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자전거를 ‘사랑’을 바꾸는 마술사…따스함 넘치는 세상으로 이끌다

 

결코 ‘삐까뻔쩍’하지 않다. 오히려 초라해 보이기까지 하다. 한강변 자전거도로를 달리는 ‘그들’과는 겉모습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고양시 행주산성 인근 제2자유로 고가 밑 공터에 모여 있는 수천 대의 먼지 쌓인 자전거들이 그렇다.

마치 패잔병 혹은 포로들을 줄 세워 놓은 모습이다. 초췌한 모습으로 서 있기 조차 힘들어 보이는 자전거들은 그 동안 자신의 주인이었던 사람을 원망하는 것 같았다.

그런데 놀랍다. 마치 생명을 다한 ‘시체’처럼 보이던 자전거가 ‘기적의 손’이 닿기만 하면 부활해 세상을 밝히는 귀한 존재가 된다. 이렇게 놀라운 능력을 발휘하는 사람은 바로 사단법인 ‘사랑의 자전거’ 정호성 대표다.

정 대표는 기름때가 잔득 묻은 실장갑을 끼고 있었다. 그리고 그 손엔 공구 하나가 쥐어져 있었다. 정 대표의 덩치는 왜소해 보일 정도다. 그럼에도 그의 자전거 옮기는 힘은 ‘강호동’보다 더 힘차 보였다. 아마 물리적인 힘보다는 사회에 따스함을 전하고자 하는 마음의 힘일 것이다.

정 대표가 이 일을 시작한 것은 2006년. 지인(知人)이 버려진 자전거를 수거해 고쳐서 북한에 보내면 어떻겠냐는 제안에 동의함으로써 지금 여기까지 온 것이란다. 사실 이러한 일이 취지는 좋아도 경제적 지원이 뒷받침이 안돼 오래 하기가 참으로 힘든 ‘과업’이다.

역시나 시작은 창대했으나 점점 어려워져 접을까하는 시점에 이르자 그냥 마무리하기가 너무 아쉬웠던 정 대표가 홀로 선두에 서서 이끌고 있는 것이다. 전이나 지금이나 형편은 그리 나아지지 않았지만 정 대표의 열정은 더욱 뜨거워졌다.

 

‘미다스의 손’이 닿기만 하면 두 바퀴는 ‘씽씽’

 

비영리 사회적기업인 ‘사랑의 자전거’는 도로나 주택가에 방치된 폐자전거를 수거해 재생한 뒤 저렴한 가격에 판매하거나 공부방이나 노인정, 아동복지센터 등에 기증하고 있다. 실제 판매되는 자전거보다 기증하는 자전거 수가 훨씬 많다. 그러니 형편은 불을 보듯 뻔하다.

정 대표는 목사다. 처음부터 설교만 하지 않는다. 오히려 사회운동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다. 목사 안수를 받은 직후부터 재개발이 한창이던 서울에서 유명한 산동네 삼양동 주민들과 어울리며 목회를 시작했다. 가락시장에서 청과물을 사와 싼값에 주민들에게 제공하는가 하면 주민들과 협동조합을 만들어 운영하기도 했다. 자동차 기술을 가르치고 집수리를 해 주는 자활사업에도 열중했다.

이때부터 정 대표의 삶은 자신만은 것은 아니었던 듯싶다. 정 대표의 모든 것은 타인(他人), 특히 불우한 이웃에게 향하고 있었다. 그야말로 세상의 ‘빛과 소금’인 것이다. 인간에게 절대 없어서는 안 될 존재인 것이다. 이런 말에 정 대표는 매우 어색해 했다. 그래도 사실은 ‘팩트’인 것이다.

정 대표는 폐자전거 재생활동에 대해 여러 가지 의미를 부여했다. 정 대표는 “폐자전거 재활용은 우선 환경문제와 직결된다”며 “우리 주변에 방치돼 있는 폐자전거는 도시환경에 막대한 피해를 주는 것이며, 재활용하는 것은 자원절약의 일환이고 사용하면 대기오염을 줄이는 역할을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목사 안수 받자마자 산동네로 달려간 불우이웃의 진정한 ‘이웃’

 

참으로 정확한 분석이 아닐 수 없다. 여기저기 방치돼 있는 먼지 쌓이고 부서져있는 자전거를 보면서 웃음 짓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서로 누가 치워주었으면 하기만 할 것이다. 그리고 수거된 자전거를 그냥 고철로 처리하는 것이 아니라 쓸 만한 자전거를 다시 쓸 수 있도록 한다는 건 큰 기쁨이 아닐 수 없다. 자전거 타기는 어떤가. 두말하면 입만 아프다.

그럼 폐자전거는 어떻게 이 곳까지 올까. 정 대표가 각 지를 다니며 방치돼 있는 자전거에 직접 계고장을 붙이고, 열흘이 지나면 수거하는 것이다. 경기도 고양시 일산과 서울의 동대문구와 은평구가 그의 관할이다.

