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희순 대한민국명장

41년 올 곧은 刺繡 人生…세상을 숭고한 아름다움으로 뒤덮다

 

자수(刺繡)는 바탕천에 여러 가지 색실로 무늬를 수놓아 장식하는 공예미술이다. 자수는 인류가 동물의 모피나 식물의 껍질과 잎 등을 원시적 재봉용구로 꿰매고 엮어 옷을 지어 입었던 선사시대에 기원된다고 한다.

그리고 인류생활이 점차 문명화되면서 옷이나 직물제품에 계급 표시 등을 목적으로 장식 또는 자수를 도입하게 되었다. 따라서 자수는 직물의 표면을 장식하는 조형예술로 발전되고, 각 민족의 생활환경·풍습·신앙 등에 따라 독자적 양식을 이루고 있다.

우리나라의 자수 역시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시대의 변천에 따라 우리 민족의 미적 특질을 표현해왔다. 자수는 길쌈·바느질 등과 함께 바늘 한땀한땀의 정성을 통해 일상생활 곳곳에 섬세한 솜씨로 아름다움을 가꿔 왔으며, 아울러 민족의 정서를 그 속에서 꽃피웠다.

이렇게 오랜 세월 우리 민족과 함께 이어져 내려오는 자수의 명맥을 이어가고 있는 인물이 있으니 바로 유희순(劉喜順) 대한민국명장이다.

2002년 ‘자수공예부문 대한민국명장(제345호)’으로 선정된 유 명장은 41년간 ‘자수’와 삶을 같이 하고 있다. 1983년 제8회 대한민국전승공예대전에서의 입상을 시작으로 1985년 노동문화재 수예부문 대상, 1994년 한수예술제 최우수상, 1997년 신미술대전 공예부문 대상 등 다수의 공모전에서 많은 상을 수상했다.

 

자수 전통 계승발전시키고 후대에 이어준다

 

또한 2000년에는 한국밀레니엄 상품으로 선정되며 산업자원부장관상(은상) 및 우수공예문화 100선에도 선정된 바 있다. 최근에는 국가직무능력표준(NCS) 섬유공예부문의 전문위원으로 위촉되어 출제와 최종검토위원으로 활약했고, 2013년 문화관광부에서 제작한 국가브랜드 홍보영상에도 출연했다.

유 명장의 작품은 외국 귀빈이 방한할 때 더욱 빛난다. 1999년 영국 엘리자베스2세 여왕의 방한 당시, 여왕이 앉는 방석과 숄을 제작했는데 특히 여왕 이름의 영문 사인을 한글로 바꾸어 수놓기도 했다.

또한 지난 2005년 부산에서 개최된 ‘APEC 정상회의’에서 벡스코 컨벤션홀 의장석 뒤를 장식했던 ‘일월오봉도’를 제작하며 세계적인 이목을 끌었다. 해와 달, 다섯 봉우리, 소나무, 폭포의 형상이 좌우대칭으로 배열되어 있어 조선왕실의 위엄을 상징하는 이 작품은 가로 624cm, 세로 348cm의 크기로 제작됐는데 명주실이 무려 12kg이나 사용된 국내 최대 작품임을 자랑한다.

이 밖에 2007년에는 ‘제4대 국새의장품’ 제작에 참여해 내함보자기, 석, 주머니를 만들었으며 이는 ‘해당 분야의 최고 장인들의 집대성’, ‘전통예술의 완결이자 전통공예의 진수’라는 평가를 받았다. 이 작품으로 유 명장은 행정안전부장관 표창을 받았다.

이렇듯 대한민국 최고의 솜씨를 자랑하는 유 명장은 언제 어떤 계기로 자수의 길을 걷게 되었을까. 때는 바야흐로 197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한국자수협회 초대 이사장이었던 고(故) 김태숙 선생의 문하로 들어가면서부터다.

 

영국 여왕·APEC정상회담때 세계적 이목 끌어

 

4년간 김태숙 선생으로부터 동양자수를 사사(師事)를 받았으며 1981년 대한민국전승공예대전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한 고(故) 한상수 선생(중요무형문화재 제80호)의 ‘수 괘불’을 보고 깊은 감명을 받게 된다. 그리고 한상수 선생으로부터 다년간 전통자수를 배우며 동양자수와 전통자수를 고스란히 터득하게 된다.

유 명장의 위대함은 자수 솜씨를 혼자만 간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후학양성과 저변확대에 매우 적극적이다. 기술 전수를 위해 1998년 3월부터 동국대학교 평생교육원 전통자수 주임교수에 부임해 지금까지 20년간 40학기를 한 해도 거르지 않고 강의하고 있다. 이를 통해 200여명 이상의 제자를 배출했다.

이뿐 아니라 외부강의로는 공주민속극박물관과 수원시 농업기술센터 등에서도 다년간 전통자수 전승 작업에 혼신을 다하고 있다. 이렇게 양성된 제자들 중에는 대한민국 전승공예대전 본상을 비롯하여 장려상과 특선·입선 등 다수 수상작품을 탄생시켰다.

이렇게 자수에 열중하는 이유에 대해 유 명장은 “작업에 몰두할 수 있었던 것은 잊혀져가는 전통자수를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오로지 그 아름다운 기술을 전수하고 있다는 자부심때문”이라며 “한창 작품 활동이 왕성할 때는 하루에 열대여섯 시간 이상을 작업을 해도 피곤한 줄도 몰랐다”고 말했다.

유 명장의 이러한 노력에도 우리나라 전통자수의 생명력은 점점 미약해지고 있다. 이러한 추세가 계속되면 자수의 명맥이 끊어지지 않을까하는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래서 유 명장은 제자들과 함께 강의 초부터 전통자수 복원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그 중 하나가 2015년 6월 중요무형문화재 전수회관에서 ‘누에고치에서 꽃을 피우다’라는 제목으로 열린 전통자수 유물 복원 작업이었다.

유 명장은 자수의 매력에 대해 “자수는 정성과 인내 그리고 아름다움의 집합체”라며 “자수틀에서 수를 놓고 있으면 그만한 즐거움이 없다. 바늘 한 땀은 직선이고, 직선을 0.5cm의 곡선으로 만들려면 수십 여의 땀이 필요하고, 그 땀들이 모여 면을 메운다. 아름다움을 만들어내는 그 인내는 매우 숭고한 작업”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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