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 예방은 주변인의 관심과 의학적 진료와 치료를 통해서 상당한 효과를 거둘 수 있습니다.” 한국자살예방협회 안용민 회장의 일성(一聲)이다.

 

최근 통계청에서 2012년도 사망원인 통계를 발표했다. 이번 발표에서 주목받는 부분은 6년 만에 자살관련 항목의 수치가 모두 하락 반전했다는 것이다. 인구 10만명당 자살자 수가 2011년 통계에서 31.7명이었던 것이 2012년에는28.1명으로 감소한 것이다. 더욱이 이러한 자살률의 감소는 비단 특정 성별이나 연령군에국한된 것이 아니라 모든 연령군의 남녀 결과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난 현상이었다.

 

그 동안 우리나라는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를2004년 이후 7년째 지키고(?) 있다. 2000년에 인구 10만 명당13.6명이던 자살률이 10년 만인 2010년 33.5명으로 크게 늘었다.

 

그런데 2012년에 28.1명으로 감소한 것이다. 물론 헝가리 23.3명, 일본 21.2명, 미국 12.0명, 영국 6.7명, 독일 10.8명, 프랑스 16.2명, 스웨덴 11.7명, 그리스 2.2명보다는 아직도 상당히 많은 숫자다.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교수이기도 한 안 회장은 “여러 가지 사망의 원인 중에서 자살은 분명히 예방할 수 있는 몇 안 되는문제”라며 “2011년 제정된 ‘자살예방 및 생명존중문화 조성을 위한 법률’이 이러한 변화의 초석이된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가족중심 사회붕괴가 자살률 상승의 원인”

 

법제화를 통한다양한 자살 예방활동의 근거가 마련됨에 따라 중앙 및 지역 자살예방센터가 설립되고, 게이트키퍼와 같은관련 인력들이 양성되며 매스미디어가 기사나 논평 등에서 자살에 관한 내용을 다룰 경우 가이드라인에 따라 기술할 수 있도록 권고하는 등의 활동이보다 탄력을 받아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안 회장은 “자살률 감소에 있어 가장 두드러진 것은 ‘그라목손’이라는 제초제를 이용한 자살이 급감했다는 점”이라며 “그라목손은 워낙 맹독성인 제초제로 충동적인 흥분으로 음독한 후에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벌어져 매년 2천여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희생됐다”고 밝혔다.

 

그 동안 한국자살예방협회에서는그라목손의 제조, 유통, 판매를 중단시키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왔으며, 2012년 이 물질은 더 이상 우리나라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그러나여전히 우리 주변에는 자살로 이어질 수 있는 위험한 물질들이 무신경하게 취급되고 있어 한국자살예방협회에서는 생명보험사회공헌재단과 함께 농약관리보관함배포 및 농약폐용기수거함 설치 사업을 지속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의자살률은 한 두 해 감소하는 것만으로 만족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닌 극단적으로 심각한 상태며 체계적인 예방사업을 전국적·지속적으로 수행하는 것만으로 줄일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우울증 환자에조언하지 말고 그냥 들어줘라"

 

그렇다면 자살을생각하는 사람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까. 안 회장은 “주변에우울증을 앓거나 삶을 힘들어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렇게 생각해라, 저렇게이해해라’는 식으로 조언해선 안 된다. 최고의 조언은 그들의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자살을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조언은 절대금물’이라고 말했다. 자살을 시도하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두 가지로 ‘나는 더 이상 비전이없다’ ‘세상엔 나 혼자뿐이다’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런 사람들에게는 무언가를 가르치려거나 나무라는 것은 상황을 악화시킬 뿐이라고 귀뜸했다.

 

안 회장은 우리나라의자살률이 높은 원인 중 하나로 ‘전통적 가족중심사회’의 붕괴를들었다. 가족이라는 든든한 지지기반이 있어야 세상살이의 어려움을 헤쳐 나갈 수 있는데 가장 기본적인방벽(防壁)이 무너진 현실에 대한 적절한 대응책이 절대적으로필요하다는 것이다.

 

결국 자살예방의해결책은 ‘행복지수(BLI·Better Life Index)’에서찾아야 한다는 분석이 많다. ‘정신적 문제’라는 것도 개인의삶에 대한 만족도와 관계가 깊다. 그런데 삶의 질을 나타내는 행복지수에서 한국은 OECD 34개국 중 32위라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안 회장은 “우리나라는 선진국화와 동시에 기계문명이 급속도로 바뀌고있지만 정신적 적응이나 가치관이 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그럴수록 사람은 더 외로워진다”고 분석했다.

 

특히 노인 자살률이전체 평균의 2.4배라는 점이 큰 문제다. 2010년 자살자 1만5,556명 중28.1%(4,378명)가 65세 이상 노인이었다. 노인 자살률은 10만 명당81.9명으로 전체 평균(33.5명)의 2.6배나 된다. 특히 80세이상의 자살자 수는 1,119명으로 10대 청소년(353명)의 3배에 이르렀다.

 

 

‘행복지수’높이는데 범국가적으로 노력해야 자살률 감소

 

이는 노인 자살률이전체 자살률보다 낮아지는 세계적 추세에도 역행하는 통계다. 통계청에 따르면 노인 자살의 주요 원인은경제적 빈곤, 신체적 질병, 사회적 고립 등으로 나타났다. 노인들의 경우 자살 성공률 31.8%는 다른 연령층보다 4배 정도 높은 것이다. 음독이나 투신 등 그만큼 극단적이고 치명적인방법을 택한다는 것이다. 통계청의 자료를 보면 노인 자살자의 56%가농약을 자살 도구로 사용한다.

 

안 회장은 “노인 자살률이 다른 연령대에 비해 높지만 이들에 대한 사회적 관심은 많이 부족하다. 또 노인들은 자살을 결심하고도 겉으로 잘 드러내지 않을 때가 많은 데다 가족들이 주위의 시선을 우려해 일반사고사로 치부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고 말했다.

 

안 회장은 자살은분명히 예방할 수 있는 ‘질병’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국민의 관심과 정부의 지원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일본은 1년에 3천억원의 예산을 투입해 자살률을 급격히 낮추고 있으나 우리나라는 1년에 30억여원으로 세계 1위의자살문제를 해결하려 하고 있는 것이다.

 

안 회장은 “일본은 지방자치단체의 정신건강센터를 통해 우울증 환자나 자살 시도자를 집중 관리해 자살자를 40%까지 줄였다”며 “우리나라도지역사회를 중심으로 우울증을 치밀하게 관리하고 정신질환에 대한 치료를 공공기관·회사 등에서 감기 치료처럼보는 인식 전환이 절실하다”고 역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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