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인선 (사)경기글로벌센터 대표

경북 예천 두메산골 어린 지게꾼이 ‘이민정책 박사’가 되다.

 

2024년 2월 상명대학교 대학원 졸업식에서 ‘한국 내 재정착 난민의 한국사회 적응 방안 연구’란 제목의 특별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한 (사)경기글로벌센터 송인선 대표. 한국학과에서 한국이민통합을 전공한 송 박사는 경기도 부천에서 17년째 국내 거주 다문화인의 원만한 한국 생활 정착은 물론 각종 피해사례를 풀어주는 ‘만능 해결사’로 통한다.

송 박사는 경상북도 예천군 보문면 오신동(오류골) 학가산 끝자락 두메산골에서 7남매 중 여섯째로 태어났다. 그런데 다섯 살 때 부친이 중병(重病)으로 대구 동산병원에 입원해 5년 동안 치료를 받던 중 49세에 돌아가셨다고 한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아버지를 여윈 송 박사는 아버지의 오랜 입원 치료로 인해 얼마 되지 않던 논밭을 모두 팔게 되면서 가세(家勢)가 완전히 기울어 또래 나이의 조카들과 함께 열 명이 넘는 대식구가 하루 한두 끼 먹는 생존 전쟁에 돌입한 상황이 되고 말았다.

이러한 가정형편 때문에 약 12Km 떨어진 거리에 있는 예천 읍내(邑內) 중학교 입학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고 큰형수가 가정(家庭) 경제권을 쥐고 있어 송 박사는 눈칫밥을 먹으면서 매일 같이 지게를 지고 쇠풀을 하러 다녀야만 했으며, 산에 가서 땔감을 구하든지 아니면 고개 넘어 임차(賃借)한 논밭에 거름을 나르거나 하면서 단 하루도 ‘지게’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당시 송 박사가 가장 수치(羞恥)스러워했던 것은 읍내 중학교에 다니던 친구들이 주말이 되면 버스를 타고 마을 어귀에 내려 동네로 들어오는 길목에서 마주치는 것이었다. 송 박사는 지게를 지고 있는 상태로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다고 토로(吐露)했다.

특히 친구들이 검은색 교복에 모자와 가방을 든 모습이 너무나 부러웠다. 그렇게 17살 때까지 지게를 지며 고향 산촌에서 살던 중 셋째 형이 예비 셋째 형수와 함께 명절을 맞아 고향 집에 인사하러 왔다가 송 박사를 보고 곧바로 같이 상경(上京)하게 됐다.

서울로 올라 온 송 박사는 이곳저곳 작은 공장을 전전(轉傳)하며 노동을 하다가 1979년 군에 입대하게 되었고 군 복무를 마친 후에는 자동차부품 가게에서 강한 책임감으로 열심히 일했다. 그런데 자신도 모르게 심한 스트레스로 인하여 공황장애(恐慌障礙)라는 진단을 받고 4년 동안 지옥 같은 삶을 살게 되었다.

그러나 평소 늘 성실한 직원으로 인정받았던 송 박사는 자동차부품 가게 사장의 재취업 요청을 받고 다시 일을 시작해 3년 후인 1987년 그 자동차부품 가게를 인수하기에 이르렀고 1994년까지 성공적으로 사업을 이뤄냈다. 그런데 송 박사를 서울로 데려온 셋째 형수에게 수천만 원의 곗돈을 사기당하면서 사업장은 자금 압박을 받기 시작했고 그로 인해 높은 은행 이자를 감당할 수가 없어 1996년에 부도(不渡)를 맞게 됐다.

이후 송 박사는 4년을 방황하다가 2001년 사단법인 실로암세계선교회 사무국장으로 일을 하면서 미얀마, 베트남, 캄보디아, 태국 등으로 의료봉사를 다녔다. 이때 현지에서 한국을 다녀온 이주노동자들을 만나 대화를 나누면서 국내 거주 이민자들을 도와야겠다는 결심(決心)을 하게 됐다.

그 이유에 대해 송 박사는 “국내 이주노동자가 우리나라에서 마음에 상처를 받고 자기 나라로 떠난다면 그 좋지 않은 경험이 주변인들에게 고스란히 전달돼 한국에 대한 인식이 나빠질 것”이라며 “그 결과 외국에서 생활하는 한국인의 안전은 물론 각국으로 수출한 한국제품에 대한 불신과 불매운동(不買運動)이 벌어질 것을 생각하니 잠이 오질 않았다”고 말했다.

이에 송 박사는 2008년 비영리(非營利) 사단법인 경기글로벌센터를 설립하고 국내 거주 이민자(移民者) 단 한 사람이라도 마음에 상처받지 않고 안정된 생활과 정착을 지원하는 공익법인으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특히 사회복지 사각지대 이민자 고충(苦衷) 상담 현장 동행(同行) 지원으로 이민자들의 의료 및 부당한 노동과 인권은 물론 출입국 관련 행정민원 등 각종 법률지원으로 이민자들의 권리와 인권을 보호하고 건강과 생명을 구하는 사업에 전력투구(全力投球)하고 있다.

하지만 이민자들의 권리를 찾아주기 위해 이민자 관련 공공기관(公共機關)을 방문할 때면 언제나 큰소리를 치고 소란스러워서 마음이 불편하다고 한다.

이에 송 박사는 “법과 제도가 잘못되어 있는데 현장의 공무원들과 아무리 논쟁(論爭)을 해도 바뀔 것이 없다는 것을 인지하고 뒤늦게 공부해야겠다는 다짐을 했다”며 “그래서 50대 초반에 시작해 고입·대입 검정고시에 합격한 후 숭실사이버대학교 사회복지학과를 졸업하고 인하대학교 정책대학원 이민·다문화정책학과를 졸업하고 곧이어 상명대학교 일반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고 말했다.

송 박사는 학업과 함께 비영리 기관단체를 동시에 운영하면서 2011년부터는 법무부 사회통합프로그램 거점(據點)운영기관 지정과 이주 배경 중도입국(中途入國) 청소년 방과 후 학습센터 운영하고 있는데 이는 이민자들에게 큰 도움을 줄 수 있는 이민자 접촉점의 통로가 되고 있다.

특히 2015년부터는 미얀마 카렌족 재정착(再定着) 난민 한국 사회적응 방안에 관한 모니터링을 하게 되면서 사업의 영역이 점점 확대되어 갔지만, 오히려 비영리 사단법인의 운영비 재정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어려워 지난해 12월에 센터 문을 닫으려는 생각도 했다고 한다.

그러나 아직 문을 닫을만한 때가 아니었는지 25세 타지키스탄 청년 사업가를 통하여 1천만 원을 기부(寄附)받게 되면서 처음 이 일을 시작할 때의 초심(初心)으로 돌아가 비영리 사단법인을 운영하고 있다.

송 박사는 “2024년이 모든 것의 시작점”이라며 “2018년에 ‘한국의 이주민 사회’ 출판에 이어 이민정책에 관한 학술 활동을 더욱 활발히 하여 잘못된 이민자 관련 법과 제도를 개선하고 향후 이민자 500만 명 시대를 준비하는 법과 제도를 구축하는 일에 전념하겠다”고 역설(力說)했다.

현재 송 박사는 (사)경기글로벌센터 대표와 법무부 이민정책 위원으로서 인천지방 인천출입국외국인청 권익증진 협의회 위원과 이민자 통합시민교육 강사, 법무부 사회통합프로그램 5단계 한국 사회이해 교육 강사 등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공공기관 및 대학에서 이민자 관련 포럼과 특강(特講)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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