사람의 체형에 잘 맞는 무대의상을 만들 수 있을까 고민을 하며 외국 무대의상을 하나하나 뜯어보며 밤새 연구를 거듭했습니다. 일본과 러시아, 미국 뉴욕 등 공연예술 선진국에도 자비(自費)를 들여 여러 차례 다녔습니다. 그러다 보니 우리나라 배우들의 몸매와 움직임에 맞는 의상을 만들 수 있게 되었고, 우리 의상을 입고 공연(共演)한 배우의 극찬(極讚)이 이어지면서 국내외 유명 공연단과 함께 일할 수 있었습니다.

▲ 무대의상만의 매력은 무엇인가요.

- 평생 무대의상을 만들고 있지만 늘 새롭습니다. 창작(創作) 의상이라서 같은 작품이라도 감독마다 주문(注文)이 다를 뿐 아니라 안무자(按舞者)의 얼굴 형태와 몸매, 배역(配役) 등과 잘 어울리게 만들어야 하기에 알면 알수록 무대의상이 어렵고도 신비(神祕)롭습니다.

과거 유니버셜발레단이 2002년 월드컵 기념으로 ‘로미오와 줄리엣’을 공연할 당시 우리가 제작한 의상을 본 러시아 출신 올레그 비노그라도프 예술감독이 “이만큼의 수준이면 작품을 할 마음이 생긴다”는 찬사(讚辭)를 들었을 때는 그야말로 하늘을 나는 기분이었습니다. 이때 유니버셜발레단 문훈숙 단장으로부터 감사패를 받기도 했습니다.

▲ 1988년 3월 ‘솔(soul) 패션’을 창업하셨습니다.

- ‘작품’에 혼(魂)을 심는 자세로 임한다는 뜻에서 회사 이름을 영어의 ‘소울’에서 인용(引用)했습니다. 무대의상은 특별한 설비 없이 모두 수작업 형태로 진행되기 때문에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따라서 옷에 넣는 장식(粧飾)을 모두 손으로 직접 만들고, 날염(捺染)도 마찬가지입니다.

무대의상의 특징은 무대에서 발표하는 작품의 작품성과 안무가 의상과 어울려 3가지가 조화를 이루어야 하나의 완성된 작품을 연출하기 때문에 무대의상도 무대 작품과 같은 중요성을 인정받고 있습니다. 따라서 무대의상을 만드는 사람은 경제적인 이윤(利潤)보다는 작품을 창작한다는 것에 더 가치(價値)를 두고 일해야 오래 할 수 있습니다.

▲ 고객과의 관계에서 아쉬운 점은 없는지요.

- 러시아 발레단의 경우 작품 발표 때 입는 의상을 1년 전부터 수작업을 통해 차근차근 만들어 가는 게 일반적인데 우리나라는 너무 시간에 쫓기며 무대의상을 만드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뉴욕 시티발레단 뿐만 아니라 영국 오페라극장 등 외국에서는 작품 올리기 1년 전부터 무대의상을 준비합니다.

그래도 지금은 우리나라도 약 3개월 전부터 작업을 시작하는 시스템이 정착(定着)돼 참 다행이라는 생각입니다. 시간적 여유를 두고 작품을 만들어야 공연의 내용을 더욱 부각(浮刻)시킬 수 있을 겁니다.

▲ 그동안 국내의 세계적인 발레단과 많은 공연을 하셨습니다.

- 국립극장, 유니버셜발레단, 서울시티발레단, 조승미발레단 등에서 작품활동을 꾸준히 펼쳐왔습니다. 그동안 이들 발레단에서 공연한 ‘호두까기 인형’, ‘백조의 호수’, ‘로미오와 줄리엣’ 등 세기(世紀)를 뛰어넘는 발레와 오페라 대작(大作)들은 대부분 우리 ‘솔’의 손을 거쳐 무대에 올랐습니다. 86아시안게임 때에는 개·폐회식 의상은 물론 북춤·장고춤 등 축하공연에도 참여했으며, 88서울올림픽에서는 그리스 의상을 제작해 해외 전문가들로부터 발군(拔群)의 실력을 인정받기도 했습니다.

특히 유니버셜발레단 전속 무대의상 제작자로서 이 발레단의 해외 공연에 동행(同行)하며 선진기술을 배울 수 있었으며 또한 우리 문화를 세계에 알리는 데도 일조(一助)했다는 자부심이 있습니다.

▲ 많은 국내 대학교수들이 논문을 쓰기 위해서는 명장님의 자료가 반드시 필요했다고 하던데요.

- 70~80년대만 하더라도 무대의상에 대한 학문적 정리가 제대로 돼 있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현장에서 작업하는 경험과 자료가 매우 중요했습니다. 다양한 디자인의 작업 과정을 일일이 비디오테이프에 녹화해 놓고 활용(活用)하곤 했는데 이 자료는 대학교수들이 관련 논문을 쓸 때 매우 중요한 증거 자료가 되기도 했습니다. 물론 예술계 중·고교 교사들에게도 매우 유익(有益)했다는 소식을 많이 듣곤 했습니다.

▲ 인력난 때문에 고민이 많으시다고 들었습니다.

- 그렇습니다. 공연예술이 점차 대중화(大衆化)되는 추세(趨勢)인 만큼 공연 횟수도 늘어 수요가 증가하고 있는데 정작 의상을 만들 인력은 떠나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작업이 섬세(纖細)하고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이라 그렇지 않나 생각됩니다. 그래도 명맥(命脈)은 유지(維持)해 나가야 하니 기업에만 맡기기보다 국가산업(國家産業) 차원에서의 대책(對策)이 필요(必要)하다는 생각입니다.

▲ 향후 계획에 대해 말씀해 주십시오.

- 그동안 쌓은 기술을 고스란히 전해 줄 ‘후계자(後繼者)’를 정하는 게 가장 중요(重要)한 과제(課題)입니다. 아직 눈에 들어오는 인물은 없는데 가능하면 빨리 정해 본격적인 후계 수업을 할 예정입니다. 그리고 무대의상 기술인의 저변(底邊) 확대를 위한 후진양성 프로그램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서 우리나라 무대의상 산업의 입지(立地)를 더욱 공고(鞏固)히 할 계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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