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봉사활동 펼친 부천의 女傑

 

만남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김 실장은 그 관계 자체를 귀하게 여기고 ‘의리’로 똘똘 뭉친 여걸이라는 평가를 주위에서 하고 있다.

그는 한번 옳다고 생각하면 거침없이 밀고 나가는 추진력도 대단하다고 한다. 세상을 살면서 자기 일 하나 제대로 하기도 벅차 하는 사람이 많은데 다양한 사회활동을 깔끔하게 처리하는 인물이 있다. 그것도 남을 위한 봉사활동만 30여년을 꾸준히 해 온 것이다.

그 주인공은 바로 김동희 하나한방병원 고객사랑실 실장. 김 실장은 1975년 결혼과 동시에 부천에 뿌리를 내리고 지금에 이르기까지 지역봉사활동에는 빠지지 않고 적극적으로 동참해 주위로부터 칭송이 자자하다.

김 실장은 “당시 부천은 그야말로 시골 그 자체였다”며 “처음에는 내가 살고 있는 주변 환경정리부터 시작해 지역 어른신을 도와주면서 삶의 내용이 바뀌게 되었다”고 말했다. 비포장도로가 대부분이었던 그 당시 비만 오면 진창길이 되어 통행에 상당한 불편을 겪는 현실을 보고 보도블럭을 깔고, 공동우물을 파 주민들이 공동체 생활의 참의미를 되새기도록 하기도 했다.

그는 새마을운동 사회정화운동 바르게살기운동 등 제도권 사회운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해 95년에는 부천여성단체 회장이 되기도 했다. 회장이 된 것은 그야말로 타의(他意)에 의해서란다.

충남 청양 출신인 김 실장은 남에게 베푸는게 가풍(家風)으로 굳어진 집안에서 성장했다. 그의 고향집에는 열녀문이 세워져 있을 정도로 올곧은 집안으로 정평이 나 있다. 김 실장의 사회활동을 적극적으로 후원해 주고 있는 남편 정대순 씨 집안 역시 효자문이 세워져 있다하니 매우 잘 어울리는 부부라는 생각이 든다.

 

애정어린 봉사가 참다운 봉사

 

김 실장에게 봉사의 참의미에 대해 질문했다. 그는 “금전으로만 무엇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라며 “진정 마음이 담긴 봉사가 진정한 봉사다. 상대방의 입장을 이해하고 그들의 아픔을 어루만져 줄 때 봉사의 아름다운 꽃을 피울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 실장에게 여러 가지 많은 사회봉사활동을 하는데 가정일은 제대로 챙기고 있느냐는 어리석은 질문도 해 보았다. 이에 대해 그는 “자신의 가정일은 소홀히 하면서 밖에 나와 아무리 많은 일을 한다해도 그것은 위선일 뿐”이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이렇게 봉사활동에 여념이 없는 가운데도 김 실장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경우가 있단다. 그것은 바로 주위에서 진실을 왜곡하고 험담할 때란다. 그러나 김 실장은 스스로에게 당당함으로 일일이 대응하지 않고 무시해 버린다.

김 실장은 ‘발 넓기’로 유명하다. 부천에서 활동 좀 한다는 사람들은 김 실장을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다. 그래서 정치권으로부터의 유혹도 대단하다. 그러나 그는 이같은 제의를 단호히 거부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갈 길이 다르기 때문이다.

김 실장은 특히 노인문제에 관심이 많다. 그의 지론(至論)은 ‘젊었을 때는 험하게 살았어도 갈 때는 편하게 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사회복지 공부와 호스피스 공부를 별도로 하고 있다.

 

노인복지시설 마련하고파

 

만남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김 실장은 그 관계 자체를 귀하게 여기고 ‘의리’로 똘똘 뭉친 여걸이라는 평가를 주위에서 하고 있다. 그는 한번 옳다고 생각하면 거침없이 밀고 나가는 추진력도 대단하다고 한다.

김 실장이 병원에서 일하는 이유도 몸과 마음이 아픈 사람들과 그 고통을 함께 나누고 싶어서란다. “사람은 더불어 사는 것이고 서로 지탱해 주는 것”이라고 말하는 김 실장은 그 동안 대통령 표창, 장관 표창, 도지사 표창, 시장 표창 등 수 많은 상을 받았다.

김 실장은 하루하루가 행복하다고 노래한다. 자신이 편해서가 아니라 남에게 편한 사랑을 전한다는 그 자체에서 최고의 행복을 느낄 수 있단다. 그래서 그의 모습은 아름다움 그 자체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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