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간의 ‘총리’ 생활 박차고 ‘아내’ 품으로 돌아가다

국민의 절대적인 신망을 받는 총리보다 아내의 가슴이 더 좋은가보다. 남들은 그 자리에서 밀려날까봐 안절부절 못하며 갖은 짓을 다 하는데.

문화의 차이인가, 인간의 차이인가.

어쨌거나 존 키 뉴질랜드 총리는 지난 12월4일자로 스스로 ‘자리’를 버렸다. 이유는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을 많이 갖기 위해서란다. 그의 아내의 요청이란다. 아내가 무서웠을까, 아니면 아내를 존경하는 것인가.

존 키의 갑작스런 사의 표명으로 뉴질랜드 순간 충격에 빠졌다는 소식이다. 사의를 표명하는 자리에서 존 키 총리는 "내가 지금껏 해온 결정 중 가장 힘든 결정이었다. 옳은 결정을 하기 위해서 어려운 결정을 해야 할 때가 있다"며 "나는 모든 것을 내주었다. 나에겐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내가 말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이것"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내용의 사의 표명을 하는 존 키의 표정은 그리 밝지 않았다고 한다. 속내는 총리 자리에서 떠나고 싶지 않았던 모양이다. 국민에게 미안해서일까, 아니면 그의 아내는 과연 악처일까. 앞으로 그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 알 수 있겠지.

존 키는 평소 "총리로 살아간다는 것은 '위대한 희생'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가장 사랑하는 가족들이 과도한 침해 등의 문제를 겪어야 했다"는 말을 자주 했다.

결국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자리는 가족과 함께 있는 ‘그 곳’인 것 같다. 존 키 역시 뉴질랜드 최고의 자리에서 내려올 수 있었던 것은 가장 행복한 자리로 돌아가기 위해서다.

존 키는 이제 정계에서 완전히 떠나는 것 같다. 그는 우리나라 정치지도자라는 사람들과는 차원이 달라 보인다. 은퇴라는 말을 수없이 뱉어놓고 그 ‘더러운 말’을 다시 주워 먹는 뻔뻔함은 정치 선진국에서는 볼 수 없다.

존 필립 키(John Phillip Key)는 1961년 오클랜드에서 태어났다. 2006년부터 야당인 뉴질랜드 국민당을 이끌었으며, 2008년 총선에서 승리, 제38대 총리로 취임했다.

어린 시절 아버지를 잃고 오스트리아 출신의 유대인인 어머니를 따라 크라이스트처치로 옮겼으며 그 곳의 번사이드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캔터베리 대학교에서 회계학을 전공했고 캔터베리 대학교 졸업 후 미국의 하버드 대학교에서 경영학을 전공했다.

그 후 뉴질랜드의 투자은행에서 근무하다가 1995년 세계적인 금융회사인 메릴린치로 자리를 옮겨 국제외환 업무를 담당하며 싱가포르와 런던, 시드니 등지에서 많은 보수를 받으며 근무했다. 1999년 미국 뉴욕 연방준비은행(FRB)의 외환거래위원회 회원이 되었다.

정치 활동에 관심을 갖던 그는 2001년 귀국, 당시 야당인 국민당에 입당했다. 2002년 총선에서 오클랜드 시내에 새롭게 형성된 헬렌즈빌(Helensville) 지역구에 출마, 당시 노동당의 게리 러셀(Gary Russell) 후보를 1,705표차로 꺾고 당선되어 47대 의회에 초선 의원으로 들어갔다.

2005년 총선에서 국민당 재집권 실패에 대한 책임을 지겠다고 한 당수 돈 브래시는 그에게 국민당 당수직을 후임으로 내주었다. 정계 입문 5년 만에 제1야당 대표가 된 그는 집권 여당인 노동당의 실정을 비판하며 2008년 총선에서 당선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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