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만남

 

우리들 인생의전 과정을  살펴보면 만남이라는인연이 매우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누구를 언제 어떠한 이유로 만났느냐에 따라자신의 일생에 큰 영향을 미칠 수가 있다. 그 만남이 자신의 인생길에 긍정적인 요인이 될 수도 있고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도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보면 내가 오한동(吳漢東) 총장을 만나게 된 것은 나의 인생길에서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고할 수 있다.

 

내가 대학에서정년퇴직을 한지 10년이 되어가고 있지만 아직도 지적재산권법과 관련하여  중국과 계속적인 관계를 유지하면서 중국의많은 지적재산권법 학자들과 교류할 수 있게 된 것은 오한동 총장과의 만남이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이러한 의미에서 보면 나에게 있어서는 오 총장과의 만남이 하나의 행운이었다. 나는 현재동국대학교 명예교수이면서 (사)한중지적재산권학회의 회장을맡고 있다. 

 

 

오 총장을 만나게된 과정

 

 

△ 동아시아 법철학심포지엄

 

한·중·일 3개국의 법철학교수가중심이 되어 세 나라를 순회하며 개최되고 있었던 심포지엄이 2004년도에는 일본 북해도대학에서 가지게되었다. 그런데 나는 전공이 법철학이 아니었지만 이때의 심포지엄에는 지재권법도 포함돼 지재법 분야에나도 참석하게 되었는데, 중남정법대의 조신명 교수와 호개충 교수 등이 참석하였다. 그러나 사실 이때까지만 하여도 중국이라고 하면 북경이나 상해만을 생각하였지 우한은 어디에 있는가 알지도 못하였다.

 

중국에서 열리는세미나에 처음으로 내가 참석한 것은 2002년 고려학회의 세미나였다.이 세미나에는 북한에서도 많은 교수들이 참석하였기 때문에 세미나 기간 동안 북한 교수들과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그 후에도 북경이나 상해에서 열리는 세미나에만 참석하였다. 이와같은 나의 잘못된 생각은 얼마가지 않아서 깨지게 된다.

 

2004년 4월 중국 충칭에 소재하는 서남정법대에서 한중법학회(회장 손성 교수, 동국대학교 법과대학)가 있었기 때문에 한국의 여러 교수들과 같이참석하게 되었다. 이때 나는 충칭을 처음으로 방문한 것으로 충칭직할시의 인구가 시내에만 3천5백만 명이고 변두리까지 합치면5천만이라고 하는, 인구수를 보면 우리나라와 같다는 사실이 믿어지지가 않았다. 그리고 서남정법대의 법학과의 한 학년의 학생수가 5천명이라는 설명을듣고 벌어진 입이 닫혀지지  않았다.

 

이때에 처음으로사천요리의 매운 맛을 맛볼 수 있었다. 충칭은 중국에서 가장 더운 곳 중의 하나인데 그래서 더위에 이겨내기위하여 땀을 흘리며, 매운 음식을 먹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이열치열(以熱治熱)’의 요법이 아닌가 생각된다. 세미나가 끝날 때 쯤 서남정법대 지식재산연구소로부터 5월에 열리는서남정법대의 지재권 연구소의 세미나에 참석하여 달라는 초청을 받고 나는 그 자리에서 참석하겠다고 약속하고 한국으로  돌아와서 다시 중국비자를 신청하는 등 준비를하여 5월에 충칭을 방문하게 되고, 여기에서 앞서 북해도대학의 동아시아법철학심포지엄에서 만났던 중남정법대의 조신명 교수와 호개충 교수를 다시 만나게 되고 이들로부터2006년 5월13일에 열리는 중남정법대 지재권연구소에서주최하는 세미나에 참석하여 달라는 초청을 받게 되었다. 그래서 중국 우한은 2006년부터 지금까지 매년 한 두 번씩 세미나에 빠지질 안고 참석해 오고 있다. 여기에서 오한동 총장을 만나게 된 것이다.

 

△ 지식산권연구중심(CENTER FOR STUDIES OF INTELLECTUAL PROPERTY RIGHTS : CSIPR)

 

CSIPR은 원래는 1988년에 설립된 중남정법학원 지식산권교학(敎學)과연구센터로 출발하였으나, 2000년에 명칭을 ‘중남재경정법대학지식산권연구센터(이하 연구센터로 한다)’로 변경하였다. 이 연구센터는 중국에서 처음으로 지식산권에 관하여 교학과 연구센터로 설립된 것이다. 2004년 11월26일교육부 인문사회과학중점연구기지로, 2007년에는 우한중재위원회 지식산권중재원 위탁센터 등, 외에 더 많은 역할의 업무를 수행하고 있으나 지면관계상 생략한다.

 

연구센터는 주임이모든 책임을 부담하고 있다. 여기에서의 주임은 우리나라에서는 연구소 소장이라고 이해하면 될 것이다. 그런데 연구센터의 주임은  세계적으로 지식재산권법의 저명한 학자인 오한동 총장이 맡고 있다. 사실 연구센터는 오한동총장이 소장으로 있기 때문에 중국에서 첫째를 달리는 연구소가 되었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닐것이다.  

