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세대 방사광가속기 준공 쾌거와 박태준

 

4세대 방사광가속기 준공식이 2016년 9월29일 포스텍(포항공과대학)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성대하게 개최되었다. 미국, 일본에 이어 세 번째로 우리의 설계와 기술로 제작에 성공함으로써 우리 과학기술의 저력을 전 세계에 과시했다.

이로써 우리나라는 과거에는 볼 수 없었던 물질의 미세구조와 현상을 나노미터/펨토초(10-15)단위까지 분석함으로써 새로운 과학영역을 선도적으로 개척할 수 있게 되었으며 향후 생명공학, 청정에너지, 나노, 반도체 등 고부가가치 미래 산업의 발전을 크게 기대할 수 있게 되었다.

이번 4세대 방사광가속기 준공의 토대가 된 방사광가속기는 1988년 박태준이 세계적인 연구중심대학을 표방하며 포스텍을 설립하고 영입한 김호길 초대 총장의 건의를 받아들여 건설한 것이다. 박태준은 건설에 앞서 일본 쓰쿠바의 고에너지연구소를 시찰하고 포스텍이나 한국과학기술의 미래를 위해서는 반드시 방사광가속기건설이 필요하며 이것이 시대적인 사명이라 확신했다.

1988년 4월 1일 포항제철 창립 20주년을 맞아 방사광가속기 건설추진본부가 설치되었으며 준비과정을 거쳐 1991년 4월 1일 포스텍 기숙사 뒤편 189000평 부지 위에서 착공식을 가졌다. 당초 포항제철의 건의에 대해 정부는 예산문제를 들어 난색을 표했으며 여러 곳에서 포항 방사광가속기 건설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가 많았지만 포항제철이 건설비를 부담하고 운영비를 정부가 지원하는 선에서 추진이 결정되었다.

결과적으로는 포항제철이 내놓은 739억 원을 제외한 나머지 600억 원을 정부가 부담했다. 박태준은 착공식 인사에서 “대기업의 최우선 사회적인 책임은 진정한 과학기술의 발전을 위해 혁명적인 투자결단을 내리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방사광가속기는 1994년 12월에 준공되었다.

박태준을 오래 연구해 온 필자는 미래지향적인 그의 리더십에 주목했다. 박태준은 입버릇처럼 10년 후의 자기 모습을 그리라고 말한다. 그리고 부장은 1년, 임원은 2-3년 그리고 사장은 최소한 10년 뒤를 내다보고 판단하라고 강조했다.

일본의 협력을 이끌어내며 세계적인 포스코를 성공적으로 건설하여 대한민국 산업화의 토대를 만든 박태준은 포항공대 부지에 방사광가속기 건설을 결단하고 이를 실행함으로써 미래 대한민국의 가장 중요한 먹거리가 될 신수종 산업을 위한 기반을 구축했다.

포항제철의 건설초기 일본 기술단이 초안한 ‘공장 위치 계획도’를 보고 박태준은 도면에 연필로 선을 북북 그었다. 모든 도로를 설계도보다 두 배 넓히라는 것이었다. 이에 반발하는 일본 기술단을 향해서 그는 “일본 기술단은 자문하는 역할이며 결정은 책임자인 사장이 한다.”라며 그들의 항의를 일축했다.

당시 포스코 중앙도로를 보고 많은 사람들이 비행기 활주로를 만드느냐고 뒤에서 비아냥거렸지만 지금 와서는 이 도로마저도 좁게 느껴진다. 일본 기술단은 기껏해야 한국이 200-300만 톤 규모의 제철소를 만들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박태준의 머리 속에는 이미 1000만 톤의 제철소가 그려져 있었다.

언젠가 한일경제협회 창립자 박태준에게 협회를 운영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 무엇인지 물어본 적이 있다. 그는 “초대 회장으로서 재임하는 동안 나는 양국 청소년들의 인적교류 사업도 매우 중요하게 생각했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미래의 한일관계를 건강하고 건설적인 방향으로 이끌어갈 주역을 육성해야한다는 신념을 실천한 것이었다.”라고 그는 힘주어 말했다.

일전에 국립 현충원 박태준 묘소에서 부인 장옥자 여사를 만나 일본인들이 박 회장을 좋아하며 그들로 하여금 적극적으로 협력하게 만든 비결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 그 때 그녀는 “박 회장은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나카소네 전 일본총리는 본인에게는 없는 것 즉 10-20년 앞을 내다보는 선견지명을 박 회장이 가지고 있다고 말했습니다.”라고 그녀는 말했다.

박태준은 우리의 복잡 미묘한 대일정서에 대해서도 미래지향적인 관계를 주문한다. 과거사를 잊지는 말되 일본에 대한 선입관에서 벗어나 우리에게 여전히 유익한 선진 일본의 각종 장점을 적극 활용하여 궁극적으로 일본을 실력으로 이기는 것이 극일의 길이며 이퀄 파트너로 나아가는 길이라고 그는 강조했다. 금년도 노벨생리의학상을 일본이 수상했다는 발표가 있었다. 이로써 일본은 3년 연속 과학 분야에서 노벨상을 받게 되었다.

한 동안 경색되었던 한일관계는 작년 12월 위안부 문제의 정부간 타결로 개선되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중국에 대한 과도한 무역의 의존이 결과적으로 사드배치 문제에 대해 내부분열을 일으킴으로써 시장다변화와 더불어 한일관계의 중요성에 대한 재조명이 이루어지고 있다. 우리의 생존이 걸린 안보문제를 담보하기 위해서는 그 동안 이완되었던 한미일 협력을 더욱 공고히 하고 우리의 일본에 대한 국민정서도 차제에 국익차원에서 재점검이 요망된다.

동북아의 안정과 평화를 위해서는 민간교류의 활성화를 통한 국민들의 신뢰구축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중국과 일본에서 큰 인기를 얻고 있는 한류문화의 확산에 대한 정치권과 정부의 가일층의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 그리고 중일양국에서 공히 좋은 이미지를 구축한 박태준의 이름을 건 <박태준 배 한중일 축구대회>를 우리가 주도적으로 창설하여 운용하는 것도 한중일 풀뿌리 교류의 좋은 방안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

박태준의 축구사랑은 각별했다. 그는 포항제철 축구팀을 결성하고 적극적으로 지원했으며 우수선수 발굴과 육성에 있어서도 우리 축구사에 큰 획을 그었다. 포항제철과 경쟁사인 신일본제철과의 축구시합도 정기적으로 실시했으며 포항에 한국 최초의 잔디구장도 건설했다. 월드컵 개최지 결정을 위해 방한한 FIFA조사단은 당시 국내에서 유일했던 포스코의 잔디구장을 시찰했다.

동북아의 평화와 안정은 박태준뿐 아니라 우리 동북아 3국 국민들의 공통된 염원이기도 하다.

 

<프로필>

국제학 박사

(주)에스포유 회장

(사)동북아공동체연구재단 정책자문위원

전 한일경제협회 전무이사

전 (재)한일산업기술협력재단 전무이사

저서 「박태준이 답이다(씽크스마트,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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