丁酉年은 고난의 변혁기, 정신문화 인격혁명으로 극복해야

“하나만 변화면 세상이 변한다. ‘하나’가 얼마나 중요하고, 엄청난 변화의

 힘을 발휘하는지 분명히 알아야 한다.” 우룡(雨龍) 스님의 일성(一聲)이다. 여기서 ‘하나’는 한사람이기도 하고, 진리본체를 뜻하기도 한다. 진리본체는 하나님이나 부처님 수준의 절대자를 말한다.

우룡 스님은 그 하나를 찾아서 바로 세우기 위해 길을 나선지 오래다. 스님은 근래 우리나라에서 발생되는 모든 불운은 우리 국민이 ‘하나’를 잃었기 때문이라고 강조한다. 그러면서 한편으로 다행인 것이 나라의 기운이 되살아나는 큰 계기가 될 것이란 전망을 말한다. 지금이야말로 그 하나를 깨달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다행이도 이제 국운(國運)이 되살아날 때가 무르익었다고 단정한 우룡 스님은 ‘하나’를 바로 세워 이 나라를 구할 시기가 도래(到來)했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불의 심법’을 막고, ‘물의 심법’을 세상에 퍼뜨려야만 어지러워진 민족의 정신을 바로 세울 수 있다는 것이다. 불은 위로만 향하려는 성질이 강해 자기주장만 고집하며 악의 세력을 조장하고, 물은 아래로 흐르며 평정을 꾀하니 자신을 낮추는 겸손과 겸양으로 타인(他人)을 배려하는 사람의 결정체가 되는 이치를 깨달아야 한다는 것이다.

우룡 스님은 “이 땅의 혼란은 이제 정점에 거의 다다르고 있다”며 “이러한 상황은 우리 민족의 과거 업보(業報)를 활활 태우고 새로운 세상을 일으키라는 하늘의 뜻임을 국민들은 분명히 인식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1월1일부터 60일간 ‘탑돌이’…간절한 국민소망 모아 국난극복

최근 국운회복 기도에 더욱 정진하고 있는 우룡 스님은 병신년(丙申年)인 올해가 민족정기 회복을 위한 마지막 시기라고 단언하며 내년에는 국운이 승천하는 원년(元年)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신년 1월1일에는 서울 종로 탑골공원에서 ‘탑돌이’를 하며 새해를 맞이한다는 것이다. 이 탑돌이는 3월1일까지 60일간 계속 되는데 국민들의 간절한 소망을 모아 구국기도로 국난을 극복한다는 의지가 담겨있다.

‘탑’은 ‘진리’를 말하며, ‘돌이’는 ‘돌아가자’는 참뜻이 있다고 한다. 즉 이제는 우리의 근본으로 돌아갈 때가 되었다는 것을 만천하에 선포하는 것이다. 이로써 이 땅에는 새로운 세상이 열리고, 국태민안(國泰民安)의 시대가 열리게 된 것이라고 전망했다.

우룡 스님은 “우리는 그 동안 이분법적 사고(思考)에 파묻혀 선악(善惡)과 자타(自他)로 나뉘어 싸움만 하며 국력을 소비해 왔다”며 “이제는 국민 모두가 스스로 낮추며 역지사지(易地思之)하는 자세로 남에게 베풀며 사는 겸양지덕(謙讓之德)의 삶을 살 때가 됐다”고 강조했다.

이러한 지극히 평범한 세상의 이치를 설(設)하고 있는 우룡 스님이 세간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숭례문 화재 때문이었다. 2008년 2월10일 오후 8시40분 경 발생한 숭례문 화재 소식을 듣게 된 우룡 스님은 산문(山門)에 앉아 있을 수만은 없었다고 한다.

당시 계룡산에서 기도에 정진하고 있던 우룡 스님은 “이럴 때 내가 내 노릇을 하지 않으면 세상에 태어난 이유를 찾지 못하는 것”이라는 생각에 바로 ‘바랑’을 꾸려 서울로 올라 온 것이다.