 

연구센터가 매년 4월이면 개최하는 세미나의 명칭을 ‘지식산권 남호포럼’이라고 부르고 있다. 이렇게 명칭을 붙인 이유는 물어보지는 않았지만내 생각으로는, 우한은 도시가 호숫가에 자리를 잡았는지, 아니면호수가 도시가에 자리를 잡았는지. 하여튼 우한시는 동호, 서호, 남호 등 호수가 시내와 서로 어우러져 있고 여기에 연화가 가득하여 연화가 필 때면 마치 도시가 꽃 밭 속에있는 듯하다. 그래서 우한에 있는 식당에 가면 연뿌리, 연잎, 연자 등 연(蓮)으로만든 반찬이나 음식이 많이 나온다. 중남정법대는 남호와 서로 이웃하여 자리 잡고 있으면서 도시의 아름다움을자랑하고 있다.  

 

그런데 중국의연구소의 조직이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예컨대 연구소에는 학술위원회가 있는데 학술위원회의 주임으로중국인민대의 곽수강 교수가 맡고 있으며, 오한동 총장은 학술위원회 부주임직을 맡고 있다.

 

또한 겸직연구원(Research Fellow)제도가 있는데, 미국의 Peter K. Yu 교수, 일본 북해도 대학의 田村善之 교수 등과같이 나도 겸직 연구원으로 되어 있다.

 

 

△ 한중지적재산권학회

 

2007년 말에 문화체육관광부장관의설립허가를 받은 사단법인이다. 동 법인은 매년 중국에서 교수 등 전문가를 초청하여 세미나를 열고 있다. 내가 현재 회장을 맡고 있다.

 

   

△ 한·중·일 3개국 순회포럼

 

한·중·일 3개국 포럼을 만들다. 2011년 남호포럼에서 만난 우한동 총장, 田村善之 교수 그리고나 셋이서 합의 한 것은 한·중·일을 순회하며 세미나를 하기로결정하고, 발표자는 각국이 5명 이내에서 추천하고 이들에대해서는 세미나주최국에 도착하여 세미나를 마치고 귀국할 때까지의 호텔 비용 등 모든 비용은 주최국에서 부담하는 것을 조건으로 하였다.

 

제1차 세미나는 어느 나라가 먼저 할 것인가를 논의하는 중에 ‘매도 먼저맞는 놈이 났다’는 속담이 떠올라 한국에서 먼저 하겠다고 하였더니, 한국에서그렇게 할 능력이 있는가에 관하여 걱정을 하는 것 같았다. 그렇지만 나는 우리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저작권위원의전폭적인 지원이 있을 것으로 믿고 있었다. 왜냐하면 그 당시 문화체육관광부의 담당 국장인 임원선 박사는저작권법으로 법학박사학위를 취득할 정도로 저작권법에 관하여 국내적으로는 물론이고 국제적으로도 전문가로서 인정을 받고 있었고, 또한 저작권위원회의 유병한 위원장도 저작권법의 전문가로서 국제적 감각이 뛰어난 분으로서 전폭적인 지원이 있을것으로  예상하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만일여의치 않으면 내가 개인적으로 비용부담을 해서라도 세미나를 진행하겠다고 마음속에 다짐하고, 중국에서귀국하자마자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저작권위원회의 관계자를 만나서 논의한 결과 지원하겠다는 결론을 이끌어 내었다.        

 

우리는 이번한 중일 세미나의 초점을 한국의 전통문화를 알리는데 초점을 맞추기로 하고, 세미나가 끝난 후 문화탐방코스를어디로 할 것인가에 관하여 백담사에서 하루 밤 템플스테이를 하루 하고 나서 낙산에 가서 바다 구경을 하면서 쉬도록 하는 스케줄을 세웠다.

 

그래서 서울에서하루 동안 세미나를 마치고 다음날 중국과 일본에서 참석한 사람을 모두 버스에 태우고 백담사로 향하였다. 백담사에서는조계종 총무원에서 특별히 부탁을 하였기 때문인지는 모르나 숙소로부터 내일 이곳을 떠날 때 까지 아주 세심하게 스케줄을 짜 놓았기 때문에 백담사에서하루 밤 생활해보는 것에 관하여 매우 만족하게 생각하였다.

 

특히 일본에서참석한 분들은 만해 한용운 스님이 계셨던 곳이라고 하니 특별한 관심을 나타내기도 하였다. 또한 예불을드릴 때 무릎을 굻고 중국에서 온 교수들은 무릎 꿇는다는 것은 고역으로 생각하고 있는 듯 하였다.