그런데 그냥 가져오는 게 아니다. 어느 지자체에서는 자전거 가격을 받는다고 한다. 오히려 버려진 자전거를 가져가줘서 고맙다고 수고비를 주지는 못할망정. 망정(亡政)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수거해온 자전거를 바로 수리할 수 없다. 한 달을 더 기다려야 한다. 그리고도 주인이 나타나지 않으며 그때부터 정 대표의 소유가 되는 것이다. 참으로 어렵다.

이제 재탄생 과정을 거치게 된다. 수리가 가능한 것은 다시 고쳐 사용하고, 도저히 ‘부활’이 안 되는 자전거는 해체해서 부품만 재활용한다. 이렇게 재생된 자전거는 매년 2천여 대 정도가 되는데 판매하거나 전국의 어려운 이웃에게 무료로 보내진다. 그리고 미얀마 등 동남아시아 농촌에서도 달린다.

정 대표의 생산품은 자전거만이 아니다. 폐지 수거를 하는 노인을 위한 손수레도 제작한다. 이 손수레는 여느 손수레와는 ‘질’이 다르다. 펑크의 우려가 없는 통타이어가 장착돼 있으며, 자전거 바퀴가 돌면서 나오는 전기발생장치를 활용하는 경광등도 부착했다.

또 자전거 브레이크 장치를 이용해 감속을 할 수 있게 했고, 주차 장치를 손잡이 하나로 쉽게 작동하게 만들었다. 보조바퀴를 부착하여 세 바퀴로 움직이게 만들었다. 이러한 장치들은 모두 폐지를 수집하는 기력없고 빈곤한 노인들의 편의를 위한 장치이다. 노인들의 키 높이에 맞게끔 손잡이 높이를 조절할 수도 있다. 가히 ‘맥가이버’가 울고 갈 기술력이 아닐 수 없다.

정 대표는 “폐지 수거 어르신들은 우리 사회에서 가장 소외받고 열악한 환경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전국적으로 폐지 수거 어르신 약 270만명은 최근 폐지값 하락으로 더욱더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 추워지는 날씨에 폐지 수거 어르신들에게 좀 더 안전하고 편리한 손수레를 보급하고 싶어서 만들게 됐다”고 말했다.

 

폐지 줍는 노인에 여러 기능에 장착한 맞춤 손수레 기증

 

이렇게 많은 기술을 접목할 수 있는 건 정 대표의 자동차정비기능사 1급 자격증이 보증한다. 그런데 그가 취득한 자격증을 보면 놀랍다. 기술 분야의 자격증뿐 아니라 중등학교 정교사 자격, 특수차 면허, 요양보호사, 사회복지사 자격증이 있으며 한국기독교장로회 목사 자격증은 당연히 있다.

정 대표는 목사로서 한 마디 했다. “제 신앙생활의 궁극적인 바람은 예수의 제대로 된 모습을 이 땅에 실현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려주셨을 뿐 아니라 어려운 이웃을 사랑했던 예수의 본 모습을 보면, 제대로 예수 믿는 사람들이 많아질 것이라 믿는다. 이게 바로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건설하는 것이다.”

 

“기름때 잔뜩 묻은 실장갑이 내 인생의 최고 지침”

 

얼마 전 정 대표의 손을 거친 자전거가 경기도 고양시에 위치한 대안학교에 기증됐다. 이때 정 대표의 센스가 빛을 발했다. 스타일과 디자인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학생들의 눈높이에 맞춰 하이브리드 자전거를 선물한 것이다. ‘센스쟁이’다.

이러한 정 대표의 노력을 세상은 외면만 하지 않았다. 1998년 보건복지부장관 표창, 2009년 서울 종로구청장 표창, 2009년 서울특별시장 표창, 20010년 한국지역지역자활센터협회장 표창이 증명한다.

정 대표는 표창얘기에 쑥스러워 했다. 표창 때문에 시작한 일이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세상은 정 대표에게 보답하는 게 당연하다. 왜냐하면 정 대표는 싸늘한 한강 바람이 몰아치는 고가도로 밑에서 땀 흘리며 수명을 다한 자전거를 고치고 있기 때문이다.

정 대표의 꿈은 소박하다. 아니 엄청 큰 것일 수도 있다. 바로 세상이 좀 더 따듯해지고, 불우한 환경 속에서 지친 삶을 견디며 살고 있는 이웃이 한 사람이라도 더 줄어들도록 하는 것이다.

제발 이렇게 되기를 누구나 바랄 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삶을 쏟아 부우며 몸으로 부딪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분명하다. 그래서 정 대표가 더 위대해 보이는 것 일게다. 정 대표는 자신이 그리고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오늘도 기름때 잔뜩 묻은 실장갑을 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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