“숭례문 화재는 새 세상 열라는 啓示”, 현장에서 홀로 49재 올려

우룡 스님은 숭례문 화재 소식을 들었을 때 “하늘을 이고 땅을 딛고 있는 것이 얼마나 부끄러운지 몰랐다”며 슬퍼했다. 우룡 스님에게 숭례문 화재는 예(禮)가 사라진 한국 사회에 대한 하늘의 계시(啓示)이자 경고(警告)라고 판단했다.

계룡산 민목재 용수선원을 떠나 화재로 소실(消失)된 숭례문에 도착한 우룡 스님은 국민 모두를 슬픔에 빠지게 한 현장에서 홀로 49재를 지내기 시작했다. 숭례(崇禮)의 그 뜻대로 우리나라가 다시 동방의 예를 숭상하는 나라로 되돌아가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시작한 기도였다.

숭례문 화재는 “부도덕하고 금권(金權)이나 지역감정에 편승한 정치인이 지도자가 되고,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익을 탐하는 기업이 성공하는 우리나라의 현실을 벌하고, 새로운 세상을 세우기 위한 하늘의 큰 뜻”이라고 진단한 스님은 “숭례문은 사람이 마땅히 지켜야 할 다섯 가지 도리인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중 ‘예’를 상징하고 있다”며 “예의 정신은 정직과 양심이며 양심은 세상을 사랑하는 마음이며 이것이 홍익인간 정신이고 상고이래 우리나라의 건국이념이며 국가의 정체성”이라고 강조했다.

당시 숭례문의 복원 공사에 대해서도 스님은 많은 걱정을 했다고 한다. 너무 서두른다는 것이었다. 숭례문 화재는 우리의 예가 무너진 세태(世態)에 대한 경고이기 때문에 복원 작업은 숭례문을 다시 짓는 것 이상의 이념 즉 예와 민족정신의 온전한 복원이어야 된다는 주장을 여러 곳에다 알리기도 했다고 한다.

스님은 화재 이후 재방송 뉴스로 화재 장면을 보면서 불길의 형상이 눈에 확연하게 들어 왔는데 그 형상들은 부처이기도 했고, 사천왕이기도 했으며, 악마로도 보였다고 한다. 한마디로 세상의 모든 만상(萬象)이 꿈틀대며 하늘로 올라가는 것을 분명하게 형상적으로 보여준 것이라는 것이다.

스님은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당시 “숭례문 화재는 우리에게 불행한 모습을 보여 주었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았다”며 “그 화재로 인해 그 동안 우리나라에서 발생된 모든 악재가 불타 사라지는, 새로운 질서가 구현되는 희망찬 나라로 거듭나야 된다는 전환의 기회임을 국민들에게 깨우쳐 준 일대 사건이었다고 말한다.

“숭례문 화재 원원 중 하나가 ‘사회시스템’의 붕괴, 즉 서민들의 억울함을 합리적으로 해결해 줄 수 있는 사회시스템의 부재와 이에 대한 불만이 문화재에 대한 방화라는 극단적인 방법으로 표출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므로 숭례문의 화재는 사회시스템을 정비하고 사회지도층, 특히 정치인들과 행정가들이 국민의 입장에서 국민을 위한 정치와 행정을 펼치라는 경고이자 국민 대중이 지도자들을 믿으며 상호 신뢰를 쌓으라는 하늘의 계시라는 것이다.

인간도리의 중심인 ‘禮’ 바로 세워야 理化世界 열려

우룡 스님은 숭례문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 “사람이 마땅히 지켜야 할 다섯 가지 도리인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을 동서남북의 4대문과 보신각에 담아 건축한 것 중 하나로 ‘예’가 가운데 있는 것은 그만큼 중요한 덕목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므로 예는 질서를 상징하는 것으로 이 질서가 무너지면 혼돈하고 어지러운 세상이 되니 화재로 인해 무너진 질서를 다시 올곧게 세워야 한다는 것이다.