 

오전에 백담사에서여러 가지 체험을 마치고 강원도 고성에 있는 통일전망대로 향하였다. 남북의 대치상항을 직접 보여줌으로써한국의 현실을 직시하여 주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돌아오는 길에는 신흥사에 들려서 주지스님으로부터 차(茶) 공양을 받고 낙산비치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연이틀 동안의강행군에 몸이 피곤할 것 같아 일찍부터 쉬라고 하였으나 모두들 피곤한 기색이 전혀 없이 수학여행 온 학생들처럼 즐겁게 하룻밤을 보냈다. 이번 문화탐방 프로그램이 아주 인상적이었다고 말한다. 지금도 그때에참석하였던 교수를 만나면 당시 얘기를 한다. 이 문화탐방프로그램에 물심양면으로 많은 도움을 백담사, 총무원 그리고 문화체육관광부 종무실의 관계자 여러분께 늦었지만 지면을 빌어서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오한동 총장의경력과 인품 

 

 

△ 경력

 

오 총장의 경력사항을보면 그는 1951년 1월에 출생한 한족으로서 1995년에 중국 인민대학에서 민법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또한 1993년 3월부터 2000년 5월까지 중남정법학원 부원장과 원장을 역임하였고 2000년 5월부터 2014년 1월까지중남재경정법대학 총장을 역임하였다.

 

그는 또한 중국지식재산법연구위원회명예회장, 중국 교육부인문사회과학중점 연구기지, 지식재산보호연구기지그 밖에 많은 직책을 겸하고 있다. 특히 그는 ‘2009글로벌 IP 50’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에 포함된바 있다. 2011년에도지적재산권의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이 있는 50명 중 11번째로선임된바 있다. 이와 같이 많은 직책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정력적으로 연구활동을 하여 현재 20편에 가까운 저서를 가지고 있다.

 

 

△ 인품  

 

오 총장은 대학의캠퍼스 안에서 외모로 보아서는 전혀 총장이라는 인상을 찾아 보기 어렵다. 아주 수수하게 옷을 입고 다닐뿐만 아니라 항상 얼굴에 웃음이 떠나지 않는다. 그래서 순박한 시골 아저씨 같다. 나는 그가 대학의 사무직원들과도 친구처럼 대화를 나누는 것을 여러 번 볼 수 있었다. 그는 중남정법대학의 부총장, 총장을 합하여 모두 21년간을 역임하고 지난 1월에 총장직에 물러났다. 총장으로서의 정년에 해당하였기 때문이라고 한다.

 

나는 오 총장을한 글자로 표현한다면 그는 몸에 공(恭)이 배여 있는 학자라고말하고 싶다. 중국의 전통문화에서 겸손은 미덕이라고 하는 격언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결코 자신이 하고 나서도 겸손하게 공을 다른 사람에게 돌리는 것을 본적이 있다. 정말로 그는 신사다. 신사로서 요구되는 품격을 가지고 있다.

 

그는 학생들을무척 사랑하는 총장이고 교수다. 그가 학생들을 어느 정도 사랑하고 있는 가는 이미 학내에서 모르는 사람이없을 정도다. 교수와 학생에게서 들은 얘기인데, 중국 학생들은모두가 기숙사생활을 하는데 명절이 되면 집이 가까운 학생들은 집에 가서 명절을 지내고 오지만, 집이멀어서 가지 못하는 학생들은 기숙사에서 지내게 되는데 오 총장은 명절이 되어도 집에 가지 않고 기숙사에서 명절을 보내는 학생들과 같이 기숙사식당에서학생들과 식사를 같이 하면서 학생들을 위로하고 격려를 한다고 한다. 그는 진심으로 학생을 사랑하는 총장이고교수다.

 

그는 또 정이많은 총장이다. 오 총장은 우리 부부를 세 번이나 초청하여 즐겁게 관광을 하게 하였다. 사실 나는 그 동안 중국을 아마도 50번 이상을 방문하였지만 관광코스로인기를 끌고 있는 장가계나 황산 등관광지는 거의 가보지 못했다. 왜냐하면 내가 중국을 방문하는 목적이관광에 있는 것이 아니고 세미나 등 어떤 행사의 참석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랬는지는 모르나 오총장은 일체의 비용을 학교에서 부담하면서 우리 부부를 초청하여 즐겁게 관광할 수 있도록 배려하였다. 이자리를 빌어서 감사를 드린다.

 

 

맺으며

 

내가 오 총장과처음 인사를 한 것이 2006년이니까 곧 10년이 되어 간다. 오 총장은 국제적 감각도 뛰어난 학자이며 행정가이다. 한·중·일 3개국, 더 나아가서는 세계의 지식재산권법의 발전을 위하여 중심적 역할을 할 수 있는 학자이며 또한 중국의 대학교육에관하여 이론과 실무를 겸한 행정가이다.

 

2013년에 한국저작권위원회의유병한 위원장과 중남재경정법대학 지식산권연구센터의 주임 겸 총장인 오한동 교수는 상호 교류협약을 체결하였다. 앞으로 활발한 교류가있기를 기원하며, 아울러 오 총장은 더욱 넓은 곳에서 세계평화를 위하여 그의 역량을 발휘할 수 있게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저작권자 © The PeoPle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