스님은 숭례문이 ‘국보1호’라는 것에도 큰 의미를 두었다. 무게감과 상징성이 매우 엄중하다는 것이다. 특히 숭례문이 복원되면서 새로 써 넣은 ‘상량문(上樑文)’의 서기(西紀) 단독 표기를 매우 아쉬워했다. 스님은 “한 국가와 민족에게 있어 국가의 연호(年號)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데 국보1호인 숭례문 상량문에 우리 민족의 연호인 단기(檀紀) 표기가 안 되었다는 건 스스로 우리의 정신을 버린 것이나 진배없다”고 지적했다.

현재 서울을 비롯한 대도시로 확산되어 벌어지고 있는 전국적 촛불집회는 국민들의 각성이 이루어낸 새로운 민의의 표출이다. 이번 촛불시위는 국가의 최고지도자가 각종 혼란을 야기한 잘못을 질타하는 국민의 소리임이 분명하다. 그리고 국가의 주인인 국민들도 이 기회를 통해 국가발전의 감시자로서 반성하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나라 전체를 혼란에 빠뜨려 국민을 공분(公憤)하게 만든 사태는 분명 위정자(爲政者)들의 끔직한 과오(過誤)가 원인인 것은 분명하지만, 그들을 탓하기만 하는 것으로는 원만한 문제해결을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이 우룡 스님의 생각인것 같다.

스님은 “요즘 나라꼴을 보면 답답함이 끝이 없다. 너무나 안타까운 현실”이라며 “난국(亂局)을 올바로 해결하려면 오염(汚染)될 대로 오염된 위정자들에게 바라는 것은 어불성설(語不成說)이다. 따라서 일반 국민들이 광화문에서 석고대죄(席藁待罪)로 하늘의 노여움을 풀어드려야만 우리 민족의 정기를 바로 세우고 국가의 번영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역설했다.

‘코레상스’ 선포…정신문화부활운동은 ‘홍익지도자’바라는 국민염원

그러면서 “단군성조께서 이 땅에 나라를 세우신 근본이념은 ‘홍익인간 이화세계(弘益人間 理化世界)’였다. 이는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고 이치로써 세상을 다스린다’는 뜻”이라며 “이는 곧 ‘예’가 충만한 세상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스님이 ‘숭례문 스님’이 되는데 있어서는 참으로 특이한 ‘인연’의 연결이 있다. 스님은 출가 후 계룡산 갑사 대자암에서 주석하시던 스승이신 영파당 정영 대종사 큰스님을 ‘아버지’처럼 모시며 수도를 했는데 2007년 12월24일 입적하셔서 큰 슬픔에 빠져 있었다.

스승님의 열반 후 스님은 49재를 시작했고, 49재를 마무리하고 난 그날 밤에 숭례문 화재가 발생한 것이다. 이러한 상황의 연결은 우룡 스님에 하나의 계시로 여겨졌고, 그날로 계룡산을 나와 다시 어지러운 난마(亂麻)의 세상을 치유하고자 숭례문 49재를 시작하게 된 것이다.

우룡 스님은 이제 때가 왔다고 선언한다. 이제는 국민 모두가 구태구습(舊態舊習)을 떨치고 일어나야 한다고 역설한다. 쓰레기가 된 인류문명을 모두 불태워 멀리 날려 버리고, 원점(原點)에서 다시 태동(胎動)해 새 세상을 창조(創造)해야 우리 민족정기가 되살아나고 평화로운 세상을 이뤄나갈 수 있다고 말한다.

스님은 정유년 대변혁을 예언했다. 정치·경제적 혼란은 물론 기후변화에 의한 자연재해, 병마(病魔), 전운(戰雲)이 깃들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국민생각이 먼저 혁명돼야 한다고 역설한다.

따라서 우룡 스님은 ‘코레상스(Korea Renaissance)', 즉 ’한국혼‘ 정신문화부활운동을 선포했다. 이 운동을 통해 이 땅에 깃든 모든 악운(惡運)을 말끔히 씻어 낸다는 것이다. 스님은 천부경과 주기도문을 설파(說破)하며 국민들의 간절한 새해소망을 모아서 ’하나‘의 큰 힘으로 결집, ‘빈마음’으로 세상을 사랑하는 바른 지도자인 ‘홍익지도자’의 세우는데 천명(天命)을 받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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